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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탓.] “이 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니까 그런 줄 아시고...”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모 씨가 마침내 배후를 실토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맙쏴~)
이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혹시 인수위 하는 꼴이 모두 가당찮아 보이는데 임기는 열흘밖에 남지 않았으니 홧김에 그리한 것이란 말인가?
물론 그랬을 리가 절대 없다.

그렇다면 방화 피의자 채모 노인이 실성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다시 말해 숭례문 방화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는 말이 정신 나간 노인네의 실언이라는 것인가?
그것도 그렇지 않다. 노인은 결코 실성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말도 정신 나간 노인네의 실언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게 되어 있다.

채모 노인의 노무현 발언 황당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노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멀쩡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도 채모 노인과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이 엉뚱한 데만 신경을 쓰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채모 노인의 ‘노무현 방화 교사설’에 버금가는 견해를 피력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이다.
정 최고위원은 11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공식 발언에서 생뚱맞게도 숭례문 방화의 불순 세력 배후설을 강력히 제기한 것이다.

“시기적으로 구정 초에 민족의 혼이 담긴 상징적 건물인 국보 1호 방화라는 점에서 혹시 불순 동기가 개재되지는 않았는지.... 국정원등에 합동수사본부를 긴급히 구성하여 방화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이에 호응하여 이명박 당선인도 ‘사회혼란설’을 제기했다.
그는 화재 현장을 방문하여 ‘전체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 걱정이다.’고 말하고
‘(방화범은) 의도적이고 전문가 아닌가? 상당히 계획적인 것 같다.’고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당선인은 무슨 의도인지 소방방재청장에게 세 번이나 똑같은 것을 묻기도 했다.

1) “누각이 높은데 어떻게 올라갔지요?”
2) “3미터나 되는 데 어떻게 올라갔어요?”
3) “내가 (숭례문을) 좀 아는데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갔지요?”

뒤늦었지만 나는 이 당선인에게 꼭 대답해 주고 싶다.
“사다리로 올라갔대요.”

코미디와 진실이 전도(顚倒)된 대한민국
코미디를 코미디인 줄도 모르고 연출하게 되면 그것은 지독한 아이러니 상황이 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코미디는 비단 이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고의 코미디는 정몽준 최고위원에 의해서 연출되었다.

“당연히 중앙정부가 책임이 있고 지방정부도 책임이 있겠다. 그리고 문화재관리청에도 책임이 있고 소방당국도 책임이 있다.... 행정부도 책임이 있지만 예산 지원을 하지 않은 우리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

정 최고위원은 방화 책임론으로 우리나라의 헌법기관을 죄다 열거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쯤 되면 채모 노인의 ‘노무현 교사설’은 차라리 근거가 있는 편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회적 배경과 연륜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간 매사 ‘노무현 탓’은 대한민국의 화두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출근길 버스가 고장 났어도 ‘노무현 탓’이라고 한다는 말이 회자되었을까?
어디 이뿐이랴?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도 노무현 탓,
월드컵 때 대 가나 전(戰)에서 참패했을 때도 노무현 탓,
박주영이 감기로 프리미어리그 결장했어도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연예인이 이혼해도 노무현 탓이고 독거노인이 가출해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
심지어는 제시카 알바가 옷을 벗은 것도 노무현 탓이라고들 하는 말이 있었다.
원빈이 군대에서 무릎이 파열됐는데 노무현은 워 했냐?
중국이 위성 발사에 성공하는 동안 노무현은 뭐 했냐? 토고가 미인대회 우승했는데 노무현은 또 뭐 했느냐는 말도 유행했다.

물론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황당하다고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다.

“유조선 사고와 이천 참사는 저희들이 판단하기로는 명백한 노무현 정권의 잘못에 기인한 인재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안상수)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주한미군 재배치 가속화는 노 정권 탓”(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한총련 시위는 친북좌파세력을 비호해 온 노무현 대통령 탓.”(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노무현 탓’은 해외로도 알려지게 된다.
2004년 6월 9일 자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미군 감축과 재배치를 노무현 정부 탓’으로 공격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엊그제 2월 14일 자 조선일보의 사설 역시 전형적인 ‘노무현 탓’이다.
조선일보는 작년 대선 전 날 김만복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기념 표지석을 북쪽에 가져간 일에 대해,
“평양에 ‘노무현’ 이름 석 자 남기려 그 난리를 쳤다니”라고 비틀고 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인수위가 언론사 간부 성향 파악을 지시한 일에 대해서도 아주 기발하게 ‘노무현 탓’을 구사했다.
그것은 “구미에 맞지 않은 언론에 대해서는 기자와 정보를 따돌리고 갖은 핍박을 가해 온 노무현 정권의 정신 나간 관행에 길든 관료가 한 짓”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채모 노인의 ‘노무현 방화 교사설’을 어찌 황당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지?
마지막으로 지난 2월 13일 자 조선일보 35면 광고에는 마침 채모 노인의 것과 똑같은 주장이 대서특필되어 있어서 소개한다.
이 광고는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에서 낸 것이었다.

“남대문 全燒(전소)의 모든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주하는 데 정신이 팔린 대통령이 본업인 국가 위기 관리에 실패하여 국보1호가 잿더미로 변했다.”

채모 노인의 ‘노무현 방화 교사설’은 모든 것을 노무현 탓으로 돌리는 이런 기이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터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채모 노인의 발언을 전해 듣고 분노하거나 아니면 허탈한 나머지 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노하지도 말고 웃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치세
2008-02-19 2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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