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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전사연구소

 

국가는 월남참전중 화학전무기피폭으로 인한 
고엽제후유의증환자를 전상군경으 예우하라!!
              
                 6월은 "보훈의 달" 입니다. 
 
          한국 베트남 참전 인터넷 전우회  www.hgvvk.co.kr/
        
          한국베트남 전우회 네이브카페
                           //cafe.naver.com/hgvvk.cafe
     대한인터넷방송 //www.koreanwebcast.com
 
     

대구 매일신문 10월20일자 기사

<사신을 마중하는 심정으로>

 



천지일보 10월 20일자 기사

   
참전군인의 국가유공자 대우를 외치며 도로를 걸어 대전역에서 옥천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윤창호(62)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윤창호 전우의 말 / 나라 위해 싸웠으니 이젠 나라가 지켜주셔야죠.!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예순이 넘은 나이에 군장의 무게와도 같은 20kg의 짐을 꾸려 철도를 따라 국토대장정을 떠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왜 국토대장정을 해야만 했을까. 온몸에 ‘정부는 각성하라’는 표어를 달고 묵묵히 도로를 걷고 있는 이 사람은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이었던 윤창호(62) 씨다.

10월 3일 개천절에 강원도를 출발해 서울을 거쳐 부산을 향하는 그를 만난 건 11일 후 대전역에서였다. 열흘 넘게 쉬지 않고 걸어왔을 터지만 전혀 지친 기색을 볼 수 없었다.

   
윤창호 씨가 국가의 성장에 발 맞춰 국가를 성장하게 한 발판이 된 참전군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강원도에서는 홀로 시작했지만 대전역에서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 각지에서 참전군인과 미망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구석진 골목에서 육개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기도 잠시 다시 먼 길을 떠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항으로 올라갔다가 부산 3부두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갈 거에요.”

부산 3부두는 40여 년 전 참전 용사들이 국민의 환송을 받으며 베트남으로 떠났던 곳이다.

대장암과 방광암으로 몇 차례 수술까지 받아 국토대장정을 하기 위한 결단은 쉬운 것이 아니었을 터. 걸어가면서 발톱이 빠지고 어깨에 창상이 나기도 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가고 있어요. 차라리 대장정을 마치기 전에 내가 죽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다들 참전 용사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지금 보훈처에서 하는 정책은 전혀 참전군인의 명예를 지켜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6.25든 베트남전쟁이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을 인정해주고, 큰 보상이 아닐지라도 국가유공자로 대우를 해달라는 입장이다.

비록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쟁에 참가하는 대신 명예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금은 살아있지 않지만 대통령으로서 약속한 것이기에 현 정부가 그 약속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윤 씨는 나라를 지키려 희생을 각오하고 전쟁에 참가한 대가가 이것이라면 훗날 전쟁이 일어나면 자식을 절대 전쟁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참전자는 장애의 유무에 따라 대중교통 무료 이용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질병을 얻은 경우 휴우증 7등급과 휴우의증(경증, 중증, 고증)으로 나뉘어 수당을 지급받고, 보훈 병원에서 질병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휴우증 판정을 받은 참전자는 유공자로 인정돼 수당이 가족에게 승계가 되지만 휴우의증 판정을 받은 참전자의 가족에게는 수당이 승계되지 못해 사각지대가 생기게 된다. 이에 보완책이 요구되고 있다.

대전역에 윤창호 씨를 함께 만난 고엽제휴우증미망인회 서울지회 최순남(72) 씨는 “고엽제 휴우의증을 앓았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남은 것은 빚과 병과 나이밖에 없다.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수당마저 끊겨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윤창호 씨의 국토대장정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미망인회 회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난처한 입장이다. 국가 보훈처 관계자는 “참전용사들에 대해 명예를 선양해드리고 수당을 높여드리는 것은 맞다”고 참전자의 입장에 대해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또한 “국회에 입법안을 올려 국회의원 선에서 수당을 높여주고, 명예를 선양할 수 있는 방책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전하신 분의 숫자가 너무 많아 재원이 많이 필요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여러 분야의 합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 국회차원에서 긍정적인 심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死神을 마중하는 심정으로>  

 

나는 지금 칠순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죽음의 대 장정을 떠난다.

나 죽어 우리 전우들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고 이 땅의 꺼져가는

애국의 불길이 들불처럼 퍼져 나가 목숨 바쳐 사랑한 내 조국이 영원

무궁토록 번영을 누리기를 충심으로 소원하며 이 길을 간다.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이 길을 선택하여 대 장정의 국토종단을 결심하고

장도에 오르면서 평소 내가 이 정부에 수없이 탄원하고 요구했던 것들을

유서를 남기는 마음으로 다시 강력하게 촉구한다.

 

나라가 부강하고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참전영웅들을 최상의 예우로 받들어 타의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역사적 진리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 나라의 보훈정책이 과연 그러한가, 가슴에 손을 얹고

편견 없이 생각해보라

 

나라를 누란에 위기에서 구해낸 6.25 참전 선배님들은 물론 베트남 참전

용사들을 위한 형편없는 보훈정책은 차라리 그 위대한 나라사랑의 정신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들으라, 악법도 법이라 했으니 국민의 고혈로 녹을 먹으며 고관대작의 반열에서

거들먹대는 소위 국민의 대변자라는 선량들에게 고하노니

이 신파적(新派的) 희극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허울 좋은 보훈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실질적이고 보편타당한 예우를 하도록 보훈 행정의 환골탈태를

충심으로 촉구한다.

 

우리 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잊히거나

왜곡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역사적 진실을 바로 잡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바르게 전하고 6.25

참전영웅들을 국가 최고의 예우로 정중하게 받들 기위한 의원 입법을

최우선으로 입안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세계 최빈국의 수치스러운 나라로 외국에서 구걸을 하다시피 하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 있는 나라로 국가의 부(富)를 쌓아 올리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목숨을 초개같이 던졌던 베트남 참전자들을 국가

최고의 유공자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실질적 예우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입법화 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전쟁보다도 더 비참했던 국가적 가난으로 기아선상에서 초근목피로 연명

하던 그 암울했던 1965년은 6.25의 참화가 전국을 할퀴고 이 땅을 폐허의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지 불과 12년 후였다.

세계가 이 나라의 회생을 불가능하다고 입을모았을때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과

당시의 국회의원들이 이들 용사들을 죽음의 전장인 베트남에 보낸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피와 땀은 불가능하다는 조국을 기사회생 시키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

그 전장에서 우리는 오천 전우를 잃어야 했고, 일만 천여 명의 전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국가는 겨우 이들을 거두어 생색낼 정도의 보훈정책

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베트남 참전 전우들에겐 치유될 수 없는 치명적인

화학무기에 무차별 노출 피폭되어 고엽제라는 생소한 천형의 벌(罰)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우리의 조국도 세계와 어께를 나란히

할 정도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고 겨우 고엽제 후유증이니, 후유의증이니 하는 해괴한 용어를

만들어 양분하여 차등 대우하고 있다.

이들의 천형의 질병은 현재 나타난 전우와 아직 발병하지 않은 전우라 해도

이들 모두 하나같이 잠재적 고엽제 피폭 환자임을 인정하고 물심양면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병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라.

 

받았으면 돌려주고, 빌렸으면 갚는 것이 보편적인 인과관계가 아닌가?

이들의 피와 땀을 빌렸으면 당연히 돌려줘야 하고 갚아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오늘의 국가적 가치가 수직상승한 밑바닥에 이들의 숭고한 피와 땀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라.

작금의 우리 경제가 한줌도 안 되는 이 노병들의 피 맺힌 요구를 무리하다며

예산부족이라는 구차한 변명을 할 정도로 형편없다면 우린 또 참을 수 있다.

 허나 60년을 총부리를 마주하고

싸워온 불구대천의 적에게 천문학적

금품을 제공하여 그들을 대량 살상무기로 무장시키는 어리석음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 노병들에게 예산타령을 한다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보훈처는 죄 없는 예산타령으로 참전노병들을 두 번 죽이려 하지 말라.

 

베트남 참전노병들을 단순하게 남의나라 전쟁에서 목숨 걸고 싸운 자들로

폄하하지 말라.

비록 전선은 이국땅이었으나 당시의국제정세와 당면한 우리나라의 입장이

파병을 하지 못할 경우 한반도의 전쟁 억제를 위해 주둔하고 있던 미군이

철수하여 베트남에 투입되도록 한다는 미국의 정책에 의하여 이 땅에 다시

제2의 6.25가 도래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 할 수 없었기에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우리군의 파월은 조국의 155마일 휴전선을 전 방위에서 지켜

냈고 그로인하여 우리 군의 장비가 현대화되었음은 물론 구제불능의 기아를

탈피하고 오천년 철옹성 같았던 보릿고개를 허물어 버리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정리 하여 나는 이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국가와 민족을 지켜낸 진정한 1등 공신인 6.25 참전 노(老) 영웅들에게

현실적이고 합당한 예우를 함으로서 국가최고의 유공자임을 인정하라.

 

2) 오늘날 경제대국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는데 초석이 된

베트남 참전 영웅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최상의 국가유공자로서 예우

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3) 베트남 참전으로 장열하게 산화한 용사들의 유가족과 미망인들에게 국가

유공자의 미망인과 유가족으로 공평하게 예우할 것을 촉구한다.

 

4) 고엽제 후유의증이란 해괴한 용어로 더 이상 참전전우들을 우롱하지

말고 그들 또한 잠재적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하고 그에 타당한

예우를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끝으로 본인 윤창호의 오늘의 고난의 가시밭길이 헛되지 않도록 전우

여러분 모두 하나 되어 우리들의 뜻을 관철시켜 나갑시다.

제2의 윤창호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보여 줍시다.

나죽어 전우 여러분들 앞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다해도 전우여!

우리 슬퍼하지 말고 뜻을 이루는 그 날 조국을 진정사랑 했노라고 밝게

웃으며 만나기를 소원 합니다.

 

 

2010년 10월3일 하늘 문 열리던 날 이 땅을 종주하는 대 장정을 시작하며

 

오음리 성지에서 윤 창 호

 

 

 

 

  初心 은 백치가 되어


그는 걷는다.

그 걸음의 끝은 어딘지 모른다.

내 머리로 더 많은 숫자를 모르니

그냥 천릿길이라고 부른다.

천리가 얼마나 먼지도 모르겠다.

나는 백치가 되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여러 번 본 듯한데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는 누구인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내 기억장치에 고장이 났나보다

김 수병이던가? 박 병장이던가?

가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려보았는데

내 대신 웃으며 정글로 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 40년을 그를 기다리며

아주 천천히 느리게

죽어간다.

 

晩書 홍 윤 기


 

생각대로라면 윤창호 전우가 돌아오는 날 국회의사당이나, 혹은 보훈처 앞,

아니 G20 정상회의장 아니면 숙소 근처에서 평화적으로 피 끓는 호소를

했으면 좋겠다.

무엇 때문에 노구를 이끌고 길 잃은 나그네 되어 이 나라 방방곡곡을 광인(狂人)처럼

헤매고 있는지 소리칠 수 없으면 피켓이라도 들어 노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길가에 퍼질러 앉아 꺼이꺼이 통곡이라도 했으면 이 답답함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은데

내로라하는 세계의 거물들이 이 미친 짓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집회와 시위가 보장된

민주주의 나라라고 칭찬할지도 모르겠다.


이 가슴에 멍울진 회한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지 않는다면 천형의 고엽제

보다 더 먼저 울화 의증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이제 얼마나 더 살겠다고 추태를 부리느냐고 그들이 묻는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내 후손들을 위해서라고 대답

하리라.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냐고 묻는다면 짝사랑하던 그래서 목숨까지 아낌없이

저당 잡혀 주었던 조국이란 연인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겠다.

아니 버림받은 사람보다 잊혀진 사람이 더 슬픈 사람이라니 우린 버림받고

또 잊혀진 사람들이기에 슬픈 늙은이라고 소리쳐 주리라.

교과서 어디에도, 역사의 진실이 사라져 버렸으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유령인 셈이다.

국가가 버린 쓸모없는 뒷방늙은이 취급이니 가정에서 사회에선들 어른 대접받기는

애당초 틀렸으니 이 나라엔 늙은이는 있어도 어른은 없다.

어떤 정신 나간 강사라는 젊은 여자가 남자들 군대 가서 사람 죽이는 것

배워 왔다고 비아냥 거렸는데, 우린 배우고 넘쳐서 실전을 체험했으니

그래도 그 경험이 제년이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지키는 귀중한 교본이 되고 있다고 일갈 할 텐데

도덕과 예의라는 단어도 이젠 우리처럼 잊혀진 슬픈 이름으로 사라져가고

힘이 곧 정의라는 위험한 생각으로 꽉 찬 인간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이니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가볍다.

허니 목숨 걸고 참전했다는 것이 별일 아닌 전쟁놀이하고 온줄 아는 사람, 사람들

그들에게 또다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는데 꼭 하루만 그렇게 해봤으면 시원하겠다.


허지만 사실 배 두드리고 사는 높은 양반들은 전쟁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군대만 가면 죽는다는 것을 6.25 때 뼈저리게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본인도, 그 새끼 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부자가된 대한민국의 온갖 혜택은 다 받는 놈들이 은혜를 입었으면

보은을 함이 마땅한데도 엉뚱한 짓으로 노병들을 화나게 하고 비참하게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꼴을 G20 정상들에게 알려주면 나라망신이 될까?

나라 망신 안 시키고 치사하게 애걸복걸도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걷는

윤창호 전우의 모습은 오늘 내 모습이고 우리 전우 모두의 모습이다.

아무리 인간이 神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는 망각의 동물이라고 해도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하는 하등동물 같은 인간이 어떻게 높은 자리엔

올라가 있는지 불가사의 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까맣게 잊고 저 잘나서 부자 된 냥

졸부의 행세라니 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되어 마음 편하게 죽을 수도 없다.

그저 마음 같아서는 참전 노병이 아직 살아 있음을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다.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는데 우린 그래도 인간이고 전쟁을 하께

치른 역전의 전우들이 아닌가?


내가 앞장 설 형편이 못되는데 다른 전우들에게 선봉장이 되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가슴만 까맣게 타는 아침이다.

晩書 홍 윤 기

 

 

 

파월 한국군전사 보시는 방법

 

안녕하세요

파월한국군전사(派越韓國軍戰史) 보시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자료 찾기 -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정보자료실 - 원문보기 -파월한국군전사 [10] 파월한국군전사

파월한국군전사 제1권(상) 64. 9 - 66. 3 (개정판) 國防部 戰史編纂委員會 1978

범례에 월남, 월맹의 국가명, 제3장 선발대 및 연락장교단의 활동 의 파월한국군전사 책 페이지 제147쪽에 “군사협정”이 있는데 월남전 당시는 1급 비밀문서 입니다.

파월한국군전사 제1권(하) 66. 4 - 66. 12(개정판) 國防部 戰史編纂委員會 1979

파월한국군전사 제2권 67. 1 - 67. 6 (개정판) 國防部 戰史編纂委員會 1981

짜빈동 전투 관련 등 필요한 자료는 해당 페이지를 선정하고 복사하여 보시면 됩니다.

파월한국군전사 제3권부터  제10권까지

파월한국군전사 사진첩 2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월전사연구소  대표  정보제공 / 김연수 님

 
 



남상학
2011-08-28 21:38:53
673 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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