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민주개혁세력들에게는 그야말로 위기의 계절입니다. 전직대통령께서는 "사생결단"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돌파구를 만들려 애쓰고 계시고, 대통령께서는 쓰러져가는 깃발을 다시 세우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계시지요. 한나라당 주자들의 지지율 합계가 70%를 넘나들고 있는데, 아직 여권은 진영조차 갖추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끊임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세월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냉정한 평가를 하면 이제 정권을 넘겨주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이는 것이 저만의 착각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분석합니다. 서민들이 그토록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이유를 말합니다. 혹자는 지역주의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혹자는 국민들이 조중동에 속아서 그렇다고 하고, 혹자는 전세계적인 우경화 바람때문이라고 하고, 혹자는 아직 여권후보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는등 갖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1997년 2002년 그때에도 지역주의는 존재했고, 조중동은 악랄했었으며, 세계는 오히려 좌경화의 바람이 더 거세고, 여권에도 지지율은 형편없지만 뚜렷한 후보들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서민들로 하여금 한나라당으로 똘똘 뭉치게 하였을까요? 조중동의 주장대로 참여정부가 "무능한 진보"라서 그럴까요? 그러나 주가지수 외환보유액등 참여정부의 각종 지표들에도 나타나듯이 과거 한나라당 정권들보다는 훨씬 유능한 정권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체 왜그럴까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서민들은 지금 살아가기가 매우 고달프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현재의 모든 상황이 지지부진 답답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정하려고 해도 이것은 명백한 현실입니다. 서민들을 옥죄고 있는 것들을 여러가지 나열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겠지요. 비정규직 문제, 자영업 경기 위축, 사교육비 문제, 부동산 문제, 노후에 대한 불안등입니다. 바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라고 부르는 그것이지요. 그리고 참여정부는 이런 문제 해결에 무진 애는 쓰지만, 화끈한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차근 차근 점진적 해결을 선택하는 모습입니다. (저는 물론 이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적극 지지합니다.)
성질급한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지요. 그런데 얼핏 보면 이것들이 한나라당 지지와 무슨 관계이냐, 그 반대아니냐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보다 훨씬 더 비정규직 확대를 바라고 있고, 사교육을 더욱 조장하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으며, 부동산 종부세를 좌파정책이라 규탄하고, 자영업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성장에 훨씬 관심이 많으며,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도 전무합니다.
그런데도 서민들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런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되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정치구도를 보유한 국가라면 현재 서민들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는 정당은 한나라당이 아닌 좌파 민주노동당이 되겠지요. 그러고보면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따라서 제 글은 일정부분 민노당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왜 서민들은 가장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한나라당이 그런 "신자유주의"적 문제들을 해결할 적임자라고 믿고 있을까요? 바로 여기서 "박정희 향수"로 상징되는 과거 독재정치에 대한 선호가 등장합니다. 즉 "그래도 예전에는 국민들이 불만을 늘어놓으면 화끈하게 탄압을 하든지 아니면 화끈하게 해결해버리든지 했다"는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지요. 최소한 지금처럼 좀처럼 해결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은, 답답하고 혼란스럽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정희시절 노동운동은 탄압했지만, 정규직 비정규직같은 직장내 신분제는 용납하지 않았었고, 전두환시절 고액과외가 문제되자 단칼에 "과외금지"의 칼날을 휘둘렀으며, 노태우시절 조폭들이 설치자 "범죄와의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단번에 진압했으며, 부동산값이 오르면 강남 복부인들 줄줄이 수갑채워서 뒤돌아선 자세로 방송타게 만들어 최소한 서민들 화풀이는 시켜줬던 모습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지금 화끈해보이는 이명박과 화끈했던 아버지를 따르겠노라 외치는 박근혜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들을 무대포라고 수첩공주라고 비난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서민들도 그런거 다 압니다. 되려 화끈한 짓은 무식한 것들이 더 잘하는 법이라며 좋아합니다. 물론 그들도 스스로 민주시민이라 자부하는데 부패정당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는 몹시 찜찜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가 무능해서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노라고 변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율배반적인 스탠스를 변명할 수 있는 핑계를 얻기 위해 열심히 조중동을 구독하고 있지요. 때문에 조중동이 서민들을 세뇌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분석은 공허한 삽질입니다. 서민들이 "화끈한 독재"를 바라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우같은 조중동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 말고 찌라시에 불과한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물론 한나라당이 집권하고나서 서민들의 그런 기대는 초장에 박살날 것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전혀 화끈하지 못할 것이고, 서민들의 목을 죄는 신자유주의를 더욱더 밀어붙일 것이며, 참여정부보다 훨씬 무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서민들은 자신들이 부활시킨 것이 "전광석화 박정희"가 아니라 "돌아온 말기 김영삼"임을 깨닫고서 경악하고 절망하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대로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한나라당 신정부에 실망한 서민들이 다시 민주개혁세력에게 돌아올 것이냐는 것입니다. 안타깝겠지만 저는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보다 더 근사하고 세련된 좌파정당의 형태를 갖춘다는 전제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만약 민주개혁세력이 한나라당에 패해 정권을 내준다면, 노무현대통령 말씀대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말로 끔찍한 혼란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나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이 현재까지 집중했던 사학법 국보법 언론개혁등 "민주주의적 과제"는 현재의 성과에 일단 만족하며 잠시 접어두고, "화끈한 민생개혁"에 집중할 것을 주장합니다. 현재보다 더욱 강력한 부동산대책, 대형마트 외곽 이전등 현실적인 자영업 보호 대책, 보다 철저한 비정규직 보호, 사교육비 대폭 근절대책을 시행할 것을 주장합니다.
지난 한미 FTA 때도 경험했듯이 대통령이 국가적 과제를 화끈하게 밀어붙이자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도 제 생각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포퓰리즘적인 "독재의 향수"를 부추기고 있는 세력에 맞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받을까봐 두려워 좌고우면하기에는 시국이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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