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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코마/고려/코라이.] 고구려 역대왕 계보

 

자세한 내역은 아래 링크를 읽어 주세요.
여기서는 링크의 글에 기술된 내용의 잘못만 바로잡을게요.

링크) //hompy.dreamwiz.com/kkk7799/cgi-bin/bbs/myhome_bbs.cgi?b=19&c=v&n=3

1대 동명성왕 : 기원전37년~기원전18년
.. ..
압록강 연안인 졸본천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라 함
.. ..
압록긍이라는 건 한족 왕조측의 해설이고
츄신(朝鮮) 제국의 동방지역(현재의 만주) 도읍지였던 태백산에서(현재의 백두산) 발원하는 토문강 유역까지를 아우르는 강 유역
및 지역명이자 화북지방의 하왕조~은왕조에서 동쪽 대국의 이름으로도 불렀던, 츄신 제국 제2수도 아리스(洙)의 땅
아리스의 강가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高麗, 코마(음독하면 고려)로 정했는데
나중에 漢나라, 隋나라에서 몇 번이나 침략해 왔지만 "농성전"에 못이겼다고 해서

"성체를(句) 쌓는 나라"
"성체를(句) 쌓는 이적들의 나라"
句麗라고 부르던 걸, 당나라 후기에 재편찬한 역사서에서 정리한 표현일 뿐이고

BC40년 추모성왕이 재건한 츄신제국의 새 이름 코마에서
그 먼먼 후손인 고영창이 AD1116년 황제를 자칭하고, 독자적인 원호로 융기를 건원한 대원국에 이르기까지
코마왕족, 고려황족의 대외관계에 있어서의 등극명은 항상
【高麗王】, 【高麗皇】 ~帝였고
쇼도쿠태자, 나니와(難波) 시대에도 【上國高麗ノ御使い】를 高麗皇의 사자로 받아 모셨고
헤이안 시대에는 야마시로(헤이안京) 귀족의 ⅓ ~나라 귀족의 ½ ~카가(오늘날의 石川) 귀족의 ½이 코마우도(高麗人)였었고
500년이 흐른 AD1585~7년, 토요토미_히데요시 관백 각하가
전국통일 후에도 지방 다이묘들 사이의 공정거래와 교역이 안되고 잔 분란과 인플레가 안잡히는 걸 시정할 겸

【명나라까지 진출하자】는 대원정 계획을 세우셨을 때도
당시, 조선의 인종-명종 시대까지만 해도 쓰시마를 통해 그럭저럭 대화의 창구가 마련되어 있던 와이-조 관계가
남인일색으로 독점된 선조시대에는 "와이의 나라를 상대적으로 아주 야만인 취급을 하자"고 뻗대고 나와서는
이 참에 아예 조선이 있는 "카라반도를(韓半島, 카라쿠니/韓國는 코마/高麗에서 청동과 약초가 많이 나는 남쪽 반도지역을 부르던 말) 정벌해서, 우리 나라(일본) 나니와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다이묘, 有洙川(旧高氏) 코마왕를 그곳을 다스리는 왕조로 다시 추천하자"
..고 시작한 전쟁사업이
관영전진이어서(조선측 이름으로는 임진왜란)

그 뒤, 코마의 망명왕조는 에도막부 시대까지도 온존했대요.
단, 동군의 에도막부는 코마왕조와 무지~사이가 좋았던 서군의 번들이 눈에 가시라서, 카가, 에치젠, 나니와, 야마시로의 코마우도의 후예들을 경계하고, 당시에는 이미 쿄의 수도였던(쿄우토) 귀족, 쿠게의 ½까지가 코마우도가 점하고 있었던 것을 이유삼아서라도
"관동지역 무가 이외의 다이묘는 정치에 관여를 금한다"는 쇼군령 포고를 내릴 때까지(1636)

코마 왕조는 면면이 이어져 왔답니다.
이름자, 姓를 왕이 (지어서)하사하는 건
제국의 특권으로서 츄신과 코마에서 행해져온 일인데

코마와 표기만은 똑같은 코라이에서는(高麗 고려, 王氏 왕조의 나라) 따로 이름자를 휙휙 새로 지어서 작위와 함께 주지는 않고
왕이나 주요귀족이 자기 이름자에 끼워넣어 줬대요.
(일본의 경우, 헤이안 후기 후지와라 시대, 남북조 시대의 풍습)



치세
2009-06-16 21:16:28
2276 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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