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필패론 그 스무 번째 “필사의 각오로 단일정당을 만들어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이 정동영 전 의원에게 한 말이 화제인 모양이다. 전직 대통령인 DJ에겐 불경(?)한 소리가 될지 모르나 이런 언명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마당에 후보라도 단일화하지 못한다면 이길 가능성은 제로로 떨어질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범여권이 이길 가능성이 그래도 한 10% 정도 된다고나 할까. 그것도 범여권에 좋은 후보가 있어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다. 한나라당의 이른바 양강(兩强)이란 후보군이 한 10%정도는 부족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 것이다. 그런 마당에 후보단일화도 없이 한나라당과 대결한다면 그 승부의 끝은 보나마나 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DJ의 언명에는 실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DJ가 그걸 의식하고 한 말씀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을 한 사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정치적 함의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역시 정치해설가의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이니, 나는 그 의무를 지금부터 이행하고자 한다. DJ의 언명은 자신의 집권 이후 정치적 승패를 규정했던, 뭐랄까 일종의 대결구도에 관한 언명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쉽게 얘기하면 양자대결구도냐, 다자대결구도냐 하는 점이다. 이를 해설하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할 얘기가 바로 영남 지역감정이다. 당금의 정치구도를 규정짓는 결정적 요소인 영남지역감정은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다. 즉 호남의 10년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한나라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영남지역감정이며, 그것이 바로 영남의 한나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후안무치한 짓을 해도 선거에서 어김없이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바탕에는 영남의 지역감정에 기인한 묻지마 지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것 없이 모순에 가득찬 한국의 선거결과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영남의 묻지마 지지는 과연 전체 유권자 가운데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정치해설가의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며, 정치해설가의 혜안이 빛나기 시작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최저 25%에서 최대 35%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평균 한 30%의 지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이건 순수하게 나의 정치적 직감에 따른 계산이므로 근거를 묻지 말기 바란다. 다만 인구비례 등등을 고려하면 거의 현실에 가까운 직감이 되리라 나 스스로 믿을 뿐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이 탄탄한 30%의 지지. 선거부정을 하든 공천장사를 하든 나라를 말아먹든, 호남에게 빼앗긴 10년 정권(이들의 시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도 호남정권의 연장일 뿐이다)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한나라당을 밀어주겠다는 탄탄한 30%의 존재를 인정하기만 하면, 그동안 미스테리였던 우리 정치의 많은 모순적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을 전제로 해야만 DJ의 언명이 갖고 있는 깊은 뜻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즉 이런 30%의 묻지마 지지가 존재하는 한나라당과 선거로 대결할 때, 다자대결구도일 경우 필패이며, 양자대결구도일 경우 필승이란 공식이 성립한다. 30%에 달하는 영남의 묻지마 지지에 대한 혐오감으로 다른 지역이 일치단결해 단일한 후보를 낼 수 있다면 영남은 필패한다. 30%에 달하는 영남의 묻지마 지지만으로는 최대한 낼 수 있는 힘의 한계가 45%이기 때문이다. 55%에게 절대 이기지 못한다. 내가 그동안 주장해왔던 한나라당필패론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양자대결이면 한나라당은 무조건 진다. DJ 집권 이후 변하지 않는 구조다. 두 번의 대통령 선거는 모두 양자대결구도였다. 양자대결에서 불거져 나온 제3의 후보가 있었지만(DJ-이회창 대결에서 이인제), 그것도 한나라당의 표를 갉아먹는 후보였다. 실은 그 때문에 호남후보인 DJ가 당선될 수 있었다. 반면 다자대결구도일 경우 한나라당은 무조건 이기고 들어갔다. 많은 보궐선거, 지방선거는 모두 다자대결구도로 치러졌다. 30%의 강력한 지지를 갖고 있는 정당과 지리멸렬한 군소지지집단과의 대결은 더구나 승자독식인 소선거구제 구조에서 한나라당 필승의 형세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총선이 유일한 예외였다. 한나라당 스스로 행한 탄핵이란 자충수 때문에 탄핵 대 탄핵반대란 양자대결구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그토록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보면 영남의 30% 묻지마 지지가 갖고 있는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건 한나라당을 제외한 세력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게 돼 있다. 양자대결이 아닌, 다자대결구도로 몰아가야 한다는 얘기다.(후편에 계속)
- “뭉치면 죽고 분열하면 이기는 집단의 행태에 관한 연구보고서" - 전(前)편
한나라당 필패론 그 스무 번째
- “뭉치면 죽고 분열하면 이기는 집단의 행태에 관한 연구보고서" - 후(後)편
다자대결구도를 지향해야만 하는 한나라당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무엇인가.
영남의 30% 묻지마 지지를 바탕으로 한 한나라당의 위력이 너무 크다는 점이 약점이다. 현재의 상황에 불과하긴 하지만, 잠재적 후보감들의 지지도 1,2위를 이명박과 박근혜가 휩쓸고 있다. 범여권의 후보군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나라당 압도의 상황은, 어떤 방식이든 반드시 범여권으로 하여금 후보단일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한다. 단일한 반 한나라당 후보를 내세우지 않으면 필패한다는 위기의식이 모든 자잘한 문제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결국 한나라당으로서는 스스로 강한 위력을 분산시켜야만 했다. 즉 이명박과 박근혜는 분열되는 것이 다자구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한나라당이 이명박과 박근혜로 분열되면, 범여권은 단일한 후보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범야권이 이명박과 박근혜란 카드를 꺼내들고, 범여권이 열린우리당의 비호남후보와 비열린우리당의 호남후보란 2개의 카드로 분열되는 4자대결구도라면 한나라당 간판을 갖고 있는 후보가 필승한다는 것이 나의 예측이다.
한나라당은 분열을 방지함으로써 대선에서 쉽게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날려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나라당의 오만이 첫번째 이유다. 즉 양자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한나라당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본질적으로 동일한 세력이 10년 집권을 하면 정권교체될 확률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런 정치학 원론적인 판단을 하기에 한나라당은 너무나 취약하다.
정상적 사고를 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면 한나라당의 행태가 과연 수권정당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냐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정상적 사고를 하는 합리적 인간은 또한 범여권의 행태 역시 동일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범여권에 큰 지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범여권은 후보단일화란 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행위가 아직 여벌로 남아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써먹을 수 있는 새로운 카드가 별로 없다.
어떻든 한나라당은 양자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오히려 한나라당내 후보들간의 분열이 치명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분열되고, 범여권이 단결한다면 그 결과는 말하나마나다. 양자대결에도 불리한 마당에, 자신들은 분열되고 범여권이 단결한다면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상식은 일차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면 틀렸다. 한나라당이 분열되면 범여권은 절대로 단일화하지 못한다. 다자대결로 가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더 미묘하다.
다자대결구도에서 가장 유리한 후보는 한나라당 간판을 그대로 갖고 있는 후보다. 이명박이냐 박근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한나라당의 후보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탈당할 것인가. 이 고민은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내 개인적 의견이지만, 박근혜가 한나라당 후보로 남고 이명박이 탈당하는 상황, 그 결과 범여권도 분열돼 후보가 2명(호남과 비호남후보)으로 나오는 4자대결구도가 한나라당의 승률을 가장 높이는 그림이다. 그러면 물론 우리나라는 최초로 여성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한나라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최선의 그림이긴 하지만 후보감들에겐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란 점이다.
박근혜가 이명박보다는 더 한나라당적(?)인 후보이기 때문에 박근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는 것이 가장 승률이 높은 그림이긴 하지만, 다자대결구도 즉 4자대결구도라면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박근혜가 탈당한다고 해도 여전히 한나라당을 등에 업고 있는 이명박이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즉 이명박과 박근혜는 서로가 탈당하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자신은 탈당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그 결과는? 책에 다 나와 있다. 둘다 탈당하지 않는게 정답이다. 가장 불리한 구도이긴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에서 선택은 항상 최악이 정답이다. 모두에게 최악인 상황이 자신에게만 최악인 상황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어떻든 나의 결론은 한나라당은 분열을 방지함으로써, 손쉬운 집권의 기회를 다시 한번 날려버렸다. 이 미묘한 상황의 바탕에는 바로 한나라당에 대한 영남의 묻지마 지지가 있는 것이니, 그로 인해 어떤 짓을 해도 선거에서는 항상 필승을 구가해왔으니 지금와서 한나라당이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덧글1) 지역구도는 그나마 계량화가 가능한 유일한 변수이기 때문에,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지역구도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기는 하다.
덧글2) 박관용이 DJ의 언급에 뭐라 딴지를 걸었다고 한다. 탄핵을 통해 총선을 양자대결로 몰아넣음으로써 한나라당이 압승할 수 있는 형세를 그르친 주역치고는 후안무치한 얘기일 뿐이다.
이회창이 뭐라 한다고 해서 정치원로가 입다물고 있으라고 주장할 것인가. 박관용은 자중해야만 한다. 지난 총선필패의 원인요소를 다시 매우 중요한 직책에 기용하는 걸 보면 역시 한나라당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 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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