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전에 패해서 너무 분하다(퍼온글)
대분분 공감이 가는 글이라 옮깁니다.! 원래 글도 펀글이라 원 작자는 모르겠습니다.^^
졌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멍했다. 패배에 대한 충격 때문은 아니었다. 게임은 언제나 질 수 있는 거다. 패배가 없다면 승리도 기쁠 일이 아니다. 패배라면 지난 월드컵까지 참 지겹게도 겪어 봤던 거다. 처음 겪는 일이라 생소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고 슬퍼서도 아니었다.
나는 분했다.
경기를 져서 ?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였기에 ? 편파네 음모네 하는 일부 유럽애들 면상에, 자 봐라 우리 실력이 이 정도다 라고 복수하지 못해서 ?
아니다.
난 이번 월드컵에서 한 번도 진다는 생각을 하며 경기를 본 적이 없다. 우린 강팀이니까.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다만 강팀들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승과 패가 갈리길 원했을 뿐이다. 3,4위 전에 간다면 터키가 아니라 브라질과 붙고 싶었다. 그리고 그 승부의 결과가 무엇이든, 언제든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이번 독일전에서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기는 걸 보고 싶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우리는, 머리가 노랗고 새파란 눈에 학교에서 배웠던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백인들이 던지는 의혹과 공격에, 자신이 매 맞는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는 데 익숙한 매맞는 아내처럼 그렇게 주눅이 들어 우왕좌왕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스로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우리 승리를 조금이라도 더 감격스러워 하는데 열중하지 못하고,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이 벅찬 6월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지 못하고, 그렇게만 써도 아까울 시간에 인터넷을 떠돌며 외국언론을 기웃거리며, 그들의 한 마디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의 한 마디에 기가 죽고 그들의 한 마디에 한숨 쉬고 그들의 한 마디에 다시 위로 받고.. 그렇게 우리를 `그들의` 관점에 휘둘리게 만든, 우리 속에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있는, 그 컴플렉스.. 그 식민기질.. 그 오리엔탈리즘.. 그 조가튼 것들이 그 경기를 통해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꼴을 보지 못한 게.. 그게, 나는 너무 분했다.
또 나는 분했다.
개인을 버리고 하나의 팀이 되어, 한 사람 몸 값이면 우리 선수들 전부를 사들일 수 있는 자들을 맞상대해 발목이 꺾이고 코뼈가 부러지고 온 몸이 멍들며, 그렇게 온 몸을 내던져 얻어낸 이 자랑스런 승리가 편파판정과 음모론을 들먹이는 일부의 유럽인들에 의해 폄하되고 의심받고 공격받는 데도,
언제나 우릴 가르치려 들던 이 땅의 식자들이, 이 땅의 언론들이, 이 땅의 높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외국 기사나 찾아 헤매고 도대체 뭘 해야 할 지도 감도 잡지 못한 채 그 공격에 반박 한마디 못하고 찌그러져 있는.. 유럽과 아시아가 붙는 준결승이라면 당연히 제 3대륙에서 심판이 나와야 했음에도 갑자기 준결승부터는 유럽이 심판을 본다고 하고, 편파는커녕 우리 땅에서 역차별을 당하는 판정을 내내 받고도 단 한 마디도 못하는 그 지지리도 못난 꼴이.. 그 억울한 걸 변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제는 패해서 기가 죽어버린 늘어진 우리 선수들의 어깨 위에 오버랩 되어.. 나는 정말이지 분통이 터졌다.
1등 신문이라는 좃선아, 언론 영향력 1위라는 작자야, 울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전통을 가진 니들이 대표로 나가 디져라. 그렇게 사람들을 훈계하려 들더니, 그렇게 하늘 위에 떠 만사를 꿰뚫었다는 듯 굴더니, 그렇게 한국을 손에 쥐었다는 듯 굴더니, 정작 우리가 억울해 가슴을 칠 때 세계를 무대로 단 한 마디도 못 꺼내놓는 이 조또 아닌 우물안 개구리 새끼들아. 다 나가 디져라.
나는 또 분했다.
누구누구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누구누구가 똥볼을 차서가 아니라, 누구누구가 패스미스를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뒤를 돌아보고 한탄하고 아쉬워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승하지 못해 분했다.
우리 선수들을 칭찬하자. 어떤 칭찬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됐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왜 우린 이 정도만이어야 하는가. 왜 우린 우승하면 안 되는가. 언론들아, 이 정도면 잘했다는 소리 이제 그만해라. 그게 국민들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우릴 패배에 익숙하게 만들지 마라. 4년 후엔 독일을 꺾자고 말하라. 다음엔 남북한 단일팀을 만들어 우승하자고 말하라.
패했다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우린 안 된다고 자학하고, 월드컵 기간 중에 감독 을 짤라 버리는 지랄을.. 이제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하는 만큼, 어떤 패배도 이만하면 괜찮은 거라고 말하지 마라. 승리가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다음 승리에 대해 이야기 하라.
8강을 목표로 한다던 독일은 기회가 오자 우승하겠다는 자의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그게 승리에 익숙한 자의 태도다. 우리와 전력차가 컸던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유럽팀과는 다르게, 우리를 철저히 공부했으며, 진지하게 싸움에 임했고, 마침내 우리를 이겼다. 독일팀에 박수를 보내고, 패배를 인정하자.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어떤 패배도 이만하면 됐다고 하지 마라. 세계의 벽이 높다고 다시는 말하지 마라. 이제는 우리가 그 세계의 벽이 되자고 말하라. 그리고, 우승하지 못한 게 분하다고 말하라. 그렇게 패배에 어색해지고, 그렇게 승리에 익숙해져라.
그게 우리 같은 강팀에 마땅한 정신이다.
이제 다시는 잊지마라 대한민국,
우리가 강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강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