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게시물을 올릴수있는 게시판입니다.
  • 유년추억
  • 학교생활
  • 입시준비
  • 대학생활
  • 군생활
  • 알바생활
  • 취업준비
  • 직장생활
  • 원룸생활
  • 연애중
  • 결혼준비
  • 집안살림
  • 자녀교육
  • 창업준비
  • 이민유학
  • 노후생활
  • 전체보기


미, 반테러 명분 세계지배 정당화

 
피에르 부르디외 전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와의 대화는 그가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어 서면으로 이뤄졌다. 그는 평소 지론인 `신자유주의로 인한 인류와 문명의 위기'를 여러 측면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다.

-(정성배)신자유주의자들이 찬양하고 있는 `행복스러운 세계화'는 세계적으로 빈곤과 소외 현상의 악화로 인한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교육과 보건의 상품화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세계화가 민주화 과정과 독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더구나 초국적 기업과 국제통화기금·세계무역기구 등은 신식민주의적 사상을 전파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미국 정부가 뭐라 하든 세계화가 9·11 동시다발 테러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고 그로 인한 변화가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카타르의 도하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 회의는 이런 기대에 실망을 줬을 뿐아니라 오히려 테러 참사를 이용해 2년 전 미국 시애틀에서 중지된 무역협상안을 재생시켰다. 이런 세계화의 추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부르디외)세계화 정책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의 부정적 효과를 예견했을 때 나는 `불행의 예언자' `쓸데없는 비관론자'로 간주됐고 프랑스의 일부 사회학자들은 그룹을 이뤄 나의 입장을 `무책임한 모험주의'라고 규탄했다. 특히 국가와 공공 서비스 분야의 해체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저항사건이었던 1995년 12월의 철도 노동자 파업 때 그랬다. 이 사람들은 소위 못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멍청한 사람들이며, 나쁜 의도를 가졌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와서는 이들도 점차 드러나고 있는 세계정책의 전모뿐 아니라 아직도 은폐돼 있는 이 정책의 감추어졌던 결과까지도 알아내기 시작하고 있다. 시애틀 시위 이후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안건이 도하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난폭하게 재출발하고 있다. 지배적 강대국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나라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른바 `그린룸'(폐쇄적 협상) 수법과 같은 것을 사용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저항을 분쇄하려고 전력했다. 여기서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한 인도 대표들의 투시안과 용기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거대 국제기구들은 국가해체 정책을 끝까지 밀고나가려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국은 이제 유럽 나라들에서 공모자를 갖게 됐다. 개발도상국은 이런 사실을 의식해 유럽인들의 인도주의적 선언에 속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9·11 테러는 상징적 힘으로 보아 지배국이나 피지배국에게 다같이 각성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자기중심적으로 일종의 신성동맹을 구축하는 데 성공해 반테러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타가 공인하는 전지구의 심판관 겸 헌병이 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 서부극의 보안관처럼 말한다.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는 정치·경제·통상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전세계 국가총회를 소집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은 총회보다 비공식 `그린룸'을 선호한다. 미국은 권리와 의무 면에서 평등한 동반자로서의 진정한 `국제동맹'의 공개적 토론보다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힘의 법정을 선호한다.

-세계화를 위한 기술경제 기계장치는 문화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흡수하려 하는 총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교육·교양·정치사회 활동에 바쳐졌던 시간과 에너지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오락산업으로 흡수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인간 개념은 무능한 인간, 순응주의적 인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에 반항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유일사상에 대한 추종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의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나도 이에 동감한다. 그러나 이것뿐 아니라 각성에 입각한 방대한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빈약하게 하는 문화단일화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겠는가.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작가회의에 참석했을 때 나는 세계화 정책 반대, 정확히 말하면 각처에서 상업이윤이 지배하도록 만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예술가·작가·학자들이 총동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거대 멀티미디어 기업들은 점차 전파수단을 독점함으로서 문화산물의 생산과 상업화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장악하게 됐다. 실제로 이런 경로를 통해 문화보호자로 자처하는 프랑스의 멀티미디어 거대기업인 비방디유니버설의 사장 장 마리 메시에는 오늘날까지 프랑스 영화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 원칙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선언을 했다.

불행하게도 작가와 예술가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프랑스 영화인을 제외하고는 다국적기업의 압제에 저항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하물며 일반 대중은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하다. 거대 기업들은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제하고 있다. <르몽드>가 지난달 20일치에서 문화의 매장자 메시에의 투고를 1면에 싣고 그의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 종언 선언은 짤막한 기사로 최종 면에 실은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지식인은 대부분의 경우 모르는 탓으로 공모자가 된다. 나는 교육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각성했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리는 과오를 범할까 두렵다. 유럽 여러 나라들의 고등교육 제도는 현재 민영화하고 있고 메시에는 해체된 학교에 시디롬 등 `문화산물'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이런 문화산물들은 학교와 문화의 상품화가 수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난해 12월17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메시에의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 종언 발언이 프랑스에서 크게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그가 사장인 비방디가 과연 프랑스 기업인지 미국 기업인지 라는 의문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프랑스 기업이지만 영화·텔레비전 부장은 미국인이며, 메시에의 뉴욕 발언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이 메시에를 통해 프랑스 영화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규칙위반인 국가개입과 공공지출에 상당히 의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떤 경제학자들은 민간과 국가의 공동경영 시대의 복귀를 논하는가 하면 어떤 사회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논하기도 한다. 당신은 언제나 국가의 시장창조 기능과 소득재분배 기능을 지켜왔다. 이런 학자들의 낙관론에 근거가 있다고 보는가.

=나는 사교계의 가치변동에 따라 오늘은 시장 찬성, 내일은 시장 반대 식으로 망설이는 사회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러 성실한 관찰자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를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오늘날 자명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량해고, 부국과 빈국간 그리고 각국 내부에서의 부자와 빈자간 불평등의 증가, 물질적·정신적 비참함과 연대 붕괴와 관련한 모든 형태의 사회 무질서의 증대 등이다.

물론 각처에서 새로운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정치운동의 다양성에 놀라고 있다. 이 운동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조직방식도 낡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중앙집권주의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것으로서 남미·아시아·유럽 각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경제적·상징적(미디어를 통한) 형태의 모든 권력이 극히 소수 나라들의 손에, 그리고 이 소수 나라 안에서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극소수 기업주들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메시에 같은 사람이 적절한 전형이라 볼 수 있다. 그는 금융·경제·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실제로 매주 자신의 권력 확장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야만적인 기업주들이 우리의 일간지와 텔레비전 화면마다 나타나 자신들의 어리석은 승리를 자랑하며 따분한 소리를 오만하게 늘어놓곤 한다. = 대담/정성배 파리사회과학대학원 명예교수 <끝>

부르디외는 누구인가?

피에르 부르디외(71)는 프랑스의 최고 학술기관인 `콜레주드프랑스'의 교수직에서 지난해 10월 정년퇴직한 세계적인 사회학자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방대하다. 전공 분야인 사회학은 물론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과학으로서의 기준 설정에 유난히 엄격해, 학자들이 연구결과(이론)만 발표하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 침묵은 어떤 조작의 은폐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약자 편에 서왔다. 많은 그의 저서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학교를 통한 엘리트 재생산 과정의 분석과 비판에 할애됐다. 그는 사회에 숨어 있는 진실을 캐내 약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무능한 게 아니라 사회시스템이 부당하게 그들의 지위상승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런 사회학자가 반세계화 운동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그는 “우리는 월가의 주가변동은 몰라도 역사흐름의 큰 줄기는 안다”고 말해왔다.

△프랑스 릴대학 조교수(1961) △파리고등연구실천학교 학과장(64) △유럽사회학연구센터 창설(68) △콜레주드프랑스 교수(81) △`신자유주의에 맞설 사회운동의 세계적 연대' 제안(2000) △저서: <재생산>(70) <구별짓기>(79) <국가귀족>(89) <예술의 규칙>(92) <행동하는 이성-자유> 시리즈(96)

- 한겨레 2002.01.06(일) 20:47



2007-11-06 01:36:47
702 번 읽음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캐시선물





365ch.com 128bit Valid HTML 4.01 Transitional and Valid CSS!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