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들, 솔직해집시다.
지금 언론에서 기자실 폐쇄와 관련해 얘기하는 국민의 ‘알 권리 침해’는 제가 보기에는 ‘정부 부처가 숨기는 잘못을 감시하고 폭로할 장치가 사라진다는 것’ 정도로 이해합니다.
참 이상하군요.
국민의 알 권리와 기자실 폐쇄가 그토록 민감한 관계에 있다면, 매일경제나 뉴시스가 서울 지방 경찰청(흔히, 시경) 기자실 출입을 요청했을 때 거부한 이유가 뭔가요? 매일경제 독자는 알 권리가 없는 이등 국민입니까?
까놓고 얘기합시다.
그동안 기자실이 있어서 정부 감시가 가능했습니까? 제가 그만둔 뒤, 요 몇 년 사이에 기자실이 정부 감시를 하는 역할로 혁신적으로 변한 건가요?
MBC 이상호 기자가 세상을 놀라게 한 엄청난 특종을 검찰 기자실에서 건졌습니까? 파업하기 전의 ‘시사저널’이 기자단에 가입해 있어서 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기사를 썼습니까?
기자실이라는 곳, 일상적으로 정부부처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1. 보도자료를 만든 담당자(보통은 국장급, 가끔은 과장급도)가 와서 브리핑을 한다.
2. 브리핑을 할 필요가 없는 가벼운 사안에 대해서는 공보관이 보도자료만 돌린다. 보도자료에 의문점이 있으면 담당자를 호출해서 부가 설명을 듣는다.
3. 장차관이 가끔 기자들과 간담회를 한다.
4. 기자들이 궁금해 하지만 공무원들이 밝히지 않는 사안이 있으면, 그 사안 담당자를 호출해서 설명을 듣는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묻기도 한다.
5. 정부부처 밖의 이해 관계자들이 기자들에게 보도 요청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 가끔은 브리핑도 한다.
이거 말고, 정부 부처의 기자실이 하는 역할이 뭡니까? 브리핑 룸 방식으로 바뀐다고 해서 이런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겁니까? 불가능해진다면, 저도 국민의 알 권리 탄압이라는 주장에 적극 동의하겠습니다.
기자실에서 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이거 아닙니까?
1. 점심은 누구와 먹을까? 오늘은 공보관이 사는 건가?
2. 고스톱은 누구와 칠까?(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하더군요. 참여정부 들어서는 특히...)
3. 피곤하니까 좀 자야겠다.
4. 연합뉴스에 오늘 보도자료 기사 제목이 이렇게 떴네? 나도 ‘야마’(=기사의 핵심 주제를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를 이렇게 잡아야지.
5. 다음 주말에는 출입 부처와 이해관계가 있어서 친분을 쌓아둔 업자 하나 잡아서 골프 가야겠다. 전화해야지...
6. (기자단) 간사가 오늘 신생 매체의 기자실 출입을 허용할지를 두고 투표를 하자고 하네. 난 반대해야지. 자리도 좁은데. 하여간 요새는 개나 소나 언론사라고 들이대서 난리야...
7. 보도자료가 하나 더 왔네. 음... 이건 내일 조간부터 보도하는 거군...
이런 것들이 국민의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오히려 ‘국민의 알 권리’ 탄압 운운하려면 기자실 폐쇄를 가지고 딴죽을 걸 게 아니라, 기자들이 정부 부처의 각 실국을 임의로 못 드나들게 한 것을 문제 삼아야 하지 않나요? 국민의 알 권리는 그런 적극적인 취재 활동을 통해서만 충족되지 않나요?(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불쑥불쑥 찾아가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찾아가는 경우에는 만나도록 해 주겠다고 했죠.)
더 나아가, 실제 정부부처의 잘못이나 비리가 보도되는,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는 경로는 거의 예외 없이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아닌가요?
아주 사적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인 공무원이 어느 날 같이 저녁 먹다가 지나가는 얘기로 한마디 한 것, 또는 이해관계가 있는 외부인이 제보한 것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건지는 게 정부부처 출입기자들이 생산하는 특종 아닌가요? 그게 바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활동' 아닌가요?
이게 기자실이 없어진다고 해서, 브리핑 룸 제도로 바뀐다고 해서 불가능해지는 건가요?
물론, "언론이 그동안 잘못을 많이 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번에 물 먹으니 고소하다", "자업자득이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자실 폐쇄와 알 권리 침해를 등치시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백배는 더 어렵습니다.
ⓒ 전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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