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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유연기업의 병폐

 
신경제는 기업의 조직과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모시키고 있는가? 이 문제는 조직사회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전반에 걸친 중요한 연구 주제다. 한 사회의 가치관, 세계관을 규정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나라는 늘 유연기업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다.

 확실히 신자본주의는 기업과 노동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재래식 기업조직에는 각 개인의 직능이 명확히 설정돼 있어 이 직능이 피고용자와 기업과의 관계를 규정한다. 현재의 자기위치뿐만 아니라 장래의 자기 위치 변화도 대략 예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충실성도 느껴지고 장기적인 인생계획도구상해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기업의 90% 이상이 아직도 이런 재래식 기업이다.

신의·유대관계등 직업윤리 와해

 그러나 노동분업과 기업조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시장의 세분화가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 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민활성이 높아야 하며 생산양식 적응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이런 개선을 위해서 임금노동자들에게는 보다 높은 유동성이 요구되고 단기적 사고방식과 노동방식이 요구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위계체제의 수준이 줄어들거나 심지어 직능 자체가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신기술 유연기업의 경영양식을 보면, 기업내에 중심과 주변을 엄격히 나누면서 권력이 집중된 중심은 목적을 설정하고 명령을내릴 뿐 집행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집행은 주변 노동자 팀에게 맡긴다. 때로는 여러 팀을 만들어 경쟁을 시키며 성공한 팀에게는 보상을 주고 실패한 팀에게는 제재를 가한다. 중심과 주변의 관계는 종주국과 식민지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신기술 유연기업의 조직은 기업경영과 피고용자에게 네가지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기업과 피고용자 사이의 불신 조장이다. 원래 모든 기업은  피고용자와의 관계에 신의와 충실성을 비공식적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고용안정을 보장하지 못할 경우에는 피고용자의 기업에 대한 일체감이 없어지고 따라서 충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피고용자 사이의 연대감 부재다. 빠른 노동리듬을 유지하고 좋은 실적을 얻기 위해서는 피고용자 서로간의 연대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 6~8개월 지속을 목표로 조성된 팀에서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으려하지 않는다. 일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임시적으로 협조하는 것이지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피고용자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위험이 기회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말이 그럴 뿐, 기업의 주변노동자들로서는 위험이나 기회를 평가할 방법 조차 없다. 기업조직이 너무나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명확한 승진과 강등 시스템이 없어진 하나의 떠 있는 직능상황에서 확실한 방향설정이나 전략구상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넷째, 노동윤리의 부재다. 장래를 위해서 오늘의 고통을 참는다는 막스 베버식의 기율은 유연기업에서는 불가능하다. 빈번한 직책변경으로 보상을 인정할 수 있는 책임자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오늘의 공로가 내일의 가치로 인정될 수 없게 된다. 세대상으로 보면 40~50대가 희생됐다고 할 수 있다. 신세대는 노동조건의 변화로 노동에 대한 동일한 가치관과 사회보상 개념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생각컨대, 인간은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직업을 위해서 산다. 따라서 고무적인 일, 사회적인 보상이 강하게 요구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정체성은 자기 직업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기업은 미국에서도 아직 소수에 속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양적으로는 아직도 전총적 기업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는 신기술 유연기업을 모델로 삼아 신기업이 속속 출현했다가 전통기업과 달라평균 5~6년이면 자진 해체한다. 또한 전통기업이 재조직돼 신유연기업으로 변모하는 것이 많다. 경제계와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경제적 이익만 추구" 비난받아

 또 하나 지적돼야 할 것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유연성 원칙을 국가행정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보건유지기구(HMO)는 금융분야의 수익성 논리를 국민보건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한 의사가 한 명의 환자를 계속 맡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의사와 환자가 빈번히 바뀐다. 이것은 환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유연성의 경제적 효율성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결정적인 답이 없으며 경제학계, 국제기구 내에서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의 사회적 파괴력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신의, 충실, 노동윤리, 노동안정과 불안에서의 해방 등은 인간의 사회관계에서 기본 가치들이다. 이를 파괴하면서 부의 축적만을추구하는 경제체제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거부해야 한다.

    한겨레신문20000721 해외시각 - 정성배



2007-11-03 03: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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