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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장기계약에 대한 뒷 이야기네요.

 


박찬호의 장기계약에 대한 뒷 이야기네요.

자료출처 : 일간스포츠 기자카페 '장윤호의 좌충우돌 메이저리그 취재기'

//www2.hankooki.com/community/ds_cafe



박찬호 인생을 바꾼 오판 (1)

지금 생각해 보면 단 10초 동안의 전화 통화에서 박찬호 선수의 인생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년에, 혹은 2년 후, 3년 후에 박찬호 선수의 야구 인생이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며칠동안 가슴이 아팠습니다. 스포츠전문 유선 TV방송인 이 현재의 메이저리그 연봉 체계, 유 계약 선수 시스템 등 파업과 관련해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에서 땀을 닦고 있는 화면과 함께 박찬호 선수를 예로 들었습니다.
방어율이 현재 7점대인 투수, 박찬호 선수가 5년간 6,500만달러를 보장받고 있다고 비꼬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사람이 항상, 영원히 잘 나가라는 법이 없고 세상이 공평하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텍사스 구단은 박찬호 선수에게 맞지 않는 팀입니다. 5년 계약 기간 내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운 팀이지요.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홈런 공장'인 알링턴 구장의 여건, 팀의 구성원 등을 고려한다면 박찬호 선수는 텍사스에 오면 안됐습니다.
우리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로 와서 정말 고생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 때, 1999년 5월의 어느 날 박찬호 선수가 OK 사인을 했으면 지금 텍사스에 있지 않을 것이고, 또 모든 면에서 그의 삶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분명히 더 좋을텐데...
99년 당시 박찬호 선수의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은 박찬호 선수가 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자 99시즌을 앞두고 장기 계약을 추진했습니다. 스티브 김의 생각은 투수의 경우 자칫 부상을 당하면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보장을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지요.
당시 박찬호 선수가 보장 받은 금액은 4년간 3,800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5년째, 6년째는 각각 1,400만 달러, 1,500만 달러의 연봉으로 재계약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구단이 갖는 것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풀타임 3년을 지나 겨우 조정 신청 권리를 처음 가진 선수에게 총액 6,7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안겨준 것을 보고 취재를 하던 저도 놀랐습니다. 다저스 구단이 그렇게 많은 액수를 박찬호 선수에게 투자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으니까요.
그 조건은 에이전트 스티브 김이 한달에 걸쳐 밀고 당기기를 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 조건이 확정된 순간, 전화 한 통화로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티브 김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피터 오말리 다저스 구단주를 비롯해 당시 단장, 변호사 등이 함께 자리했던 회의실에서 선수 라커룸에 있는 박찬호 선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됐으니까 사인을 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박찬호 선수는 "안 할래요"라는 한 마디로 거절을 했습니다. 그 대답에 성격이 칼 같은 스티브 김은 전화기를 부숴버릴 듯이 끊고 말았고, 피터 오말리 구단주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파격적인 조건에 대한 박찬호 선수의 거절이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 때 박찬호선수가 OK를 했으면 돈도 더 많이 벌었고, 마음도 편하게, 여건도 좋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올해도 열심히 뛰고 있었겠지요. 아마도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박찬호 선수가 일생일대의 오판을 한 배경에는 우리 한국인들의 스티브 김에 대한 질시, 그리고 현재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의 교묘한 설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스콧 보라스가 박찬호에게 안겨준 5년간 6,500만 달러 계약은 99년 계약 조건보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1,200만 달러가 지불 유예돼 있습니다. 99년 당시의 가치를 비교하더라도 박찬호 선수는 손해를 보았습니다. 본인의 결정이었으니까 말도 못하겠지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다음에는 왜 박찬호 선수가 그런 오판을 했는가에 대해 쓰겠습니다. 신문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쓸 수도 없었던 예민한 부분입니다.

2002년8월18일 텍사스 알링턴에서



박찬호와 악마(?)의 만남(2)

선수 노조의 파업 문제 등으로 메이저리그 전체가 흔들리면서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 선수인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알렉스 로드리게스(10년간 2억5,200만 달러)와 박찬호 선수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텍사스 지역 신문인 의 야구 전문기자 겸 컬럼니스트인 티 알 설리번은 8월27일(현지 26일치) 자신의 글을 통해 스콧 보라스를 '지구 상의 가장 나쁜 악마(the most evil man on the planet)'로 폄훼했더군요.
인간성을 들춘 것이 아니라 그가 메이저리그에 끼친 해악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텍사스 입단을 대특종한 기자입니다.
일주일 동안 보스턴과 뉴욕 출장을 다녀오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과연 어느 선까지 박찬호 선수 관련 뒷얘기를 밝혀야 하는가의 문제였어요. 스스로 결정하기가 어려워 그냥 쓰기 시작합니다.
이 앞 글인 '박찬호 선수의 오판(1)'에 대한 이견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것이 오판이었는지는 기회가 닿을 때 논쟁을 해보도록 하지요. 저는 결과론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박찬호 선수가 오판을 하게 된 배경에 '악마'로 불리우는 스콧 보라스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를 미국인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연결시킨 주역(?)들이 우리 한국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스콧 보라스에게 박찬호 선수를 팔았다며 아직도 그 얘기가 나오면 흥분합니다. 그러나 금전 거래가 없었으니까 판 것은 아니겠지요. 매국노 이완용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1999시즌이 시작되고 박찬호 선수가 에이전트 스티브 김이 추진하기 시작한 장기 계약 문제 때문에 신경를 썼는지 초반에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 틈새를 스콧 보라스가 파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박찬호 선수가 장기 계약을 덜컥 해버리면 스콧 보라스는 더 이상 박찬호 선수에게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겠지요.
박찬호선수가 마이너리그에 있던 1994년부터 눈독을 들인 스콧 보라스(그의 선수 보는 눈은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에 놓치면 끝이라는 판단 아래 여러 경로를 통해 박찬호 선수와의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박찬호를 잡기 위해 애를 쓰던 스콧 보라스는 당시 주위에 "나를 도와주는 한국인이 한 명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박찬호 선수를 스콧 보라스에게 데려다 주려고 도와준 한국인은? 저는 지금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아마 영원히 밝혀지지 않겠지요. 스콧 보라스가 입을 열지 않는 한. 그러나 짐작은 갑니다.
그 시점까지만 해도 스콧 보라스는 박찬호 선수의 개인 연락처를 몰랐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으면서도 슈퍼 에이전트로 불리우는 자신의 체면상 직접 연락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박찬호 선수 쪽에서 먼저 자신을 찾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에이전트 스티브 김의 선수를 빼앗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는 것에 한국인을 끼워 넣음으로써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한국인이 맡아달라고 해서' 데려왔다는 대외적인 명분 쌓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스콧 보라스는 누군가에게 '박찬호 선수가 지금 장기 계약을 하면 절대 안된다.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전화 번호를 적어주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전화번호는 박찬호 선수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누군가'는 물론 한국인입니다. 그것을 박찬호 선수에게 전달한 한국인은 다른 뜻은 없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냥 심부름을 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 결과는 즉각적인 박찬호 선수의 장기 계약 불발과 1년도 채 안돼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미국 에이전트 소속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음에는 스콧 보라스의 교묘한 설들에 대해 쓰겠습니다. 야구밖에 모르며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박찬호 선수가 스콧 보라스의 세치 혀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이유입니다.

2002년8월28일 텍사스 알링턴에서



박찬호를 현혹시킨 보라스의 두 치 혀(3)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거쳐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즈버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박찬호가 시즌 8승째를 거두면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배인 것을 보고 저도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더군요.
1999년 봄,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박찬호에게 스콧 보라스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한 장이 건네졌습니다. 스콧 보라스가 과연 어떻게 박찬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스콧 보라스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한국인들로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가 '아,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결과론입니다. 박찬호의 연봉은 풀타임 메이저리거 첫 해에 12만4,000달러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가 됐을 때인 1997년 연봉은 27만 달러입니다. 그 해 박찬호가 선발 투수로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14승8패, 방어율 3.38의 호성적을 거두었지요.
당시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이 연봉 재계약에서 성적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고 당당하게 카드를 내밀 수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이듬해인 98년 2월에 스티브 김은 다저스의 스프링캠프지인 플로리다 베로비치로 갔습니다. 저도 동행을 했지요.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티브 김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함께 호텔 방을 쓰자는 것이었어요.
미국은 이렇습니다. 멀쩡한 성인 남자 둘이서 같은 호텔방을 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 '뭔가 심각한 얘기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받아 들였습니다.
베로비치 바닷가에 있는 호텔방에서 밤마다 저만 맥주를 마시면서 스티브 김과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박찬호의 연봉 계약을 어떻게 하느냐'가 주된 얘기였습니다. 스티브 김이 주로 질문을 했고, 저는 협상의 파트너 구실을 했습니다. 나는 얼마를 받아야겠다. 너는 이 액수에 이의가 있는가 등등.
오랫 동안 얘기를 하고 설전을 펼치고, 논쟁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이 2년 계약에 총액 300만 달러였어요.
지금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지만 당시 메이저리거 몸값을 고려할 때 박찬호 정도의 경력으로는 2년에 300만 달러는 받을 수 있는 몸값의 최고치였습니다. 다저스 구단 측이 복수년인 2년 계약을 해줄 것인가에도 의문이 갈 정도의 경력이었지요.
결론을 내리고 스티브 김이 협상 테이블에 나섰습니다. 스티브 김은 지금 생각하면 참 치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수의 진을 치고 협상에 나섰으니까요.
아침 9시에 시작한 협상은 연봉 담당 구단 변호사를 전화로 연결시켜 놓은 가운데 오후 4시까지 무려 7시간 동안 계됐습니다.
저는 사무실 밖 잔디밭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지요. 점심 시간에 한 차례 스티브 김이 나왔다가 들어갔습니다. 다저스 구단 측은 1년 계약을 하면 50만 달러를 줄 수 있다. 그런데 2년 계약에 300만 달러는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티브 김에게 우리가 내린 결론을 양보하지 말고 버티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오기였을 겁니다.
그로부터 다시 3시간이 흘렀지요. 스티브 김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나오더군요. 그의 한 마디는 "장 기자, 됐어"였습니다. 기뻤지요. 우리 한국인이 작은 협상일지는 모르지만 버텨서 이긴 것입니다.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리지요. 협상이 타결된 다음 우리는 곧바로 박찬호의 방으로 갔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들어오더군요.
스티브 김이 말했습니다. "계약 했다. 2년간 300만 달러를 받아 냈다."
그런데 박찬호의 첫 응답은 "왜 300만 달러냐"였습니다. 협상에서 최고액을 받아낸 스티브 김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군요. 제가 옆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박찬호가 "오늘 아침에 한국에 계시는 아버님과 통화를 했는데 2년 계약을 하면 5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모 스포츠 신문 1면에 났다"고 했어요.
제가 다시 박찬호에게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그 순간, 그 때의 박찬호는 명쾌했습니다. 스티브 김에게 "형' 고생했어" 한마디를 하면서 악수를 건넸습니다.
그래서 박찬호의 98년 연봉은 70만 달러, 99년 연봉은 230만달러, 2년간 총액 300만 달러로 결정됐습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99년 연봉 230만 달러가 문제가 된 겁니다.
스티브 김이 추진한 장기 계약에 대해 망설이고 고민하던 박찬호의 전화를 받고 직접 만나러 나온 스콧 보라스가 2년간 총액 300만 달러의 문제 아닌 문제점을 꼬집고 나섰습니다. 스콧 보라스는 '50만 달러를 받는 한이 있어도 98년 1년 간 단기 계약을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듬해에 1년 연봉으로 단숨에 3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98년에 15승9패, 방어율 3.71의 성적을 거두었는데 조정신청을 가도 99년 1년 연봉으로 3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1년 계약을 했더라면 2년간 350만 달러는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고 현혹한 것이지요.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스콧 보라스는 이미 나온 결과를 가지고 박찬호를 설득한 것입니다. 1년 계약을 했더라면 지난 2년간 300만 달러 보다 훨씬 많은 350만 달러..., 50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당시 5억 원 이상의 큰 돈이지요.
우리 모두가 그의 단소리에 넘어 갈 수 있는, 결과만을 놓고 본 스콧 보라의 두 치 혀입니다. '두 치'는 우리 말이 아닌 혀 짧은 영어로 박찬호를 넘어가게 만들었기 때문에 저 혼자 써 본 말입니다. 만약 박찬호가 98년 1년간 연봉 50만 달러 계약을 하고 그 해에 부진했다면 99년에 230만 달러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다음에는 박찬호의 갈등을 말해보겠습니다.

2002년 9월9일 텍사스 알링턴에서 장윤호 올림





세도우™
2002-09-11 19:50:06
808 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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