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사장비의 역사에서 상당히 주목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세계 최정예를 자랑하는 F-22 랩터의 구매를 중단한 것이다.
미 의회는 모두 46개 주에서 2만5000명의 인력을 수용하며 지난 30년 동안 지속되던 F-22의 구매를 끝냈다.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20대의 F-22 구매에 필요한 17억5000만 달러를 지출할 것인가, 아니면 이 돈을 군대의 즉응력을 개선하는 데 써야 하는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F-22 구매사업을 놓고 벌어진 줄다리기는 그야말로 위협과 긍정적인 약속, 혹은 즉흥적인 토론이나 상식의 나열 등 사용할 수 있는 언어력이 모두 동원된 지루하고 뜨거운 싸움이었다.
F-22가 얼마 전까지 미국 국방의 총아로서 각광을 받다 갑자기 이처럼 치열한 설전을 벌여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은 비용과 효과라는 효용 측면의 대비 때문이다.
백악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F-22 사업의 반대에 앞장섰던 진영이다. 이들은 F-22는 바로 냉전 당시 대결 구도 속에서 등장, 성능은 최고이나 그에 비례해 비용 면에서도 최고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미 공군은 애초 F-22 개발 당시 약 750대를 구매하기로 계획했다. 지난 1994년 시작해 1996년에는 그 수가 648대로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상당한 숫자였다. 그러나 지난 2003년과 2004년에는 다시 구매 숫자가 339대로 줄어들었는가 하면 2006년이 지나갈 무렵에는 애초 구매숫자의 3분의 1 수준인 277대로 대폭 감소한 상태가 됐다.
지난 2006년까지 F-22에 지출된 미 국방 예산은 모두 620억 달러에 이르렀다. 미 의회 예산국의 계산에 따르면 지금까지 구매돼 유지되고 있던 F-22에 투입됐던 예산은 한 대당 무려 3억6100만 달러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연구개발 비용 천문학적
지금까지 F-22를 제작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사용된 예산은 약 280억 달러에 달해 총비용은 천문학적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미 187대의 F-22가 조달돼 미군이 실전에 사용하고 있지만 F-22 자체는 비용 대 운영 측면에서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유지에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했다.
물론 공화당 정부가 그대로 유지됐더라면 당연히 연장됐을 일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민주당 주도의 국방 운영 정책 측면에서는 방산업체들에게만 유리한 이 사업은 당연히 폐기되는 운명을 맞은 셈이다.
게이츠 장관 자신은 공화당 인물이지만 워낙 정치적 색깔이 탈색된 합리적 관료라는 명성답게 공화당에서는 군비 축소에 앞장서는 입장만을 보여 왔다. 그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 자신이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보는 국방 구매는 모두 중단하고 있다.
게이츠는 모두 20대의 F-22를 더 요구한 국방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요청된 4000억 달러의 예산을 스스로 삭감했다. 그리고는 록히드마틴사의 로버트 스티븐스 CEO에게 만일 F-22의 구매를 더 요구할 경우 뒤이은 F-35의 구매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F-22 랩터나 F-35 라이트닝은 모두 주 계약사가 록히드마틴사이다.
이에 대해 스티븐스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서한을 통해 자신이 게이츠 장관의 입장을 지지하며 기업 이익을 생각하기에 앞서 조국의 이익이 먼저이다는 말로 화답했다. 이후 그는 록히드마틴사에게 고용된 모든 로비스트들에게 활동 중단을 지시하고 삭감 법안이 통과되도록 했다.
의원들 가운데에서는 그러나 F-22 구매사업이나 F-35 구매사업 모두를 자신의 출신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정부에 구매 유지를 요구하는 등 정부 입장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경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역구민들에 어필할 수 있는 막대한 예산 사업의 유지에 대한 강력한 희망이 반영된 것이다. 때문에 이 사업은 중단되는 것보다 계속하는 것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지난 6월에는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예산의 부족한 상황이 감지되자 다른 예산에서 17억5000만 달러를 끌어다 집어넣었다.
그러나 존 매케인 의원(애리조나주)이 민주당의 칼 레빈 의원(미시건주)과 함께 그 같은 예산의 전용을 거부하는데 앞장서 없던 일로 만들었다. 매케인 의원으로서는 조국이 방위산업체에 이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이들 의원들은 백악관과 게이츠 국방장관 등과 협력, 당초 삭감예산의 통과를 위한 51석 찬성표 모으기에 돌입했다.
백악관의 타협의 수장인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은 특유의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시카고 지역의 오랜 친구이자 전 상무장관이었던 빌 딜레이에게 게이츠 장관이 시카고 지역에서 경제인클럽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게이츠는 이 자리에 참석, 왜 F-22 구입이 중단돼야 하고 미군의 전체적인 윤곽 내에서 차지하는 모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강력하게 연설했다. 물론 여론의 반향도 컸다. 이 같은 여론은 바로 백악관이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딜레이는 이후 “우리는 엄청난 작업을 했다”고 강조했다. 지역의 경제인, 특히 보잉사의 전문가들, 중역 등이 대거 참석한 이 자리에서 행한 연설은 이후 F-22의 중단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중요한 모멘텀을 얻은 자리였다.
반면 백악관에서도 이 같은 전략이 구사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번째로 F-22 구매가 예산에 포함돼 있을 경우 이를 거부하겠다고 거부권 행사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일본·이스라엘등서 구매 희망
어쨌든 이제 F-22 사업은 중단됐다. 그러나 이 전투기는 워낙 숱한 화제를 뿌렸던 만큼 인기도 높아 현재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구매 요청이 들어왔던 터라 앞으로 미국 내 구매 중단 이후 해외 판매가 허용되는가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F-22S를 자위대 전투기 대체 기종으로 선정, 구매를 요청해오고 있었다. 록히드마틴사나 의회 의원들로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지역의 해당 공장을 돌아가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 이를 허용하려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F-22의 해외 판매에는 그러나 이번 구매 중단의 중심에 섰던 국방부를 비롯해 국무부, 그리고 의회의 3군데에서 공식 허가가 나야 가능하다. 게다가 일본이 F-22를 구매할 경우 워낙 대당 가격이 높아 국방비가 GDP의 1%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무너지게 될 우려가 높다.
이스라엘 역시 이를 원하고 있다. 약 24대의 구매를 원하는 이스라엘은 판매 거부 자세를 보이던 미국이 가격을 올려 잡아 대당 2억 달러를 호가하면서 역시 예산의 부담을 고민하기도 했다. 호주의 노동당은 이미 정부가 F-22를 구매할 경우 이를 찬성한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6년 자국의 고도기술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의회가 법안으로 해외 판매의 금지를 규정해놓기도 했다.
지금까지 실전에서 모두 144차례의 공중전을 벌여 144대0으로, 단 한 대도 격추당한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가진 F-22에 대한 해외의 구매 욕구는 바야흐로 미국 내 구매 중단으로 인해 치열한 각축전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질 전망까지는 하지 못해 고가의 전투장비 판매로 재미를 보던 미국으로서는 스스로 해외 판매 금지를 규정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언제 다시 슬그머니 이를 바꿔 실리를 취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워싱턴=뉴시스】최철호 특파원 = hay@newsis.com
2009년 08월 04일 (화) 08:59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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