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4시간에 걸친 강연은 문자 그대로 참여정부의 지난 4년여에 대한 최고책임자로서의 자기 평가일 뿐이다. 그 평가를 하는 와중에, 속에 든 말 참지 못하는 노 대통령의 특성이 유감없이 드러나, 여야의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평가가 부분부분 섞이긴 했으나, 그것도 유심히 살펴보면 참여정부에 대한 자기 평가 혹은 변호의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지엽적인 지적일 뿐이다. 물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그 지엽적인 지적이 더 뼈아프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솔직한 게 탈이라면 탈이겠으나, 못할 말 한 것도 아닌데 왜 한나라당과 언론들이 이토록 호들갑을 떨고 있을까? 노 대통령의 강연이 정말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동안 단 한 번도 언급이 없었던,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어서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의 강연은 그간 여기저기서 얘기했던 발언들의 종합판일 따름이다. 새로운게 전혀 아니란 얘기다.
한나라당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그동안 보고싶은 것만 봐 왔기 때문에, 혹은 한나라당이 보고싶어하는 것만 보도했던 그들의 참고언론(누군지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탓에 노 대통령의 얘기가 매우 생소하고도 새로운 것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어떤 말이라 하더라도 늘상 듣던 얘기라면 그렇게 경기를 일으키진 않는다. 내겐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가 한나라당에겐 엄청난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지적이 너무나 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대개 진실을 얘기하면 화를 내는 습성이 있다. 미녀에게 못난이라고 하는 것과 정말 못생긴 사람에게 못난이라고 놀리는 것이 동일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천지차이다. 지난 4년간 한나라당이 했던 일들을 반추해 보면 노 대통령의 지적은 정말 소름끼칠만큼 정곡을 찌르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한나라당의 만행에 가까운 딴지와 공격의 최대 희생자였기 때문에 더욱 절절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선일보와 같이 수구적인 언론들은 왜 덩달아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일까? 말하나 마나 건수 하나 잡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조선일보 등이 언론자유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요즘 광주살인마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마저 언론자유 운운할 정도이니, 뭐 지금 이 시대는 자격없이도 그런 얘길 뻔뻔스럽게 할 수 있는 시대라 치고 일단 넘어가자. 여하튼 기자실 통폐합인지 뭔지 하는 것 가지고 한 건 해보려는 판에 마침 딱 걸렸다, 이런 정도 아닐까 추측한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하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이나 여야 대선주자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제대로 된 언론들이 존재하는 시대라면 말이다.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이나 대선주자에 대한 평가는 실은 제대로 된 언론들이 지적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노 대통령까지 나서 그런 얘길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참여정부나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라면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 잣대로 덤벼드는 언론들이, 한나라당과 그들의 대선주자에 관한 것이라면 제아무리 부도덕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엄정하고 균형된(?)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결국 역(逆)왜곡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박근혜와 이명박에 대한 노 대통령의 평가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렇게 지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성언론들은 언제나 양비론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그 흠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지나갔었다. 자신들이 얘기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모를 것이란 오만한 사고에 그들은 여전히 빠져 있다. 이것이 바로 한나라당과 기존언론들이 합작해낸 '침묵의 카르텔'이다.
웃기는 것은 이 침묵의 카르텔로 인해 정말 한나라당에 대한, 혹은 이명박 박근혜에 대한 국민여론의 평가를 모든 사람이 다 아는데도 그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노 대통령의 강연내용이 '놀랍고도 새로운' 내용을 비쳐, 길길이 날뛸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침묵의 카르텔이 빚어낸 자업자득의 결과일 뿐이다.
나는 노 대통령의 강연이 무슨 큰 정치적 노림수를 갖고 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강연 내용을 죽 살펴보면 그야말로 지난 4년여 이 나라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자기 자신의 평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평가가 내겐 전혀 새롭지 않지만,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에게 새롭게 들리는 것은 그들이 해왔던 왜곡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순수하게 자기 평가라고 치부하면 그뿐이다. 사실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에겐 그게 정답일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이란 늪인줄 알면서 빠지는 어리석은 동물 아니던가?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탄핵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불과 3년여 전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그러했고, 노 대통령의 냉정한 평가에 발끈하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그러하다. 노 대통령은 칼을 잡지 않고 있지만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스스로 칼을 들고 자신의 배에 그 칼을 찌르려는 형국이다.
제갈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은 공명인줄도 모르고 꽁지 빠지게 도망쳤던 사마중달이 현신한 것일까? 언론들이 노 대통령의 노림수가 뭐니 어쩌니 온갖 난리법석을 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림수는 무슨 노림수! 노 대통령은 사실 스스로 평가했듯이 9월 이후부터는 '뒷방 아저씨'다. 한나라당이나 그들의 참고언론들이 주장하다시피, 실패한 대통령, 경제를 망친 대통령, 그리고 뒷방 아저씨인 노 대통령이 뭐가 무서워 그렇게 길길이 날뛴단 말인가? 실패한 대통령이 무슨 영향력이 있어 정치적 노림수를 내놓는단 말인가? 한나라당이나 언론들의 그같은 해석이야말로 자가당착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 덕분에 노 대통령의 사심없는 평가가 정치적으로 노림수 있는 행위가 돼가고 있다. 정치적 책략이 없는데 그들이 정치적 책략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선일보 등 기성언론간에 펼쳐져 왔던 싸움은 늘상 이랬었다.
집권초기에는 없는 책략을 있는 것으로 날조 왜곡했던 것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갔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영남의 강력한 지역주의로 인해 그런 날조 왜곡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사정이 달라졌다. 국민들은 '늑대소년'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말에 매우 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된 노 대통령. 그것은 지난 4년여 한나라당과 기성언론들이 합작한 날조 왜곡이 낳은 일종의 부작용(?) 덕분이라고 나는 분석한다. 다음 대선을 앞두고 어느 누구도 노 대통령을 피하거나 둘러갈 수가 없게 됐다. 그게 노 대통령 때문인가? 일부는 그렇다. 기나긴 날조 왜곡의 터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의 이유일 뿐이다. 대부분의 이유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 기성언론이 스스로 했던 행위의 업보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고 본다.
ⓒ 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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