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조중연 전무님에게 긴급히 말씀드립니다.
조 전무님께서 최근 논란이 된 국가대표팀 포상금 지급과 관련하여 프레시안 기자에게 "균등지급하라는 것은 공산주의적 발상이다. 내 자리를 걸고서라도 차등지급은 관철시키고 말겠다. 차등지급 결정 번복은 있을 수 없다"고 일갈하셨다지요?(프레시안, 축구협회,포상금 똑같이 나눠주기로, 2002.7.4)
나는 그 기사를 읽고서 참으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온 국민에게 즐거움을 준 월드컵 축제를 슬기롭게 마무리하자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공산주의'라니요? 그런 말이 여기서 왜 나온답니까? 조 전무님이 '차등지급'을 고집하는 건 좋습니다만, 그렇다고 '균등지급'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들'로 몰아부쳐도 되는 것입니까?
조 전무님의 말씀 한 마디로, 홍명보 선수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 모두가 '공산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힌 몹쓸 인간들로 간단히 규정되고 마는군요. 차등지급 논란이 일었을 때 그들이 앞장 서서 '균등지급'을 요구했으니 말입니다. 그 뿐입니까? 만약 축구협회가 끝까지 차등지급을 고집한다면 받은 돈을 모아 똑같이 나눠갖겠다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차제에 '공산주의적 발상'을 가진 국가대표 선수들을 목이 쉬어라고 열렬히 응원한 온 국민들의 사상도 한번쯤 의심해 보시지 그러십니까? 스포츠신문 굿데이와 야후가 각각 최근 실시한 '축구대표팀 포상금 지급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균등지급에 찬성표를 던졌답니다.(스포츠굿데이-82%, 야후-81%) '공산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힌 불순한 국민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접수되게 생겼으니 정말 큰일 아닙니까? 국민들이 'Be the Reds'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광분(?)하는 것도 수상쩍기 그지 없지요?
조 전무님, 포상금 균등지급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하셨다니, 그렇담 하나 물어 봅시다. '자본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히면 전무님처럼 다 그렇게 사고하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겁니까? 대답을 듣기 전에, 여기 조 전무님의 자본주의적 발상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있어 기억을 되살릴 겸 잠깐 소개해 드리지요.
"차등지급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인데, 네티즌이나 일부 언론이 이상하게 몰고가고 있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가장 많이 뛴 선수는 6백86분을 뛰었는데 안뛴 선수는 0시간을 뛰었다.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똑같이 받느냐. 그렇게 하면 누가 열심히 뛰겠냐..."(프레시안, 조중연 전무-"평등지급 주장은 공산주의적 발상", 2002.7.3)
"그렇게(균등지급) 하면 누가 열심히 뛰겠냐?"고요? 그러니까 조 전무님의 '자본주의적 상식'에 의하자면,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열심히 뛴 것"은 오로지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겁니까? 전무님의 그런 말씀은 돈으로 만물의 근본을 삼는 '자본주의적 발상'에 딱 들어맞는 말이지만, 국가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국민의 성원에 답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뛴 우리 선수들에게 너무 지나친 모욕이라는 생각은 안드십니까?
조 전무님은 축구협회에 몸담고 계신 분이니 나보다 더 잘 아실테지요. 히딩크 감독이 일전에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의 순수함이 나를 들뜨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히딩크를 감동시킨 한국선수들의 순수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대부분의 유럽 선수들이 월드컵대회를 자기네 몸값을 올리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그야말로 자본주의적 발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는 달리,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기쁨을 삼고 국가의 명예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소박한 열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유럽에서 건너온 파란 눈의 이방인에게 이런 한국 선수들의 순수함은 분명 아름다운 충격 내지는 감동적인 경이로 다가왔을 테지요. 혹시 잊으셨을까봐 다시 리와인드시켜 드리지요.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한국 대표팀의 첫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다. 선수들의 열정을 말한다. 그들은 내가 내린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했으며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유럽 선수들은 개성이 강하다. 그들은 프로라는 의식만을 갖고 있을 뿐이며 하나의 팀으로서, 아니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사명감은 떨어진다. 월드컵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선수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며, 그 무대에서 뛰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무척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스포츠조선, 데 텔레그라프지와의 인터뷰에서, 2002.6.8)
조 전무님의 눈에는 이런 모습들이 왜 안보였을까요? 나는 그것이 정말 이상합니다. 혹 조 전무님은 '자본주의적 발상'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오로지 돈! 돈! 돈 밖에 없다고 그렇게 믿고 계신 건 아닙니까? 그래서 태극마크를 달고 운동장에서 다리에 쥐가 나도록 뛰고 있는 선수들이 벤치에 앉아 있는 동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착각하신 건 아닙니까?
(아, 정말 싫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빌어먹을 그 놈의 물신주의가 환멸스럽습니다.자신과 견해가 다르다 하여 균등지급을 주장하는 다수의 국민들을 서슴없이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몰아부치는 그 냉전적 사고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습니다.)
조 전무님.
전무님은 앞서 "내 자리를 걸고서라도 차등지급은 관철시키고 말겠다. 차등지급 결정 번복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축구협회는 이러한 전무님의 뜻을 배반하고 국민 여론을 핑계삼아 균등지급을 결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어찌 하실 작정이십니까? 차등지급을 관철시키지 못하셨으니 그 말씀에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라도 자리를 물러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공인에 합당한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나아가 '공산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힌 다수의 국민들도 조 전무님의 퇴진을 원하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조 전무님이 더 이상 축구협회에 머무르실 수 있는 명분은 없는 듯 보입니다.
하여 말씀드리건대, 부디 대한축구협회 전무자리에서 속히 '하야'하시어 스스로를 명예롭게 하십시오. 그 길만이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던 월드컵 4강의 기쁨과 감격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나아가 한국축구의 앞날을 기약하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조 전무님의 아름다운 결단을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