아직도 민메이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극장판의 린 민메이

아마도 가와모리 쇼지의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를 본 사람이라면, 귀여움이 옴팡지게 묻어나는 목소리로 우주전쟁을 종식시킨 초특급 아이돌 린 민메이를 정상에 앉히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여태껏 어떤 배우나 가수도 격하게 좋아한 적이 없다며, 그래서 이제부터 장백지 마니아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슬그머니 ‘그럼 난 누굴 좋아하긴 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거다. 그 다음엔 생각이 아예 ‘그렇다면 21세기까지 살아남을 위대한 아이돌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데까지 미쳤는데 의외로 결론이 쉽게 나왔다. 당연히 비틀스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굳이 반박할 마음은 없다. 실제 인물이 아닌 아니메 캐릭터에게 왕관을 수여해 보자는 얘기다. 아마도 가와모리 쇼지의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를 본 사람이라면, 귀여움이 옴팡지게 묻어나는 목소리로 우주전쟁을 종식시킨 초특급 아이돌 린 민메이를 정상에 앉히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17년 전 나타난 이 중국계 가수는 지금까지 무수한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2007년 현재로서는 26년 전 이야기)
가까운 미래. 지구에 거대한 외계 우주선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가 떨어진다. 지구인들은 이 마크로스를 수리해 지구인들의 우주 이민 비행선으로 사용하려 한다. 마크로스 안은 자그마치 도시 하나가 들어갈 만큼 넓은 공간이다. 마크로스가 토성 궤도에 이르렀을 때 거인족 젠트라디와 멜트란디 사이에 대규모 우주전쟁이 발발한다. 아차 하는 사이 지구인들이 이 무차별적인 전쟁에 휘말리자, 민메이가 우주를 향해 그녀의 미성을 실어보낸다. 그 노래는 거인족들이 잃어버린 문화에 대한 기억, 남성과 여성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기억을 불러내어 두 종족간의 싸움을 잠재운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의 TV 시리즈의 줄거리를 압축한 극장판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사랑을 기억하십니까]는 그 자체를 떼어놓고 보아도 아무런 하자가 없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아무튼 미국에서 방영된 후 재패니메이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애니메이션이니 그 아성이 대단할 수밖에. 이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린 민메이의 노래가 커다란 몫을 했다는 것에 이의를 표명할 이가 있을까. 민메이가 은퇴하는 마지막 장면엔 많은 이들의 눈물이 보태졌을 정도니. 린 민메이라는 캐릭터를 디자인한 미키모토 하루히코는 일본 최고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었고, 민메이의 목소리가 되어 노래를 부른 성우 이이지마 마리 또한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애니메이션 안과 밖의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만화계에 데뷔하신 60년대생 거물작가가 많대요. 대표적으로는 요시모토_킨지 선생, 안노_히데아키, 나루사와_쇼우..)
중국계 일본인으로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민메이는 노래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가출을 감행, 결국 마크로스의 마스코트가 된다. 처음엔 단순한 가수 지망생이었지만 자신의 노래로 전쟁을 마무리지은 이후 진정한 아이돌의 길에 들어선다. 그녀의 노래엔 사랑, 아쉬움, 두려움과 추억 등 인간이 갖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 있어 막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존재조차 파악이 어려운 미지의 적과 늘상 대치해야 하는 전시 체제,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불분명할 정도인 마크로스의 공간 안에서 민메이의 노래가 갖는 정서적 파장은 엄청나다. 희망과 안식이라는 단어를 잊지 않도록 해주는 유일한 기억장치였던 것이다.
(타이완계 화교였다고 기억하는데, 타이완도 "중국"이라고 하니까..)
한편 이 와중에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는 내내 민메이와 파일럿 히카루, 마크로스의 관제사 하야세 미사와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결국 히카루는 민메이보다 미사를 선택하며 "민메이에겐 노래가 있잖아"라는 상당히 잔인한 이유를 댄다. 아이돌의 운명이란 역시 한 사람에게만 귀속될 수 없는 노릇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이후, 플러스에서도 이사무와 갈바란의 관계도 비슷하게 된다는)
솔직히 민메이가 지나치게 귀여움을 떨어 여성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비난을 받을 만하기도 했다. 어쨌든 [전영소녀]의 비디오를 틀면 나와서 소원을 들어주는 소녀 아이나와 [아이즈]의 인기 많은 여주인공 이오리의 깜찍함의 원류는 대선배인 민메이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90년대를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레이의 서늘함이 장식했다면 80년대는 린 민메이의 시대였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가 84년도 작품이라 민메이의 노래가 민망하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지만 얼굴을 약간 붉힐 정도의 산뜻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진정한 아이돌이라면 이 정도 역할은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애니메이션계 최초이자 최고의 아이돌'이라는 칭호가 그리 아깝지 않다.
(이 이야기 쓰신 분은 카츠_마사카즈의 팬이셨나 본데, 저는 히로인을 단순한 메타로 밖에 안쓰는 카츠의 만화를 안좋아하기 때문에.. 좀 더 좋은 "例"를 든다면, 사쿠라노_미네네의 "수호월천"을 꼽고 싶대요. 샤오링 너어무 좋죠.)
::: ::: :::
1982년,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와 캡틴 하록, 은하철도 시리즈의 싱크로 쇼크를 경험했었던게 "우리 그이는 파일럿"으로 대표되는 저 발키리 파이터 이야기였대요. 그 때는 학교에서 남녀불문하고 발키리 프라모델 큰 거 만들어보자고 돈모아 공동작업도 했었는데.. 요새 사람들(애들) 정서로는 이해가 안될 지도 모르겠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