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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인들의 언어 수준

 
현대로 올수록 말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옛날에는 개인이 하는 말은 녹음되거나 촬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웬만한 사람들이 하는 공식적인 말은 거의 녹음되거나 촬영되어 기록으로 남는다. 또한 비중 있는 공인의 말이라면 그것은 순식간에 전파를 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만약 이명박 당선인이 광운대 특강에서 ‘(내가) BBK를 창업했다.’는 말만 안했더라면, 대통령 당선인으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이명박 특검’ 사태를 모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낡은 아포리즘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기도 하다.

공인들의 말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국민들은 듣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왜냐 하면 정제되지 않은 그들의 말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이 사회를 척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혼돈상을 보여주는 말

“내가 CEO 형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지만 사실 가장 모범적인 시이오 형 지도자는 예수”

이명박 당선인이 소망교회에서 열린 ‘대통령 당선 축하 예배’에서 한 말이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예수를 CEO에 갖다 붙이려는 발상을 했는지 죽었다 깨나도 모를 일이다. 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미국에서 기업의 사장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 ‘실무경영자사장’ 정도의 뜻으로 전화되더니, 이윽고 만사에 CEO를 붙여 미화하는 소극(笑劇)적인 일이 벌어졌다. 경영을 잘하는 대학총장에게 CEO형 총장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겨우 참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기실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기부금을 많이 유치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른바 흑자를 많이 내는 지도자, 쉽게 말해서 돈을 잘 버는 지도자가 CEO인 셈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는 빈털터리 반항아요 진보적인 개혁운동가였다. 그에게는 조직도 없었고 물론 돈도 없었다. 조직이나 돈 따위는 그의 안중에도 단연코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예수가 돈 잘 버는 CEO라고? 그냥 웃어넘기자니 쓴웃음이 나온다. 아무리 경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예수까지 가져다가 CEO라고 하는 말은 물신주의가 야기한 극심한 가치관의 혼돈 같아 보인다.

증오의 이기심이 빚은 말

“공천에서 과거로 돌아간다든지, 조금이라도 잘못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저지할 것.”

박근혜 전 대표가 자파 모임에서 한 말이다. ‘좌시하지 않겠다.’ 이것은 얼마 전 이재오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 측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때 박 전 대표는 이 말을 ‘오만의 극치’라고 규정했으며 이 여파로 이재오 의원은 최고위원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그 ‘오만의 극치’라고 규정한 표현을 박 전 대표는 상대에게 태연히 되돌려 주고 있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저지할 것’이라는 다음 말이다. 이런 말은 폭력 만화나 조직 영화 같은 데에서나 나오는 극언에 속한다. 아니면 전쟁 상대국에나 써야 어울릴 법한 말이다. 같은 당의 소속원들에게는 다른 표현이 따로 있다고 본다.

마침 박 전 대표는 당선인이 제안한 중국특사 역을 수락했다. 얼마든지 거절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특사는 박 전대표가 아니더라도 적임자가 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상대에게 얻을 것은 다 얻으면서도 상대를 모진 언어로 협박하는 박 전대표의 발언은 후보 자리를 뺏긴 증오의 이기심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나온 말처럼 보인다.

두 정치 신인의 뻥치기 말

국민들은 정치 신인이라면 그들에게 신선함을 기대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계에는 전혀 정치 신인답지 않은 정치 신인이 두 사람 있는 것 같다.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와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참모인 정두언 의원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문국현은 정치에 입문한 지가 반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대선 전 시한을 못 박으면서(10월 말) 그때가 되면 여론 지지율이 20%를 넘을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국회의원 50명 정도가 자기 캠프로 오기로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결과는 천양지치로 달랐다.

“세 당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니 우리가 제1야당이다.”

최근 문국현 대표가 한 말이다. 민주신당과 자유신당의 대표인 손학규와 이회창이 한나라당 출신인 점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의석 수 단 1석뿐인 창조한국당이 제1야당이라는 그의 말에 누가 조금이라도 수긍이나 할 것인가?

그는 선거 직후 “새 정부가 7% 경제 성장을 하고 싶으면 내 자문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더니, 다음 총선에 대해서는 “욕심 같아서는 대선에서 창조한국당이 0% 지지를 낸 곳에서 출마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먼저 이런 발언들의 문제성은 전혀 가능성도 없고 의지도 없는데 짐짓 말로만 한 번 해 본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인격의 정직성에서 문제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더 큰 문제는 문 대표 자신이 이런 발언을 멋진 발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은 피곤할 따름이다. 이런 식의 발언은 킴벌리에서 그에게 월급을 받는 사원들이나 아니면 그를 ‘인간소외 수준’으로 추종하는 이른바 ‘문빠’들 앞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뻥치기’ 발언을 계속 일삼고 있다. 이는 문 대표야말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도록 만든다.

“이회창이나 정동영과 붙고 싶다.”

조중동에 의해 ‘당선인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정두언 의원의 말이다. 그는 초선의원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시작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이회창 총리 밑에서 정무 보좌관을 한 이력이 있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한 것도 이회창 씨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회창과 한 번 붙자고? 이는 인간으로서 밑바닥 수준의 예의조차도 저버린 말이 아닐까 한다.

또한 그는 “정동영더러 한 판 붙자고 했더니 도망가 버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관절 누가 도망갔다는 말인지? 정동영 측에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 다 알고 한 발언이 아니었던가? 일방적으로 말을 저질러 놓고, 그것도 자기 선거구인 서대문으로 오라고 해 놓고, 예상대로 응답이 없자, 상대방에게 ‘도망갔다’는 표현을 쓰는 그가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런 말들에까지 정치적 발언이라고 해 줄 수는 없다고 본다. 정치 이전에 도덕적인 면과 인간적인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선거 국면에서야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 다소 험한 말을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치자. 하지만 선거도 끝났고 새해가 밝았는데도 한국 정치인들의 말은 여전히 비패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지어다.“라고 말해 준다. 언어철학에서는 말이 곧 사람됨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말을 기대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아름다운 말은 십중팔구 위선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원하는 바는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이치, 최소한의 예의, 최소한의 이성에 어긋나지 않은 말을 원할 따름이다. 요컨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그들의 말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척박하게 만들고 있다.
//hantoma.hani.co.kr/board/ht_politics:001001/228117


치세
2008-01-13 22: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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