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 곧장쓰기 하다가, 약간 길어져서 도중에 글 날려먹기를 두 번 해서..
마구마구 요약하기로 대신할게요.
요는 양키/미군이 나쁜 거다! ..라는 거래요
일본의 어떤 사람들이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라고 하는 건
일본이 미국의 식민지로 있던 1945~1953 기간 중에,
【미국이 일본 땅이었던, 사이판을 잡아먹은 대신에 일본이 동해~일본해에 있는 독도를 점령해도 간섭하지 않는다】
는 양해가 있었고
이 암묵적-이면적 관계를 더욱 안전한 것으로 하기 위해, 당시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서 동해/일본해의 항구적 안전을 위해 바위섬을 접수하고, 다케시마/독도의 평화를 수호한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다케시마의 국기로 성조기를 게양한다.」
는 의사를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래요.
서력 18년
고려 3대 대무신왕, 호동왕자를 파견해 옥저를(원산) 고려제국에 편입되도록 교섭.
서력 58년
옥저 편입. 650년간 고려의 남항으로 기능.
고려의 남경태수 동쪽 바다 건너 카가의(加賀) 나라에 의류, 서적, 약재를 수출하고 은을(銀) 수입하는 상단 기항지로 삼다.
698
(재흥)고려국(대진국, 중국명칭은 발해, 해동성국)
단군 쥬신제국으로부터 연원한 고려제국의 연호선포. 와이의 나라에 이르는 교역로 부활.
(오늘날의 일본 이시카와현 일대. 고려의 도래인들이 마을과 성을 이루었고, 지도자는 다이묘, 귀족, 공작으로 봉해졌대요.)
오늘날의 흥남~함흥의 땅을 남경으로 정해 남경태수에게 오늘날의 울릉도 대간/관리를 맡김.
왕건 고려
동계 부사에게 울릉도와 독도 방위를 맡김.
이성계 조선.
태종대왕 이방원의 명으로 울릉군 설치.
..선조대에 방위선 축소로 폐지.
1608년
광해군 등극. 후금이(청) 명을 이길 것을 내다보고 중립외교를 취함.
북방 정벌군을 울릉군으로 돌려 동해안 지역 개간.
(오늘날 일본의)에치고번과 교역.
해안지역 민생안정.
1623년
인조반정(쿠데타) 서인 일파가 대북파, 친청_친왜 사대교린 기조의 집권부를 축출함.
울릉군 폐지. 외지 벽도를 유배지 전용으로 지정하다.
(명나라에 바칠 공물은 안나오는 땅이라서..)
1690년(숙종 16년)
역관 장씨의 여식, 원자를 낳고 희빈의 지위에서 모후로 불린다.
중인과 지방호족이 중용되다.
장희재, 호조참의 등의 게이트로 관동 관찰사의 항만정비사업 추진비용을 계상하다.
1693년(숙종 19~20년)
어부일을 하던 선비, 안용복이 독도/울릉도에서 일본의 부랑민을 몰아냄.
이듬해 호오키주 성주에게서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영토라는 확인을 받아냄.
1694년(숙종 20년)
연잉군 탄생. 최숙원의 몸에서 난 연잉군은, 후일 영조대왕이 된다.
서인계 후궁에게서 제2왕자가 탄생한 것을 기화로, 서인들(노론) 재건의 기운을 떨치다.
서인의 위임을 받지 않고, 동해를 건너 와이의 나라에서 담판을 지은 안용복을 관위사칭의 죄를 물어 유배시킴..
1699년
숙종, 정권쇄신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서인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당시 중전이었던 장妃를 희빈으로 돌리고, 서인의 딸 민氏를 불러들인다.
중인과 평민, 무관 등 관할외 게이트를 다수 가지고 있던 장희재를 위험인물로 지적, 파면하고 폐서인으로 삼는다..
당시 영상이었던(수상) 남_구만은 숙종의 무익한 환국/숙정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처형을 만류하다 낙향한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이 구절이 드라마로 많이 쓰인대요.)
정조 대왕 시대
정_약용, 이_제마 등의 신학자들의 조선 지도제작에 독도가 등장하다.
관보 천하도의 조선팔도에 독도의 표시가 등장하다.
철종~대원군 시대.
김_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등장하다.
..대한제국, (구)한국 시대..
1894 갑오경장.
"~전"이라는 이름 대신, "~법"의 형식을 갖춘 국가규범의 체제를 편성하고 근대국가로 도약한다.
李왕조 건융이래 두번째로 연호를 도입한다.(첫번째는 정조 대왕 때)
연호는 건원.
1897년 광무개혁.
건국이래 이어진 조공을 폐지하고, 청의 제후국이 아닌 대한제국 성립을 선언한다.
영국, 러시아, 미국, 프랑스, 스페인 영사를 통해 서양 각국의 원수들의 축전과 승인장을 받다.
제국 성립을 기념해, 연호를 광무로 고친다.
1899년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제국 국제를 선포하고 시행하다.
1900년
고종황제, 대한제국의 울릉도 및 독도에 대한 영유권 선포한다.
1904년 한일신협약.
대외 군대파병권을 일본제국에 이양당하다.
1905
일본제국 시마네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본 현의 소관 아래 편입한다 는 내용 고시.
일본은 1906년 4월 이 사실을 한국정부에 통보.
당시 조선은 외교권 박탈로 대응하지 못함.
1904년
한일협정서 체결.(대외 군사행동권 이양)
시마네현 고시 40조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도로부터 85해리에 있는 무인도는 타국이 이를 점령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취가 없기 때문에
일본영토에 편입하여 타케시마라고 명명하고 시마네현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한다
(전년도의 한일협정으로, 본토와 제주도 이외의 낙도에 파견된 순찰병력은 모두 불러들여진 상태였다.)
1907 일본 각의 독도 일본 편입 결정
1910 일본제국, 대한제국을 합병
1914 일본제국, 도이치 제국으로부터 사이판 섬을 탈취하다.(~1944년까지 점령)
1941~1945 태평양 전쟁.
패전 후 미국은 서부 태평양 남양군도에 있어서, 미국-구암, 일본-사이판, 스페인-필리핀 영유구조를 고쳐
【미국 ∋ 구암, 사이판, 필리핀(신탁)】
구조가 확립되다.
일본의 보수진영에서는 사이판이 태평양전쟁이나 만주국 수립 이전부터의 영토였으므로 오가사와라 제도와 함께 영유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군사정권의 중간직들은 전범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국에 모두 바친다.
1948년 애치슨 선언.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
미 점령군의 일부를 한국에서 철수.
1950년
한국전쟁 발발.(조선인민공화국 × 미합중국)
1952년 11월
전후처리를 위한 미국의 제2평화선이 울릉도와 독도 사이로 설정되다.
1952년
이승만 정부 독도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라는 행정구역에 포함시키는 평화선 선언
1952년
일본, 평화선 안에 포함된 독도/일본명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보냄
1953년 2월
미군과 조선인민군의 휴전협정 시작.
그러나 참여를 독려받은 이승만 정부는
【우리 한국 힘으로 북쪽으로 진군해서,
이북 사람들 다 죽여버리고 통일할 수 있다】고 휴전협상을 거부한다.
현재의 DMZ 주위로 산발적 전투에 의한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
(이승만, 자유당)대한민국 정부의 휴전협상 거부/비협력으로
반년 이상의 난항이 이어진다.
1953년 5월
일본인들이 미국기를 게양하고 독도에 상륙.
조난어부 위령비를 파괴한다.
(성조기로)일본 영유권 표시를 한다.
이에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 의용수비대 를 결성 일본인들을 몰아낸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점령지, 식민지로 되어 있었으므로, 성조기를 미군 관리들을 자극하지 않는 국기로 썼다.
여기서는 설립한지 얼마 안되는 경찰 자위대를 보내서,
독도를 미국 땅으로 만들면, 결국 관리/관할권이 현지에서 가까운
식민지인 일본으로 넘어온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별로 먹을 것도 없는 바위섬이지만,
굳이 2등식민지/일본 국민이 3등식민지/한국 땅을 미국 소유라고 활약하는 것을 말릴 이유도 없어서 양해한다.
... 1등식민지: 본토에 가깝고 미국영어가 잘 통하는 쿠바, 푸에르토리코)
1954년
한국, 국군의용대를 독도에 파병.
1958년
한국, 독도에 상주 경찰대를 두기 시작하다.
1967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제국시대 보상문제 협의.
독도의 처리문제가 불거지자,
『그깟 바위 덩어리 폭파해버리는 게 화근을 없애는 일 아니겠느냐』
는 한국측 대표의 제안에
일본측 대표는
【미국의 관할이 미칠 수 있는 땅이므로 그럴 수는 없다】
고 대답한다.
.. ..
일본의 신문에는 솔로몬의 판결, 진짜 어미는 누구인가 사건이 인용되다.
(아들 애를 놓고 우리 애다. 아니다 우리 애다.. 하는 판에 반토막 내면 되겠냐는 일화.)
... ...
자잘한 분쟁지역화의 의사를 거쳐..
.... ....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