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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혈우병주사를맞은사람에이즈감염자들절망의나날

 
오염된 국산 혈우병치료제 주사를 맞고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된 뒤 에이즈 감염 혈우병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실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고등학생은 처지를 비관해 투신자살했고 어떤 환자는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있다.

에이즈에 감염되면 보통 7∼10년 뒤 증상이 나타나므로 90년대 초반에 감염된 혈우병환자들은 몇 년 전부터 증상이 나타났다.

혈우병환자를 정기 검진해주고 있는 의사 A씨는 “어릴 때 에이즈에 걸린 한 혈우병 고등학생이 몇 년 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얘기를 다른 환자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93년 국산 혈우병치료제 주사를 맞고 에이즈에 걸린 한 혈우병환자는 혈우병 때문에 관절을 쓸 수 없게 돼 두 다리를 절단했다.

더구나 부인마저 에이즈에 걸린 남편과 살 수 없다며 가출했다.

또 다른 혈우병 에이즈 환자인 B씨는 “정부는 이번에도 수혈로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수혈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에이즈에 감염됐다”며 격분했다.

B씨는 91년 설립된 한국혈우재단에 등록한 뒤 첫 검사를 했을 때에는 에이즈 음성반응을 보였으나 국산 혈우병치료제를 맞고 나서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초등학생 시절 국산 혈우병치료제 주사를 맞은 뒤 에이즈에 걸린 C씨는 지금은 대학생이다.

그의 부모는 자식에게 혈우병을 물려준 데다 에이즈까지 감염되자 미안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감염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C씨는 자신이 혈우병환자라는 것은 알지만 에이즈환자라는 사실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C씨는 혈액을 측정한 결과 CD4+T임파구의 수치가 50(정상인은 1000)도 안돼 이미 말기 에이즈환자인 상태이다.

C씨를 돌보고 있는 의사는 “이제 대학생이 됐고 워낙 상태가 악화돼 본인에게 직접 알려주려 했으나 부모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역시 어린 시절 에이즈에 감염된 한 혈우병환자는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성인이 된 뒤 여자친구를 감염시킨 사례도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혈우병환자들은 “문제의 혈우병치료제를 생산한 국내제약사가 에이즈뿐만 아니라 A형 간염을 집단감염시키고도 안전한 유전자 재조합 혈우병치료제의 수입을 방해해 왔다”며 격분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유전자 재조합 혈우병치료제가 수입되고 있으나 에이즈를 집단감염시킨 ‘혈액응고 제9인자’를 생산한 국내제약사는 혈우병이 희귀질환이 아니라면서 수입을 제한해 달라고 요구해 최근 환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혈우병환자와 부모들의 모임인 코헴회 관계자는 “국산 혈우병치료제 때문에 혈우병환자들이 에이즈에 집단감염됐다는 소문이 몇 년 전부터 나돌았는데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며 “환자 모임을 갖고 대책을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90년 사기매혈 수사서 단서 포착▼혈우병 환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치료제 주사를 맞고 에이즈에 집단 감염됐다는 연구결과의 발단이 된 사건은 90년 5월 서울지검 서부지청에서 수사했던 ‘사기 매혈’ 사건이다.

당시 서부지청 특수부는 피를 팔러 오는 사람들에게 1회 채혈 규정량인 500㏄보다 60㏄가 더 많은 560㏄의 피를 몰래 뽑거나 ‘72시간 내 재매혈 금지’ 규정을 어긴 ㈜녹십자, 서울 동부혈액원장 임모씨와 중부혈액원장 손모씨 등 4명을 혈액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이들 혈액원이 88년 1월부터 90년 5월까지 34만여명의 매혈자들에게서 규정량보다 많은 피를 뽑아 2억50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으며, 하루 평균 110명의 매혈자들을 대상으로 72시간 이내 채혈 금지 규정을 어기고 피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사건의 주임 검사인 임모 검사(현 변호사)가 수사 과정에서 에이즈 감염자인 박모씨가 수십차례 피를 판 사실을 확인, 수사 확대를 요구했으나 고위 간부들이 묵살했다는 소문이 퍼졌었다.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면 헌혈이 급감해 혼란이 우려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제약회사들의 로비로 수사가 중단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13일 “검사로 재직할 당시 수사했던 사건 내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2002-09-14 00: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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