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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일대기 인터넷 발췌

 
좀 오래전에 본글이라 누구의 글이고 어디서 가져온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대기는 다른 여러 싸이트
들과 중복돼는 사실들입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를 국가 영웅 으로 표현은 안됐음 하네요
지독한 기회주의였을 뿐이므로 ..

오늘이 광복절인데 왜 이렇게 마음은 무거울까요.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거꾸로 가는 현실 때문......
그렀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솟구칩니다.
정치계와 학계, 법조계 등에서 친일파의 득세로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친일분자는
아마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장 저질적인 친일파가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우리를 통치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를
휼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글을 몇 편 올렸습니다만
구체적 친일행적에 대한 글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친일분자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통치하였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은 겨울공화국 같은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의 죄상을 묻지 않아도 친일행적 하나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역적 죄인입니다.
다음은 친일파 연구가인 김삼웅 선생님의 글에
필자의 생각을 더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하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 성적 15등이었다.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일제 충성심으로 무장하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선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기(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만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 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라고 진술하고 있다.

③ 완전한 일본인이 되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기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훗날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작전에 110회나 참가하다.

소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산하의 간도특설대 활약

일본은 만주 서남부와 중국북부에 투입할 용맹한 부대를 선발하여
특수부대(철석부대)를 만든다. 여기에 조선인 부대인
[간도특설대]도 선발되는 영광(?)을 얻는데
그 속에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이주일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중국북지(열하성 만리장성 남방 평곡-북경 동북방)로
투입되어 항일 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는 많았다.
조선인의 간도특설대, 러시아인의 찬야부대, 몽고인의 기야부대,
회교인의 회교부대, 오르치온족의 공작대 등이 있었는데....
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본군, 만주군이 못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인 공적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소속한 특수부대(간도특설대) 요원들이
얼마만큼 항일군의 토벌에 커다란 공을 세웠는지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 지원 입대...
만주군관학교의 수석졸업과 금시계의 영광...
3등으로 졸업한 일본육사 생활도...
만주에서 관동군으로 복무하며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생활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패잔병의 낭패감을 맛보며 절망에 빠진 것도 잠시였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일본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고 기회주의자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인물이었다.
속성이 이런 인간이니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구토가 나는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행동이다.

⑦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일본놈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압권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
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기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⑧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
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⑨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어떤가? 이러한 자의 기념관을 세워줄 것인가?
집권시절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 등의 죄악을 묻지 않아도....
친일 행위 하나만으로 기념관은 불가하다.
일본은 패망했지만 친일파는 망하지 않았다.
민족은 일제에서 해방되었지만 민족의 정기는 바로 서지 못했다.
모두 친일 세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파가 대통령을 하고.... 국무총리를 하고....
각 부서의 장관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자본가가 되고...
역사에서 친일파는 지배층이라는 공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만들어 주며 보아줄 것인가?
자신들의 죄과를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하지 않고 죽어가며
이제 그들의 죄상까지 죽어가고(묻히고)있다.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친일 행위는 반드시
그에 응당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친일파로써 가장 성공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은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고 있다.
근대화의 아버지.... 경제개발.... 운운하며
일본군인의 기념관을 자랑스럽게...
서울 한복판에....
현직의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하여.... 기념관을 지으려고 한다.
이것은 정신나간 일이며 미친 짓이다.
필자는 언젠가 말한바 있다.

기념관이 준공되는 날....
할 수만 있다면 그 곳을 날려 버린다고.......
그 곳을 날려 버린다고.......

2002-08-21 15:27:06
906 번 읽음
  총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박진호 '02.8.22 12:26 AM 신고
    기념관 세웁시다 일본에 ㅋㅋㅋ 아! 돈? 일본에들이 낼껄려 눈알 휘집어 까구 ㅋㅋ ↓댓글에댓글
  2. 2. 정한구 '02.8.30 5:09 AM 신고
    솔직히 이글쓰신분이 더 매국노 짓을 하네요 박정희가 어느나라 사람입니까!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지낸분이 아닙니까.누구나 100퍼센트 완벽한 사람은 없읍니다.하지만 이글을 일본인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 ↓댓글에댓글
  3. 3. 정한구 '02.8.30 5:11 AM 신고
    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역시조센징은 조센징이야 저거서서로 저거대통령을 일본넘이라고 하니18년동안 일본속국으로 살았다고 서서로 자백을 하다니" ㅋㅋㅋㅋ 하고 비웃을껍니다.. ↓댓글에댓글
  4. 4. 정한구 '02.8.30 5:14 AM 신고
    일본이라는 넘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들을 깔봅니다.우리의 이런 이면성을 보고요.우리나라가 그만큼 어리썩다는 말입니다.지금은 우리도 약아야 산다고 봅니다.우리가 우리 서서로 자책한다고 일본이 아~~~역시 조선인은 달라 ↓댓글에댓글
  5. 5. 정한구 '02.8.30 5:16 AM 신고
    존경 해야돼 하고 생각 할줄 압니까 천만의 말씀! 우리는 아직 일본을 너무너무 몰라요...한심합니다 일본인들의 뿌리깊은 우리의정신을 소리없이 공격하고있는게 안보이십니까! ↓댓글에댓글
  6. 6. 정한구 '02.8.30 5:19 AM 신고
    우리 서서로 우리의 얼굴에 침을 뱉는것을 일본은 싱긋이 웃으면 보고 있읍니다.우리는 일본을 모르지만 일본은 우리를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이것이 겁나는게 아닐까요!그러니 독도 문제도 우리를 갖고 노는것입니다...너무 일본에의한 ↓댓글에댓글
  7. 7. 정한구 '02.8.30 5:22 AM 신고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지 맙시다!일본은 서서로 자기들치부를 절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우리와 틀린점이 바로 그것입니다.집안 싸움 하면 결국은 서서로 망하지요 모든 이치는 같습니다.너무순진하면 나라도 빼껴요! ↓댓글에댓글
  8. 8. 정한구 '02.8.30 5:30 AM 신고
    그러나 저는 박정희를 펑가 한다면 독제와경제 두개를 한꺼번에 했는데 그런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경제를 이룩하지 못했겠지요..하지만 그 독제속에는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그때의 상황을 지금의 잣대로 ↓댓글에댓글
  9. 9. 정한구 '02.8.30 5:31 AM 신고
    평가해서는 안됍니다,잘한것은 잘한것이고 못한것은 실랄하게 비판해야겠지요.. ↓댓글에댓글
  10. 10. 정한구 '02.8.30 5:35 AM 신고
    또 어떤 사람은 그누구도 그때 대통령이 돼었다면 그정도 경제는 이룩했다고 하는데 그런 수준 이하의 발언을 하는 교수도 있어요,무조껀적 비판은 사회를 멍들게 합니다.배울건 배우고 잘목됀건 고쳐가면서 역사가 없다면 현실도 없는것입니 ↓댓글에댓글
  11. 11. 정한구 '02.8.30 5:38 AM 신고
    다.무조껀적 비판은 하지 맙시다,인정할껀 인정하고 성숙됀 국민이 좀 돼어 봅시다.지금 정치권을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읍니다.국민을 기만하고 국민을 무시하기는 한가지 박정희 시대는 방송매체가 암울하기 짝이 없었느데...지금은 방 ↓댓글에댓글
  12. 12. 정한구 '02.8.30 5:41 AM 신고
    송 매체가 어떻습니까! 이런데도 국민을 기만하고 저거들 끼리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이것이야 말로 독선중에 독선입니다!역사를 아는 정치인들이 그것을 돼새김을 하고 있으니까..한마디로 더나쁘다고 봐야 하지 않을 까요... ↓댓글에댓글
  13. 13. 허상식 '02.9.14 11:20 AM 신고
    만세를 외쳤다고 스스로 만족스러워 한다면 지금도 일본의 침략의 연장이 되지 않았을까여? 뒤틀린 생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이 애국이랍시고 이곳에 글자 긁적이는데 그게바로 매국노요 이완용이 만큼 쪼다일거라고 믿습니다... ↓댓글에댓글
  14. 14. 허상식 '02.9.14 11:20 AM 신고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라도 부지런 해야 먹고 살거 같습니다...........님의 사상에 애도를 표합니다.......... ↓댓글에댓글
  15. 15. 허상식 '02.9.14 11:17 AM 신고
    일본넘들이 가리킨다고 하여 그시절 아무도 학교도 다니지 않고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하게 기아로 굶어 죽어가거나 최 빈국으로 국제적 원조를 받고 있는 모습으로 있을거 같은데....이불속에서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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