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8년 01월 03일 02:04:41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측이 당초 ‘선(先) 여론수렴－후(後) 추진’ 약속을 번복하고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조기 가시화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당선인측은 대운하 대토론회를 통해 계획의 수정·보완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환경파괴·투기조장 등 대운하 자체에 대한 우려가 큰 여론은 도외시한 것이어서 그동안의 소모적 논쟁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환경운동단체들은 대운하 추진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이재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한반도대운하TF 상임고문은 2일 “대운하는 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하고 공약에 대해 국민들이 이미 선택한 것이니까 바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임고문은 “운하를 시작하면 지방 건설업체들이 하청을 받아 지방경기가 활성화되고 경제도 좋아진다”면서 “취임일 이후 준비되는 대로 착수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원도 이날 “(대운하는) 이제는 공약이 아니라 실천할 과제가 됐다”며 “적어도 지금까지 제기된 반론은 저희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앞서 장석효 한반도대운하TF팀장은 지난 1일 “대운하를 최대한 빨리 시작해 이명박 정부의 임기내에 완공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같은 이당선인 최측근 참모들의 발언은 선거기간 중 국민들의 우려 불식을 위해 이당선인이 언급한 ‘신중 추진’ 약속과 배치된다.

이당선인은 지난 9월말 방송사 정강정책 연설에서 “(대운하를) 일방적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집권하면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국내외 세계적인 전문가들로 하여금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9월28일 환경운동가들과의 타운미팅에선 “환경을 무시하고도 그렇게 (밀어붙여) 해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한다”며 “환경운동가들과 충분한 대화를 가지고 국민적 합의를 이뤄 추진하겠다”고 ‘국민적 합의’를 강조했다.

대운하 드라이브가 일부 측근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당과 인수위 사이의 혼선도 노출되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6일 “(대운하를) 언제 시작하느냐는 중요치 않고 대운하가 꼭 필요하다는 공론을 얻을 때 가능하다”고 국민적 합의를 통한 신중한 추진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8일 장석효 팀장은 대우건설·삼성물산 등 국내 5대 건설사 사장단을 만나 한반도대운하 사업 참여 여부를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한구 의장은 2일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대운하 조기 추진론에 대해 “정부가 굉장히 큰 파급 영향이 있는 것을 그냥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당선자측은 1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토개발원이 주최하는 대운하 토론회를 다음달 개최, 의견을 수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환경파괴 등에 대한 우려가 큰 국민여론을 근거로 강하게 반발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처장은 “대운하를 추진하려면 각종 영향평가와 문화재 관련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당선인측이 초법적 발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당선인이 대운하 계획을 국민 앞에 내놓고 토론을 거친 뒤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물·하천센터 국장은 대운하 대토론회에 대해 “진정으로 여론수렴을 하려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운하TF를 해체하고 국민검증기구에서 처음부터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서울신문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의 지난 1일 신년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과반수가 한반도 대운하 ‘재검토’(51.0%)를 요구했고, ‘공약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24.4%에 그쳤다. 경북 북부와 충북 충주시 등 경부대운하가 통과하게 될 지역의 경우 벌써 외지인들이 토지의 대량 매입에 나서면서 땅값 폭등 조짐을 보이는 등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광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