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죽어야 사람이 산다?
실험 동물 한 해 5억 마리 희생…“인류에 도움 안된다” 실험 반대 운동도
그들은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서 곤히 자고 있거나, 푸근한 깔개 위에서 연신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몸은 청결한 환경에 걸맞게 눈부실 만큼 희다. 온도와 습도는 24℃와 64%로 더없이 쾌적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신생아실의 갓난아기 이야기가 아니다. 충남 대덕연구단지 내 생명공학연구원(생공연) 실험동물실에서 만난 쥐들의 모습이다.
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실에는 실험 동물이 3만여 마리나 있다. 그 가운데에는 누드 쥐도 포함되어 있다.
실험동물실 선임연구원 이철호 박사에 따르면, 현재 생공연 실험동물실에는 흰 생쥐·래트(생쥐보다 큰 쥐)·토끼·원숭이·개 등 모두 3만여 마리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 동물은 일정 기간 사육되다가 생공연 산하 연구소나 국가 연구기관에 공급된다.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동물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먹이·잠자리 모두 최상이다. 먹이는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게 철저히 방사선으로 멸균하며, 바닥에 까는 나무나 옥수수 깔개는 1주일에 두 번씩 갈아준다. 물도 100 % 멸균된 것만 마신다.
당연히 구입·관리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특히 구입비가 비싸다. 암이나 당뇨병에 걸린 수입 쥐는 한 마리에 20만∼60만 원을 호가하고, 좀더 희귀한 질병에 걸린 쥐는 훨씬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일반 수입 쥐는 한 마리에 만원 정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사육장을 벗어나는 순간 완전히 바뀐다. 거의가 이런저런 연구소의 실험대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모든 실험 동물이 수술대 위에 눕는 것은 아니다. 더 큰 고통에 노출되었다가 가물가물 죽어가는 동물도 적지 않다. ‘실험자들은 동물들에게 유독 증기를 마시게 하고, 화학 물질을 피부에 바르거나 눈 속으로 넣기도 한다. 생식에 관한 연구에서는 임신한 동물에게 화학 물질을 투여해 새끼를 유산시키고, 쥐와 토끼의 경우 태아의 무게를 재기 위해 출산 전에 어미의 자궁을 해부하기도 한다. 이 잔인한 실험에서 대부분의 동물은 경련·복통·발작·떨림·설사 증세 등을 일으킨다. 생식기와 눈, 그리고 입으로 피를 흘리고 걷잡을 수 없이 토하고, 자해를 하고, 마비 증세를 보이고, 혼수 상태에 빠진다’(알릭스 파노 2000년 5월호).
이처럼 고통을 당하는 실험 동물의 숫자가 1년에 5억 마리를 헤아린다. 1초당 약 16마리가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희생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한 해에 3백만∼4백만 마리가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998년 기준).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실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늘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정식 실험동물자원실장은 “한 해 몇 마리가 수입·생산되고, 몇 마리가 이용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동물 실험 반대 운동가들은 해마다 30∼40%씩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이 ‘동물 실험의 천국’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문제는 동물 실험 결과가 과연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알릭스 파노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동물과 인간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물질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비소의 발암성 실험 결과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비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비소는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인간이 비소에 노출되면 간·담낭·신장·피부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담배도 동물 실험에서는 별 피해가 없었지만, 최근 인간에게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동물 실험 반대 운동가들은 누구도 인간에게 동물을 이용해 실험하라는 권한을 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연구기관의 동물 실험을 철저히 감독한다.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 1.16%뿐
실험 동물에게 투입되는 물질의 투입량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감미료 실험에서 한 동물은 사람이 마시는 청량 음료 5백52병에 해당하는 양을 하루에 마셨다. 또 커피의 카페인 제거제로 사용되는 트리클로로에틸렌에 대한 두 실험에서 실험 쥐 한 마리가 사람으로 치면 커피 5천만 잔에 해당하는 양을 하루에 섭취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허먼 크레이빌은 이처럼 투입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학자들이 이처럼 많은 화학 물질이나 독극물을 투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래야만 종양을 포함한 급성 중독 반응이 뚜렷하게 일어나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학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거론하며 동물 실험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질병 3만여 가지 가운데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단 1.16%뿐이다. 물론 동물 실험을 찬성하는 과학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동물 실험이 금지되거나 제약받으면 더 이상 의학 발전이 없고, 인간 생명의 연장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세계적인 추세는 동물 실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영국은 1986년에 과학실험법을 마련하고 동물 실험 면허가 있는 과학자만 동물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감시 기관을 두어 연구기관들의 동물 실험 남용을 철저히 감독하고 있다. 결과는 놀랍다. 2000년에 희생된 실험 동물의 숫자가 2백71만5천 마리였는데, 이는 1970년대 평균 수치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수치이다. 스위스와 독일도 1992년과 2002년에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한 헌법 조항에 동물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켜, 동물을 사물이 아닌 생명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2005년부터 화장품 업체가 제품을 개발할 때 동물 실험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한국의 실정은 어떨까. 수년째 동물 실험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창길 교수(성공회대·유통정보학)에 따르면, 한국도 동물보호법이 1991년 제정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법과 비교해 보면 동물에 대한 배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한국실험동물협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공동으로 실험동물보호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내용은 미진하다.
박창길 교수는 3R 복지 원칙에 의거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3R은 Replacem ent(실험 동물 이외의 방법으로 대체), Reduc tion(실험 동물 숫자의 감축), Refinement(실험 동물의 고통 경감)을 말한다. 이 원칙을 따르면 사치성 물품을 위한 실험, 무기 개발 및 테스트를 위한 실험, 담배나 합성 세제 안전성을 위한 실험 등에서는 동물을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동물 실험에 대한 규제·감독· 정책 기능이 한층 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