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 - 구조의 해체
80년대의 민주 : 반민주구도라는 엄숙함과 진지함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 문화시대가 도래했다. 이른바 탈정치화가 급속히 전파됐고,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아 그 엄숙했던 날들의 질투심으로 술집과 여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서태지는 등장과 함께 엄숙함과 권위주의적 문화기득권자들을 싸그리 랩으로 포장해서 냉장고에 처넣어 버렸다. 그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은 한국사회의 담론이 되었다. 80년대가 이 후 세대에 죄 지은 것이라곤 반역사성과 친외세에 입각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6.10항쟁이 불러온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이에 응한 6.29선언이 가져온 정치 왜곡은, 대통령직선제 쟁취로 만족했고, 독재정치의 폐해와 민주주의의 진전은 정치인의 몫이었다. 이 후, 양김은 분열했고, 이는 독재에 항거하며 닮아갔던 양김의 1인지배 보스정치의 권위주의에 대한 구조적 문제의 노골화에 다름 아니었다. 정치냉소주의는 양김분열로 정점에 오르고, 3당야합으로 화룡정점을 찍었다. 정치인들의 야합과 합종연횡이 신문을 장식할 때, 저변의 움직임이 있었으니 탈정치화로 상징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이다. 변형된 포스트 모더니즘은 투쟁의 나르시즘으로 우리곁에 왔다.
30여년이 넘도록 지배했던 독재의 숨통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민주주의 투사들의 정치력부재는 지난 시절에 대한 전면적 해체 즉, 독재로 구조화 된 모든 영역에 대한 해체로 나타났다. 시작은 문화다. 서태지다. 한편으론, 80년대의 진지함이 마지막 숨을 힘들게 쉬고 있고, 한편으론, 서태지에 열광하며 그렇게 우리는 램과 술과 섹스를 탐닉하며 90년대를 80년대보다 더 힘들게 지나왔다. 가치관의 혼란은 말할 수 없이 지쳐가게 했고, 위안은 술과 섹스와 나이트 클럽이었다. 사조는 불분명했고, 사회구성체론은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허망하게 시들어갔다. 랩과 락의 황금기는 그 때였다. 주류적 담론의 해체는 2000년대를 향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꽃 피우고 열매 맺은 건 인터넷이란 날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해체된 공간에 남은 찌꺼기는 문화의 향유과 비주류문화의 전면등장만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가 된 100만운동권의 80년대에 대한 “부채”라는 향수도 굳건히 남아있었던 거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전국의 모든 일들이 모니터 앞에서 실시간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화는 더욱 깊게 침투하여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게임은 폐인을 양산했으며, 정치는 노무현을 만나게 된다.
예술은 소수 매니아층을 위한 차별화된 아웃사이더적 기질이 강한 락, 랩이 주도하여 이른바 홍대클럽문화를 만들었고, 세종문화회관은 예술의 전당에 클래식으로 대표되는 고급종합예술의 터줏대감자리를 내놓았다. 서태지는 건재했고, 크라잉 넛으로 대표되는 클럽문화는 섹스와 결합되어 자리매김 되었다. 비보이는 모던시대의 총아같아 보인다.
80년대에 대한 향수로 간직했던 “정치적 부채”가 현실화 된 건 부산에서 떨어진 노무현의 등장이었다. 모더니즘의 해체가 정치냉소주의라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은 노무현과 함께였다. 기존 정치형태와는 전혀 다른 정치지도자와 지지자의 관계가 실험적으로 태동했다. 인터넷을 무기로 한 실험은 성공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노무현과 지지자들이 탈정치화된 2000년대를 “부채”로 승화시켜 노무현대통령을 만들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정치는 구조적으로 구시대와 달랐다. 돈선거, 조직선거, 보스정치, 지분정치는 정치냉소주의의 근본원인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대안과 비전이 지도자의 항목에 가장 우선시 되었으며, 원칙과 소신에 따른 정치행위는 더욱 강조되었다. 도덕성은 말할것도 없이 정치인의 유력한 검증수단이 되었다.
양김의 분열과 3당야합. 그것은 80년 광주항쟁과 6.10항쟁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욕구분출에 대한 역사동인의 의지를 역사화, 민중화하지 않고 정치적 이익으로 치환해버린, 양김정치와 분열, 3당야합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종말이고, 모더니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양김분열이라는 모더니즘이 지배했던 정치기제인 지역주의정치는 동서화합, 국민통합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따라 해체는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언론바로세우기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노무현 자체가 포스트 모던인거다.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정치권의 응전이 “노무현만” 있었다는게 서글픈거다.
우리 정치의 수준이 이합집산의 화려한 지분과 살아남기에 급급해 시대에 대한 천착없이 시정잡배만도 못한 정치로 정치냉소주의의 재부활을 지켜보는 중이다. 각 종 정치여론조사에서 응답률은 20%가 안된다. 90년대 말의 여론조사가 이랬다. 냉소주의는 기압과 같다. 저기압과 고기압. 정치를 잘하면 고기압인거고, 못하면 저기압이 차지한다.
지금은 정치저기압. 냉소주의가 대세다. 孫들어준 김근태. 孫바닥에서 놀아나는 일부 386들. 가치전도와 기회주의가 판을 치고, 명바기는 위장전입과 차명재산으로 돈바기, 땅바기가 되어 있다. 운하로 대한민국을 수장시키려한다. 구태의연한 한나라당이 있는데, 개혁진영의 뻘짓으로 지지율이 오르질 않는다. 냉소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없는가?
한국정치 이대로 괜찮은가?
나머지 80%의 국민들의 의사는 무엇인가? 응답하는 20%의 국민만 있고, 반응없는 나머지 80%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요새 유력정치인치고 팬클럽 없는 정치인이 없다.
“각성된 생활인들의 느슨한 연대”라는 말이 새삼 다가온다. 위대한 표현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정치인과 팬클럽
작금의 팬클럽의 활동을 보면서 노사모를 뒤돌아 봤다. 과연 지금 팬클럽의 행태와 노사모의 행태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닮았는지 궁금했다. 내가 노사모라 그런지 몰라도 “다름과 닮음”이 있긴 하다.
정동영 팬클럽에서 진지하게 “명령”이라는 낱말이 어렵지 않게 사용되는 게시판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런데, 유시민 팬클럽에서도 똑같은 낱말이 똑같은 의미의 진지함으로 게시판에 버젓이 사용되고 있었다. 과문한 탓인지 다른 팬클럽에서는 진지한 “명령”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과거 노사모에서도 그랬나 싶었다. 그리곤 재차 되물었다. 아니 지금 노사모에서도 “명령”이 가능한가? 노사모에서는 있을 수 없고 불가능한 낱말이다.
선거인단 모집과 대리접수가 근래 화제중에 하나다. 노사모에서도 국민경선신청서 모았던거 기억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 기억하면 안된다. 국민경선신청서 모으는거 결사 반대했던 수없이 많은 노사모들이 있었다. 반대하는 분들은 모으지 않았다. 논리는 단순했다. 우리는 노무현의 지지자이지, 노무현의 조직원이 아니다라는거였다. 지지자와 조직원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안 나지만, 정치적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 인거다. 소신 있는 회원들은 끝까지 모집에 반대했다. 그거 노무현에게 이로웠냐고? 만약 그런 반대가 없던 노사모라면? 그건 죽은 노사모인거다. 단언컨대, 노사모에서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았다면 노사모는 총체적 의미의 동력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사모는 대체적으로 모집하고 싶은 분은 모집하고, 반대하는 분은 안했다. 사실.. 모집여부에 대한 찬/반이 중요한게 아니다. 이인제 대세론속에 지지율 2%이하인 후보가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노사모게시판은 담론투쟁이 가열차게 진행되었단 말이다.
현재 각 정치인마다 팬클럽이 있지만, 이런 모습이 없다. 올인이고, 원샷이다. 이게 노사모가 규정한 정치인 팬클럽의 모습일까? 나는 노사모로서 말하고 싶다. 노사모의 겉모습과 외부로 드러난 부분만 집착하고 닯아가는 팬클럽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담론과 방향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있는 팬클럽을 보고 싶다. 선거인단 참여시키는 모집도 중요하지만, 담론에 대한 활발하고 가열찬 토론을 보고 싶다. 담론 토론 없는 팬클럽은 팬클럽이 아니다. 연예인 팬클럽과 다른 무언가를 보고 싶다. 사람모으는 선거운동말단조직말고, 왜 지지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보고 싶다. 토론없는 팬클럽을 목도하는 나는 매우 당황스럽다.
정치도 아름다울 수 있다. 시대의 흐름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 정치인 팬클럽은 포스트 모던시대에 그냥 팬클럽일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감동이 없는건 정치권만 그런게 아니다. 팬클럽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막장문화로 뜨겁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변형이고, 진화다. 막장문화가 어디로 갈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인 팬클럽이 막장문화의 종착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가 갖는 최소한의 무게감과 발랄함으로 노사모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될 것인가.
역사는 국민과 함께 또 응전할 것이다. 그 응전이 한나라당집권일지, 제3기민주정부 수립일지는 선거인단 모집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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