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가 4대국에 특사를 파견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운전 중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나는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특사란 유사시에 긴밀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에나 파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근한 예로 아프간 피랍 때에 김만복 국정원장이 특사로 현지에 들어간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먼저 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현대적 개념의 국제관계가 아니다. 조선시대 왕이 새로 부임했을 때 형식상 책봉을 받으려고 중국에 사신을 파견한 일은 있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절차에 따라 대통령 취임식이 있을 터이고, 그때가 되면 외국에서 온 경축 사절을 새 대통령이 시간을 내어 만나주면 되는 것이다.
의아해 하던 나는 이어 발표된 4명의 특사 명단을 듣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그것은 안좋은 쪽으로 의문이 가신 것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논공행상이라고 생각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긴급 현안도 없는 이때에 대통령에 취임도 하기 전에 서둘러 특사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왜 하겠는가?
더구나 외교란 창구를 다일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취임까지는 두 달 가까이나 남아 있는 시점에서, 당선인 자격으로 특사를 보낸다는 것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국가 외교적 전략으로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이번 특사 파견에는 아무런 명분은 물론 마땅한 이유조차 없어 보인다. 원래 특사 파견이란 상대국과의 합의가 이루어진 연후에 발표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특사 파견을 제안하고 상대국으로부터 회신이 오면 보내겠다는 식으로 특사 파견을 하겠다고 하니, 이는 듣도 보도 못한 매우 어설픈 짓이다.
논공행상 각유차(論功行賞各有差)
그것도 미국 특사에 정몽준 의원, 중국 특사에 박근혜 전 대표, 일본 특사에 이상득 부의장, 러시아 특사에 이재오 의원이라고 했다. 순간 나는 <삼국지>에 나오는 논공행상 각유차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찍이 오나라의 손권은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공적을 조사하여 상을 주었는데, 각유차(各有差) 즉 사람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위나라 군사를 저지한 공을 갑, 반격한 공을 을로 매겨 고승과 장휴에게는 정장군(正將軍)을 칭호하고, 지원군을 이끈 전서와 전기에게는 편장(偏將)을 제수했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특사 결정은 전형적인 ‘논공행상’이자 아울러 ‘각유차’에도 맞아 떨어진다. 참으로 절묘한 선택이라고나 해야 할까? 미국과 중국을 받은 정몽준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는 각각 갑과 을인 셈이다.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를 받은 이상득 부위장과 이재오 의원에게는 그 아래인 패장이 제수된 것 같아 쓴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정몽준은 선거 막바지에 당선인의 캠프에 전격 합류함으로써 박근혜 진영을 움찔하게 만들며 그들을 상당 정도 무력화시키는 데 공헌했다. 또한 당선자의 친정인 현대의 아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지난 선거에서 노무현과 연대했다가 노무현의 대 미국관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연대를 파기했으니, 미국 특사에는 당연히 정몽준이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다음으로 박근혜는 선거 과정에서 다소 까칠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경선에 승복해 주었고, 이회창의 출마를 비판해 주었다. 게다가 총선 공천 문제도 불거져 있으니 가장 큰 것을 주기는 싫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안 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러니 중국이 제격이라고 보지 않았을까?
사실 이상득 부의장의 경우 일단 그가 특사의 그릇이 되는지조차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논공행상이라면 결코 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당선인의 실형으로서 당선자 재산에 관한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 또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적지 않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검찰의 소환이 예상될 때마다 아픈 몸으로 일본에 가기도 했으니 일본 특사가 제격인 것이다.
이재오 의원의 경우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는 선거 전쟁의 야전군 사령관이었다. 그는 당선자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때마다 검찰과 국정원 등을 항의 방문하는 대열의 모집인이자 인솔자였다. 또한 그는 헬멧을 쓰고 사이클에 올라 경부운하 코스를 답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박근혜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상처까지 입은 바가 있으니 결코 그를 빼 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자고이래로 창업을 하고 권력을 잡으면 공을 세운 사람은 무람히 공을 각축하고, 공이 없는 사람은 아첨의 낯빛을 보인다고 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공이 있어도 그 이름을 지우고 모습을 감춘다고도 한다. 마침 박근혜 전 대표에게 중국 특사가 제의되자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이유란 것이 너무도 치졸한 수준이다.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당선자가 박 전 대표에게 미국이 아닌 중국을 맡긴 것은 부당한 하대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누가 뭐래도 1등 공신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논공을 행상하자면 ‘갑’인데 ‘을’을 맡겼다는 것이다. 맡긴 측이나 반발하는 측이나 모두 우리에게는 쓴웃음밖에는 선사하는 것이 없다.
천하는 마상(馬上)에서 얻을 수 있으나 마상에서 다스릴 수는 없는 법이다. 논공행상은 필경 측근정치를 부른다. 그러니 미구에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중차대한 강대국 국제외교에 논공행상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고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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