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해안초소 총기사고
2002년 7월 3일 오후 1시 15분
강릉시 사천면 모부대 해안 초소
경계근무 중이 던 최수익상병과 박성식 일병이 후임 교대자에 의해서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7월3일 당일 철벽부대에서는 상부의 지시에 해무(바다의 안개)의 증가로 인하여
해안 경계를 강화하라고 각 대대에 지시 하달 하였습니다.
최상병과 박일병이 소 속된 대대에서는 경계근무를 위한 사병을 소집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명령하달 할수 있는 상급자가 없었으며 상황병인 병장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최상병이 근무를 자원하였으며
박성식 일병을 최상병이 임의대로 지명하여 경계 근무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두사람은 초소에 도착하여 11시13분에 상부에 연락 을 하였으며
그후 사체가 발견되기까진 통신이 두절 되었습니다.
사망 추정시간은 11시30분에서 11시40분으로 추정됩니다.
사건현장의 모습은,
박성식 일병이 쪼그린 자세로 문쪽(송림)을 향하여 머리를 의자 모서리에 대고
있었으며 오른손은 최수익상병의 배위에 올려져 있는 총열 덮게 위에 올려져 있었음.
또한 최상병은 머리가 문쪽으로 향해 누운 상태임.
외관상 사인은,
박일병 은 턱밑에서 총을 쏜 상태이며 최상병은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왼쪽 가슴으로 관
통한 총상과 등뒤 오른쪽 하단에서 쏜 총상임.
군수사당국은 이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없이 박일병이 최상병을 쏘고
자살했다는 한방향으로만 몰고 가고 있음.
다른 방향과 가정인 상황은 아예 생각 도 안하고 쉽게 결론을 지으려고 함.
그러나,
이사건은 군수사당국의 설명과 주장과는 다르게
현장검증때 나타난 두 사체 상태로 봐도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점이 상당히 내재해 있음.
의문점으로는,
1.
군수사당국 발표는 사고전 두 사병간의 격투가 있었다고 주장하나 현장검증
때 보여준 두사병의 옷차림은 지나치게 단정하였으며 초소안의 상태도 정리가
잘 되어있음(두사병의 몸무게는 80kg 정도임)
2.
박일병이 최상병을 살해 하였다면 하급자가 빈탄창을 초소앞 왼쪽 5m지점에
버리고 탄띠에서 실탄창을 빼내고 봉일을 뜯어낸후 삽창하여 노리쇠로 한발
장전후 최상병을 쏨.
그렇다면 하급자가 이러한 일련의 모든행동을 하고 있을
때 상급자 최상병은 좁은 초소안에서 무방비상태로 있었다는 점은 상식선에
서도 이해가 안감.
또한 박일병이 최상병을 살해하고 자살하였다고 한다면 어떡해 총이
최상병의 배위에 개머리판이 바닷가 쪽을 향하여 반듯이 놓여 있으며
박일병손이 방아쇠가 아닌 총열 덮개를 잡고 있었다는 점 또한 이해가 안감.
3.
박일병이 자살하였다면 현장의 위치에서 볼때 뇌수와 탄두의 흔적이 박일병
의 뒤쪽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박일병의 우측 부근에 나타나 있고
박일병의 자세 또한(머리가 앞으로 숙여진 자세) 자살을 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
4.
초소안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면 초소의 벽에도 많은 핏자국이 있어야 하나
별다른 흔적이 보이지 않은점.
5.
군당국은 처음에는 총성이 3발이었다고 하나 현장검증때 실탄5발이
보이지 않음으로 나중에는 7발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한점.
또한 나중에 찾은 탄피4개와 실탄 1발도 지뢰 탐지기로 모래속에서 찾았다고 함.
과연 탄피가 사격후에 모래속에 박힐수 있는지도 의문이며 찾아낸
탄대와 실탄의 위치와 거리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못함.
삽창된 실탄 15발의 행적에서 탄창에 남아있는 실탄5발(예광탄1, 실탄4)
초소안에서 발견된 5발(탄피3 실탄2) 초소밖에서 발견된 5발(실탄1,탄피4)
가 발견되었는데 총기 사용으로 볼때 밖에 실탄이 나와있는점 또한 의문스러움.
6.
사건에 사용되어진 총이 현장검증때 단발의 위치에 있었다고 하면서 박일병
의 사망에는 몇발이 사용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함.
7.
사건발생후 1시간 남짓되어 두사병의 인적사항과 사건개요(일방적인 방향)가
한국일보에 보도되었다는점.
군 정훈참모인 김소령은 보도자료를 3시 55분 배포했다고 함.
현장검증때 군당국은 유가족이 도착하기 전까지 현장을 비공개 로 보존했다고 함.
8.
최상병은 하급자 구타사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며 후방부대와 교체
후(7월10일) 징계를 받기로 되어있음.
또한 경계근무시 소지한 총이 본인의 총이 아닌걸로 나타난점.
9.
최상병의 시체가 좁은 초소안에서 맞추어 논듯이 누워져 있다는 점.
10.
서해 교전후 군에 총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두 사병의 사체가
1시간30분 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는점.
11.
군수사당국의 말대로라면 최상병이 피해자라면 최상병의 유족이 박일병의
유족에게 어떠한 식으로의 울분을 표현했어야 하는데 현장검증후 도망가듯이
춘천국군병원으로 가서 황급히 부검을 하고 화장을 했다는점도 납득할수 없음.
12.
군당국은 문제사병인 최상병의 관리 감독을 태만히 했으며 영창대기자인
최상병에게 실탄을 소지케하고 경계근무를 하도록 했다는 점 또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움.
위에 열거한 모든 의문점에 대한 유가족의 질문에대해 어느하나도 명쾌한 대답을
군당국은 주지 못하고 있음.
단지 국립과학연구소 타령만 하고 있음.
유가족에게는 어떠한 최소한의 자료도 열람을 안시키고 있으며
유족의 요청에도 갖은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며
5일이 지난 이 시점에도 유족은 어떠한 자료도 열람하지 못함.
유가족이 가지고 있던 현장검증 비디오 테이프를
사단법무참모 가 유족이 보관할수 있도록 동의한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단헌병대장 박영규의 지시하에 작전을 방불케하는 헌병부대원들이 동원되어
부녀자를 밀치고 팔을 꺽으며 비디오테이프를 뺏어갔음.
이러한 행동에 대해 헌병대장은 어떠한 죄책감 도 없이 정당하다고 함.
모든것을 종합해 볼때 유가족 측에서는 군당국의 사건 을 은폐, 축소시키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
유가족의 강한 요청에 군당 국은 박일병의 죽음에 대하여
억울한 죽음이라는 궁색한 변명만 하고있음.
군당국은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인 조문을 어느 누구도 오지 않았으며
죽은사병의 부모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하지 않음.
58연대 연대장인 박영희 대령은 유족 에게 7월5일 오후 3시까지
온다고 약속하였으나 오지 않았고 핸드폰으로 연락한 결과 전원이 꺼진 상태로 연락이 두절됨.
이런점 또한 의혹이 증폭됨.
유족은 어떠한 시련이나 고난이 닥치더라도 이겨내고 명확한 진상이 밝힐때까지 영안실에
아들이며,
조카이며,
형제인 박성식일병을 지키면서...
끝까지...
싸울것입니다!
도와주세요...
7월 3일 12시 강릉 서천면 육군 모부대에서 해안경비근무를 하고있던
박모 일병과 최모 상병이 총기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신문이나 뉴스로 접하셨을겁니다.
박모 일병이 저의 친척형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저희 집에서 같이 자랐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정말로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
올해 2월에 입대를 하여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어의없는
국군의 잘못으로 저의 친척형, 그 착하고 성실한 우리 형이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그 사고가 난 초소는 원래 박모 일병이 근무하던 부대담당의
근무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7월 3일 아침에 바다에 해무가 많이 껴서 갑작스럽게 근무를 나갔습니다.
하지만 근무를 나간 경위도 너무 억울합니다.
저희 친척형은 그 전날 야간근무로 9시부터 12시까지 취침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해안경비는 11시부터 1시까지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된 경위인지 모르겠지만 담당자는 없고 같은 내무반의 병장과 최모 상병이
해안경비를 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병장이 최모 상병에게 근무를 나가라고 지시했고
최모상병은 자고 있는 박모 일병을 지목해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최모상병은 군에 있으면서 영창도 몇 번 다녀오고 수차례 교육을 받고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7월 10일경에 영창을 가기로 예정이 되있었다고 합니다.
어떡해 군에서 이런사람이랑 단 둘이!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근무를 내 보낼수가 있습니까?!
저희 친척형의 동기생의 진술로는 최모 상병이 평소에도 예전부터
자기 밑의 병사들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간 존엄성까지 깍아내리는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군에서는 어떡해 이런사람을 아무 대책없이 단순히 영창날짜만 잡아놓고
일반병사와 같이 재우고 같이 밥먹고 같이 근무를 서게 할수 있습니까?!
이건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병대 에서 조사를 나왔습니다.
오늘로써 3일이 지났습니다.
첫쨌날!, 둘쨋날!, 셋쨋날!...
와서 하는 말이 모두들 똑같습니다!
글짜 토시 하나 안틀리고 맞춤법하나 안틀리고!
제일 황당한것은 수사관들이 뭘 수사한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추정! 추측! 계속 그런 소리만 합니다!
말도 맨처음과 틀리고 점점 저희 형을 자살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최상병측은 첫날 시체를 수습하고 아주 조용히 강릉국군병원에서 빠져나가
춘천군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저희 친척형은 아직도 강릉병원의 군 영안실 냉장실에서 이 여름에 억울함에
두 눈 못감고 차갑게 누워 있습니다.
군 수사관 측에서 저희가 원하는 대답은 못해주고 자꾸 같은소리만 반복하고
상황추측만 계속하고 외부와 차단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군 병원에서 거짓말 을 하고 나와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권력이 이런것입니까?
계급이 이런것 입니까?
속히 별 단 사람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고 말만 서로 맞추고
눈치서로 보면서 그러구 있습니다.
꽃다운나이 22살에!
나라가 불러서 어쩔수 없이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
22년동안 열심히 착하게! 죄한번! 안 저지르고 정말로 착하게 살았는데...
군대에 와서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현장을 찍은 캠코더가 있습니다!
그 캠코더 테이프 유출을 막고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증거를 저희 손에 가져야 됩니다.
하지만, 그걸 확보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습니다.
수사관이라는 사람과...
수사관이 하는말로는 국가재산이라서 함부로 건내줄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절차라는게 전화로 줄줄히 연결되서 다시 줄줄히 내려 오는거 아닙니까?
그 잘난 윗분들에게!
그리고 국가재산이라는데 저희도 세금냈고 죽은 저희 형도 착실히 세금냈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소리를 하고 몸싸움까지 한 수사관들을 저희 유가족들은 믿을수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것은 조속한 수사와 정확한 사인!
우리 형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는것입니다!
여태까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걸 후회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남자로 태어난것도 후회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후회되고 화가 납니다.
너무 억울하고 우리 형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 글 보시고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요!
7월 4일
저희 유가족측은 전국 군폭력희생자 연합회 회장님과 23사단 법무참모 와 모든것이 합의하에
수사과정과 모든것들이 진행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습니다.
현장비디오를 유족측에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보관하는 과정에서도 헌병대 두명이 화장실까지 양옆에 붙어다니고
어딜가나 따라 다니면서 감시했습니다.
계속 보관하던 중 저희 유족측이 방심한 사이 헌병대 수사대장 박영규의 지휘
하에 부하사병들을 시켜 비디오를 말 그대로 탈취해 갔습니다.
탈취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습니다.
몸싸움 가운데 저희 이모는 콩크리트 바닥에 밀쳐져 머리에 충격을 받았고
저는 사병들 3명에게 목과 양팔을 붙잡혀 끌려다녔습니다.
그 현장비디오를 저희 모든 유족측이 보았습니다.
너무 의문 점이 많고 저희가 증거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병원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영안실 안에서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측은 이 비디오를 밖으로 유출시키지도 않고 저희를 개만도 못하게 대우 했습니다.
이 군측의 행동이 법무참모의 모든 권한이 무시된건지 아니면 법무
참모와 헌병대 수사대장 박영규가 서로 짜고 이런것입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라를 위협하는 적들과 싸워야지 왜 죄없는 민간인들을 괴롭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무리 봐도 군측이 뒤가 구린것이 있다는 말 밖에 안됩니다!
헌병대 측에서 저희 휴대폰과 모텔전화 그리고 일반 전화들
모든것을 도청당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강릉군사병원 영안실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의없는 죽음을 당한 저희형 망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이것은 어떡해봐도 군측의 횡포와 권력남용 입니다.
아들을 가진 어머니들의 힘과 자식을 군에 보내고 맘 졸이시는 모든 분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또다시 금쪽같은 자식을 개죽음 시킬수는 없습니다.
군복입은 사람들은 절대로 믿을수 없습니다.
우리 민간인들 부모님들 형제 친척 그리고 인터넷 각 언론사 방송국의 힘이 필요합니다.
도와 주십시요.
너무 억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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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죽음을 맞게된 박성식 일병은 제가 친형처럼 생각하는 형의 큰누님의 큰아들 이랍니다.
어찌 이런일을...휴...
안타깝고 가슴 시립니다.
여러분...
이런부탁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도와주십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