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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병 팔면 부자되는 독일 (펌.)

 
//blog.hani.co.kr/sunny/9350

지갑을 열어보니 1유로짜리 동전(1300원) 하나만 달랑 들어있었다.
오늘 내로 꼭 부쳐야하는 소포가 하나 있는데 큰일이다.
방만구씨나 나나 지갑에 돈을 두둑히 넣어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늘처럼 둘이 합쳐 2천원도 못건지는 날은 없었는데.

우리는 평소 비상금을 넣어두는 소금통을 뒤져보고
혹시나 싶어 지난주에 입었던 자켓주머니도 훝어보고 한국돈이 든 비상지갑까지 뒤져봤지만
땡전 한 푼 찾을 수 없었다.

“차타고 은행가서 돈좀 뽑아와.”
했더니 방만구씨가 은행이 아닌 우리집 발코니로 갔다.
거기 술상자, 물상자에서 주섬주섬 빈병을 비닐봉다리에 담았다.
맞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집에 굴러다니는 빈병만 팔아도 만원은 건지겠다 싶은 걸.
방만구씨는 빈병을 봉다리에 담으며 말했다.
대학다닐 때 땡전한 푼 없을 때마다 빈병팔아 목구멍에 풀칠했다고.

우리는 PET병 몇 개와 맥주병 몇 개를 갖다주고 받은 돈으로
초콜렛 하나를 사고도 4천5백 원 가량 받아왔다.
물론 그 돈으로 소포도 부칠 수 있었다.

그럼 여기서 한 번 독일에서 빈병 하나가 얼마인지 살펴보자.
PET병과 캔은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에 25센트이니 우리 돈으로 325원이다.
유리병 하나는 크기에 관계없이 하나에 15센트이니 195원이다.
그러니 집에 굴러다니는 빈병을 모아 팔면 껌 뿐만 아니라 맥주도 살 수 있고 쌀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빈병이 참말로 똥값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게는 이 부분에 안성맞춤인 빈병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예전에 빈병팔아 생계를 이어보려고 수퍼에 갔다가 참 허탈했던 기억.

때는 방만구씨가 학생때, 연애을 하러 한국에 왔을 적.
소싯적에 빈병을 팔아가지고 목에 풀칠한 적이 있었던 그가 예전 버릇을 못버리고 집에 쌓인 빈병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러다 하루는 빈병팔러 길을 나섰다.
그걸 팔아서 맥주를 사먹겠단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와 독일의 차이를 몰랐다.
빈병값은 우리나라가 독일보다 훨씬 싸지만 맥주값은 우리나라가 훨씬 비싸다는 차이를.

어쨌든 우리는 집에서 꽤 떨어진 구멍가게까지 맥주 한 병을 사먹겠다고 빈병을 열심히 날랐다.
그렇게 날랐건만 빈병을 보고도 구멍가게 아저씨가 전혀 안반겨주었다.
주인이 심드렁하니 나는 더 쪽팔렸다.
십원짜리 병 팔러 먼길을 온 여자라니... 그것도 외국인과 함께.
쫌스럽기도 하지.

하나에 20원, 30원짜리 소주병 맥주병을 세다보니 돈으로 안바꿔주는 병도 꽤 있었다.
많은 병을 들고간 보람도 없이 우린 그걸로 새우깡 한 봉지 겨우 샀다.
오면서 생각했다.
우리 어릴 때도 엿장수한테 저만큼 빈병을 팔면 빨랫비누 정도는 받았던 것 같은데 요새 빈병은 정말 똥값이라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얘기다.
몇 년전 사민당과 녹색당 연합이 정권을 잡았을 때
기존의 유리병 뿐만 아니라 그간 쓰레기 취급받던 PET병과 캔도 돌려줘야 병값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정책이 실현된 초기에는 나도 꽤 불편했다.
일단 병값을 얹어 음료수를 사야했고 기존에 그냥 버릴 수 있었던 빈병을 모아뒀다가 환불받아야 했으니 번거로운 일이었다.

흔히 독일 수퍼마켓에서 팔리고 있는 가장 저렴한 1.5리터 물값을 보자.
물값이 247원, PET 병값이 325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물값보다 병값이 비싼 셈이다.
이러니 어느 누가 빈병을 쓰레기로 보겠는가.

이 정책이 도입되고 난 이후 진짜 거리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병이나 맥주캔이 싹 사라졌다.
심지어 거리를 전전하며 빈병을 주워 파는 새로운 직업군까지 생기게 되었다.
빈병을 주워서 파는 일은 세금높은 독일에서 드물게 세금을 떼지않는 쏠쏠한 부업이니
약간의 쪽팔림을 감수한다면 할만한 일이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6년 여름, 함부르크에 살고있는 나는 토고전을 응원하기 위해 시내에 갔다가
빈병줍기 부업에 나선 한 군단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마트용 카트, 손수레, 자동차, 륙색 등을 가지고 나와 물만난 고기마냥
거리응원을 나온 시민들이 버린 빈병줍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들을 보고있자니 월드컵 특수는 FIFA가 아니라 이들이 누리는 것 같았다.

그럼 한 번 계산해보자. 캔 하나에 삼백원이라치면 열 개에 삼천원, 백개에 삼만원이다.
그 북새통에서 두어 시간 부지런히 다니면 삼만원 벌기 어렵잖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황이 이러니 월급이 쥐꼬리라 생계가 어렵다면, 실업급여가 충분치 않다면,
화려한 여름휴가를 원한다면 빈병을 한번 줏어봄직도 하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몇 년 내로 빈병을 팔아서 부자된 사람의 이야기가 빌트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지도 모르겠다.

추가)
아까 쫌스럽다는 표현을 썼는데 우리 부부가 사실 대단히 쫌스럽다.
우린 어딜 입장하더라도 두당 맥주 한 병씩은 꼭 챙겨서 다닌다.

8천원짜리 영화보러 영화관에 갈 때도, 만원짜리 술집 콘서트에 갈때도. 4만원이 넘는 비싼 공연보러 갈때도.

이런 곳엔 무식하게 0.5리터 큰 맥주 들고갔다간 들고온 맥주란 게 탄로나니 꼭 작은맥주이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전엔 맥주를 안챙겨가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난주말 큰맘먹고 5만원짜리 공연을 꽤 큰 콘서트홀에서 봤는데 그때 맥주 안가져온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공연비에 두당 5만원씩 들인 것도 아까운데 옷 보관료로 2천원 들였고 작은 맥주 하나에 3900원이나 주고 사먹은 거다. 레스토랑에서도 3200원하는 거를. 거기다 빈병 환불하러 갔더니 환불도 안된단다.

주최측도 참, 빈병값 남겨서 얼마나 부자되겠다고...

치세
2008-01-31 13:40:56
907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음냐.. '08.2.2 9:08 AM 신고
    울나라가 이거 도입하면 이명박씨 악플로 인터넷 폭주될듯 ㅡ_-;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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