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어를 사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꾸만 뒤틀리는 우리 말 사용법에 한 마디 아니 할 수가 없다.
어느 시대에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법은 있었다. 문제는 틀린 말법을 듣고도 그러려니 하고 방관하는 데에 있다. 말은 논리이자 윤리이고 생각이자 사상이다. 그러려니 하고 방관하는 것은 틀린 논리나 윤리, 생각을 방관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틀린 말은 즉시 지적을 당하였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당사자는 인격적 망신을 감수하였다. 즉 틀린 논리나 윤리, 생각을 결코 방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방관하고 있었으면 틀린 어법 자체가 아예 굳어져버렸다.
예를 들어 <피로회복>이란 표현이 있다.
건강을 회복해야지 피로를 회복시켜서 어쩌잔 말인가?
회복(回復)이건 회복(恢復)이건 간에 <피로가 회복되면 죽는다.>
과로사의 원인이 바로 피로회복이다.
피로가 나아지거나 안정되는 것이라고 우기지도 말 일이다.
건강을 회복한다는 말이 성립된다면 피로가 회복된다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뜻이 통하고 안통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논리의 문제다.
2002년 대선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대선자금과 관련, 혐의가 있다면 <감옥에 가겠다.>고 공언하였다.
감옥은 가고 싶다고 가 지는 곳도 아니고 가기 싫다고 안 가 지는 곳도 아니다.
감옥은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잡혀가는 곳>이다.
얼마나 특권의식에 젖어 있었으면 소위 감옥을 상대로 가겠다, 안 가겠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가?
혐의가 있다면 징역살이를 감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야 잘 통하지만 어법은 틀렸다.
혐의가 있다면 <감옥에 순순히 잡혀가겠습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면 탄핵발의를 철회하겠다고 하였다.
유사 이래 최대의 논리적 난맥상을 드러낸 해프닝이었다.
대통령의 범죄가 막중하여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거나 격심한 정치적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어야 탄핵을 발의하는 법인데 이 정도 중차대한 국가 원수의 범죄는 잘 못했다는 말 한마디로 덮어질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과만 하면 탄핵을 않겠다고 하고 있으니 도대체 국가 원수가 저질렀다는 그 범죄는 아무리 보아도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어째서 일개 정당의 기분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가? 전 국민의 언어적 논리감각만 살아 있었다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그 즉시 소멸되었을 것이다. 논리감각이 약했던지 반쯤만 소멸되었다만.............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한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도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고 트집을 잡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코드 정치다.> 장관을 임명했는데 코드가 맞는 사람을 선택했다고 트집을 잡는다. 그럼 죽이 맞는 사람과 정치를 해야지 코드가 맞지 않아 일일이 어깃장 놓는 사람과 정치를 하란 말인가? 이런 걸 두고 생트집이라고 한다.
결혼을 해도 소위 <코드 결혼>을 해야 만사가 형통하고 피아노 반주도 <코드 반주>를 해야 연주가 성공할 수 있다. 컴퓨터 부품이나 프로그램이 코드가 맞지 않아서 낭패를 본 경험도 없단 말인가?
트집을 제대로 잡으려면 그 코드의 성향이 바람직하지 못한 점을 집중적으로 서술해야지 코드 자체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물어보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총리나 국무위원을 한나라당 코드에 맞는 사람을 지명해야지 열린당 코드 성향의 인사를 뽑을 텐가?
이렇게 해서 <코드 인사>라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단어 하나가 생겨났다.
정략이란 말이 있다. 정치적 책략이란 뜻이렸다.
대통령의 발언이 <정략적>이라고 일일이 물고 늘어지는 꼴을 우리는 지루할 정도로 보아왔다.
정치인의 생각은 원천적으로 정략이고 책략이다. 문제는 정략이나 책략이 정당한 방법인가 비열한 방책인가에 달려있지 정략 자체를 트집 잡아서는 안 된다. 이 정략을 떠나서 정치인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비열한 책략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정략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제갈공명의 계략에 탄복하면서도 그것이 정략이나 책략이라고 비난할 셈인가?
하도 언어 사용이 그릇되다 보니 이제는 <정략>이란 단어가 나쁜 의미를 풍기게 되어버렸다.
이러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인 흉내를 낸다고 꾸중을 듣는 판국이다.
아이들은 하루빨리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조금 빨리 성장하여 어른 흉내를 낸 것이 벌을 받을 짓이라면 성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른이 하도 잘못 살고 있으니 <성인 영화>하면 <작품성 있는 영화>가 아니라 <에로 영화>가 되고 <성인 흉내>는 <못된 짓>이 되는 것이다.
언어가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개나 소나 존경을 받는 대열에 끼어드는 세태이다 보니 온갖 것들이 다 높임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백화점에 넥타이를 사러가도 점원 아이들이 <이것은 3만원 되시고요, 저것은 3만5천원 되시겠습니다.>한다. 이동전화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역시 친절하게 <다음에 핸드폰이 또 고장나시면 언제든지 갖고 오란다.> 존칭을 써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정신을 못 차린다.
하긴 독재자의 딸과 산맥을 뚫어 뱃길을 내겠다는 이들이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판국이니 넥타이나 휴대폰 정도가 존경받는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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