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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예수가 보호해주는 사회악

 
나는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땅이 많은 집안도 아닌데 삼촌과 고모들이 여럿 있어서 내가 들에 나가 일을 해야 하진 않았고 종종 어른들을 따라 들에 나가서 농사짓는 모습을 구경한 것이 고작입니다.
바이블에 보면 예수가 농사일에 대해 이야기한 장면이 몇 곳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예수가 농군일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만약 예수가 농군이었다면 나보다 훨씬 더 못된 구경꾼에 불과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농사일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농사꾼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터무니없는 억지이며 따라 해서는 더더구나 안 되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는 것이 있지요. (마태 13장)

이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씨가 어느 땅에 떨어져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 부분은 곡식 속에 잡초가 자라는 비유이며 세 번째 부분은 작은 씨에서 큰 나무가 자란다는 비유입니다.
순서를 바꾸어 두 번째 부분부터 딴지를 걸어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의 밀밭에 다른 사람이 가라지(밀처럼 생겼으나 알이 아주 작고 죽정이만 무성해서 곡식이 되지 못하는 잡초)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자랄 때는 모양이 비슷해서 잡초인지 밀인지 구분이 어렵지만 이삭이 펴기 시작하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일꾼들이 투덜거리면서 가라지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가만히 두라’고 합니다.
명분은 “가라지를 뽑으면 밀의 뿌리도 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밀과 가라지는 벼와 피로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벼와 피도 모양이 흡사하여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부들은 밀밭의 가라지나 벼논의 피를 뽑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만약에 가라지와 피를 미리미리 뽑지 않고 두면 이것들의 성장 속도가 곡식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서 곡식이 빨아들여야 하는 흙 속의 물과 양분을 훨씬 많이 빨아먹어 곡식은 비실비실 마르다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들은 번식력이 어찌나 강한지, 덜 익은 씨일지라도 땅에 떨어지면 이듬해에 곡식보다 훨씬 일찌감치 악착같이 싹을 틔워 튼튼하게 뿌리를 뻗어내리기 때문에 뒤늦게 싹이 트거나 심은 곡식은 이들에게 치어 자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농사꾼은 밀이든 벼든 싹이 튼 순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논밭에서 가라지와 피를 뽑는 일을 합니다.

어린 나는 가라지와 밀, 피와 벼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들이 다 자라서 열매가 보일 때까지는 일손을 도울 수가 없었지만 이삭이 펴면서부터는 확실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종종 논밭에 들어가서 피 또는 가라지를 뽑는 일을 거들곤 했지요.
동네 사람들은 내 논 네 논 가리지 않고 길을 가다가 논에 피가 보이면 그냥 지나지 못하고 뽑아주곤 합니다.

만약에 가라지나 피가 많이 드러나는 논밭을 보면 혀를 차면서 “이렇게 게을러서 어찌 농사를 짓는단 말이냐, 파농(농사 망쳤다)했구만”하며 주인을 나무라고 걱정하지요.
그것이 농사꾼의 마음입니다.
즉 누구의 것, 누구의 이해 따위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곡식’을 아끼고 키우는 한결같은 마음이지요.

가라지와 피를 뽑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는 농사꾼은 영락없이 게으른 주인, 농사지을 자격이 없는 일꾼으로 핀잔을 받았고요.
그러니까 예수가 “그냥 내버려두라”고 한 것은 요샛말로 헛발질도 아주 거리가 먼 헛발질이지요.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이 끝나는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아서 묶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끝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 나라에서 추려내어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마 13:37-42)

예수는 가라지는 ‘남을 죄짓게 하는 자, 악행을 일삼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밀과 벼가 빨아먹어야 하는 물과 양분을 빼앗아먹고 밀과 벼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며 온갖 해충들의 피난처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가라지와 피를 ‘남을 죄짓게 하는 자’와 ‘악행을 일삼는 자’로 비유한 것은 아주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되는 것이 염려스럽다며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나를 죄짓게 하는 사람들과 사회제도, 악행을 일삼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내가 다치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냥 놔두라고요?

연약한 내가 다치게 될 것을 염려한 눈물겹게 고마운 배려인가요?
추수할 때 그것들을 묶어 불태운다고요?
추수할 때 그것들 때문에 곡식은 여물지 못하여 쭉정이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쭉정이도 불에 태운다고 협박하지요. (마태 3:12)

추수할 때 불에 태우겠다고 하면서 보존해 준 ‘나를 죄짓게 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악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 나도 ‘쭉정이’로 함께 불에 태우겠다고요?
제발, 남 탓하지 말고 남이 아무리 죄짓게 하고 악행을 일삼아도 너는 깨끗하고 의로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고고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설령 내가 다치더라도 죄짓게 하는 무리, 악행을 일삼는 무리는 그 씨앗부터 고르고 돋아나는 싹부터 뽑아 없애준다면 얼마나 세상살이가 즐겁고 태평하겠습니까?

지극히 일부 성직자와 기관을 제외하고 기독교가 일반적으로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소극적이거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 대한 구분을 앞세워 회피하는 현상은 바로 이 잘못 가르친 예수의 교훈이 의식화된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지극히 일부 기독교인들은 절대다수의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눈엣가시 취급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고 보면 스스로 예수의 제자임을 고백하건 말건, 교회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사회악을 방관 보조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고 이를 뿌리뽑자고 나대는 사람들은 예수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네요.

(사진:kkum68님의 불로그에서 몰래 훔쳐왔음. 부지런하고 성실한 농군의 보살핌으로 잘 자라 아름답게 열매맺은 벼. 좋은 사진을 공개해주신 kkum68님, 고맙습니다. 이 글로 혹시 뭐 좀 생기면 저작료 내겠아오니 도용했다고 고소하지 말아주세요.)

치세
2008-01-21 20: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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