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수연님의 글로.. 아주 유명한.. 실화.. 랍니다..
세상에 어떤 소설과 영화.. 극도..
실제 인생 만큼은 못하다고 하는데..
이 분이 겪은 일들도.. 참 대단하네여..
이 글은 대충 읽으시면 의미가 없구여..
시간 내셔서 제대로 읽으시면..
아마.. 후회는 하지 않으실겁니다..
그럼..
##--
1편
저는 1996년도에 어느 도시에 위치한 K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과는 안밝힐께여~)
꿈에 부푼 새내기 시절이었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터라 귀 밑으로 한 칠센티가량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그게 제 모습이었습니다.
대학엘 입학하면..... 다들 아시죠....?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해서 참으로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고딩 때 못해본 거 다해보느라고 술자리란 술자리는 하나도 안빠지고 모조리 참석하고
MT다 뭐다 하는 그럴듯한 이름 붙여 놀러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우리과 동기 여자애들 2명과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죽어라고 붙어다녔죠.
현주와 혜원이 그리고 수연이란 이름의 나.....
(실명입니다. 아마도 이 글의 주인공들을 알아볼 분들이 많을 것 같군요....)
현주는 그나마 고딩때 좀 논 가닥이 있어 보이는, 꽤나 한 날라리 하는 애였고(담배도 무쟈게 멋있게 피는 아이였지여~)
혜원이와 나는 그저 순진한 그런 편에 속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3월이 거의 다 지날무렵, 우린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술 퍼마시고 부시시하게 수업 들어가고 하는)
에 지쳐 새로운 놀이를 끊임없이 찾고 있던 중,
그나마 잘 노는 현주의 소개로 나이트클럽이란 곳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현주를 따라 첨 갔던 그곳의 모습이란....
현란한 사이키 조명 아래 미쳐서 광란에 빠져있는 젊음들...
당시엔 그게 대학시절의 낭만이라고만 생각했었죠. 우린 그 후 나이트에 부쩍 재미를 붙여
일주일에 사흘은 거의 거기서 살았습니다.
현주따라 화장이란 것도 해보고 머리에 알록달록 염색도 해보고... 정말 잼 좋았죠....
그리고 어느날.....
여자들끼리의 나이트 하면.....?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죠... 부...킹....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 셋은(현주 혜원 나) 잼있게 놀구 있었는데
웬 양아치 같이 쪽 빼입은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야... 우리도 세명인데 우리랑 같이 놀자....."
그 남자가 대뜸 내뱉은 말입니다.
혜원이와 저는 겁을 먹고 가만히 있었는데
현주는 아주 능숙하게 그 남자의 아래위를 훑어 보더니
"친구들이랑 잠시 이야기 좀 하고 대답해 드릴께요...." 이랬습니다.
그 남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기들 자리로 갔습니다.
그 남자가 간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그 남자 외에도 술을 마시면서 우리를 보고 있는 두 남자가 더 있었습니다.
"야..... 이거 운 좋은 걸? 야야... 우리 쟤들이랑 놀자...."
현주는 신나했지만 난 겁이 났습니다.
그냥 우리끼리 놀자고 혜원이랑 내가 현주를 타일렀지만 현주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현주의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합석하게 된 자리....
어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자.... 이쯤 되면 남자들 인물이 참 궁금하시겠죠.....?
그렇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부킹하는 남자들은 항상 까리합니다.
이 남자들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머리에 힘도 무지 줬더군요.
"니들 몇 살이야?"
남자는 시작부터 반말입니다.
아까 우리한테 놀자고 왔던 남자입니다.
"우리? 스무살.... 너희들은?"
현주도 세게 나갑니다.
현주도 대뜸 반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 걸었던 남자가 피식 웃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가 봅니다.
"우리.... 우린 스무세살이야."
옆에서 말없이 술마시던 또 다른 남자가 말합니다.
얼굴이 허여멀건한게 꼭 기집애같이 생겼습니다.
"근데 너희들도 우리한테 말 놔... 우린 아무 상관없어."
남자가 꽤나 선심쓴다는 듯 말합니다.
"오빠들.... 우리 통성명이나 하자.."
현주... 정말 세게 나갑니다. 쿵덕쿵덕...
혜원이랑 내 가슴 뛰는 소립니다. 정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내 이름은 임성혁이야."
우리한테 놀자고 왔던 남자입니다. 이 남자...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탤런트 이세창을 닮았던 것 같습니다.
진한 눈썹하며 크게 쌍꺼풀 진 눈... 키도 꽤나 컸으니까요.
"내 이름은 김태원."
여자같이 이쁘장하게 생긴 얼굴입니다. 우리한테 말 놓으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은 자연스레 아직까지 아무말 안하고 있던 한 남자에게로 쏠렸습니다.
이 남자.... 헤어스타일이 유승준 머리 아시져? 짧은 스포츠에 촉촉히 바른 젤...
그리고 약간 노랗게 물들인 앞머리..
잘 생긴 편은 아니지만 꽤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자답게 생겼습니다.
"조훈영"
이름만 간단히 말합니다. 나는 훈영이란 사람이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훈영오빨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빠랑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억하기 싫은 일에서부터 영원히 잊혀지지 말았으면 하는 일까지........
운명이란 것이 진짜 있기는 있나 봅니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될 줄은
그 후에도 정말 몰랐으니까요.....
너무 길어졌군요... 페이지 옮겨서 다시 쓰겠습니다....
계속.... 들어주시겠지요......
2편
서로의 이름을 주고 받고.......
우리는 댄스 곡 두 타임인가를 더 놀다가 나이트에서 나왔습니다.
그 오빠들.... 역시 춤 죽여주게 잘 추더군요.... 아... 한사람만 빼구요....
조훈영이란 사람..... 그 사람은 끝까지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부르스 타임 때......
성혁이란 사람(이세창 닮은)이 현주를 끌고 플로어로 나갔고
태원이란 사람(여자같이 이쁘게 생긴)이 내 손을 끌었지만.....
훈영오빠는 가만히 술만 마셨습니다. 덕분에 혜원이는 약간 삐져있었지만요.....
나이트에서 나왔을 때 시간이 새벽 한시쯤이었습니다.
(우리 셋은 모두 타지역에서 대학엘 왔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서 각자 자취를 하고 있었죠)
성혁이란 사람이 술 한잔 더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우린 무작정 그 오빠들을 따라 갔습니다.
성혁이란 사람과 현주는 꽤나 친해져 있습니다.
이젠 아주 농담까지 주고받는 그런 사이인 것 같습니다.....
24시간 한다는 소주방에 그 오빠들은 우릴 데리고 갔습니다.
사각 테이블에 현주와 성혁오빠가 나란히 앉고......
성혁오빠 옆에 이쁘장한 태원오빠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현주의 맞은편에 내가 앉았고
내 옆에 훈영오빠.. 그 옆에 혜원이가 태원오빠와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잘들 상상해 보세요. 아시겠져?)
술을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죠.
그 오빠들은 그 도시에 있는 전문대학에 다니다가 휴학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고딩 때부터 굉장히 친한 친구 사이라고 했습니다.
소주잔이 몇 번 오고가는 동안 난 꽤나 술이 오르는 것을 느꼈고,
피로감도 느꼈습니다. 이젠 그만 집에 갔으면 싶었지만.....
앞에 앉은 현주를 바라보니 이세창 닮은 성혁오빠랑 꽤나 잼있는 눈치입니다.
볼을 꼬집고 하는 장난도 서슴없이 하는 거 보니 말입니다.
혜원이도 그 앞에 앉은 태원 오빠랑 무슨 이야긴가를 잼있게 하고 있습니다.
난 내 옆에 말없이 앉아있는 훈영오빠를 바라봤습니다.
계속 소주만 들이키고 있었습니다. 마시고, 자기 손으로 술을 따르고.... 또 마시고....
그것만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기요.... 좀 천천히 마시세요."
보다못한 내가 걱정이 되어 한마디했습니다.
훈영 오빠는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무시하고 계속 술만 마십니다.
난 좀 화가났죠....... 하지만 다른 애들 노는데 끼어 들어서 같이 이야기하기도 그래서..
나도 혼자 술만 홀짝홀짝 마셨습니다.
눈앞이 좀 흐릿해져 간다고 생각했을 때....
현주가 큰 목소리로 신난다는 듯이 말합니다.
"우리 여기서 그만 찢어지자. 그리고 그 후 시간은 커플끼리 각자.... 어때?"
아마도 둘씩 짝을 짓자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세창 닮은 성혁 오빠가 좋다고 찬성하고 그 옆에 앉은 이쁘장한 태원 오빠도 좋다고 합니다.
혜원이도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주는 성혁 오빠와, 혜원이는 태원 오빠와... 나는....?
옆에서 말없이 술만 마시는 훈영 오빠와 짝이 될 분위기입니다.
갑자기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술도 조금 올랐는데 기분이 나빠집니다.
하지만 내 기분 따윈 상관없이 일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소주방에서 나왔을 때....(거의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주와 성혁 오빠가 먼저 간다면서 팔짱을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태원 오빠가 혜원이 손을 잡아끕니다.
"훈영아, 오늘 즐거웠다."
태원 오빠가 마지막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고 멀어져갔습니다.
소주방에서 밖으로 나와서 찬 기운을 쐬니까 술이 약간 깨는 것도 같았지만.....
난 더 어지러워졌습니다.
잠깐 휘청했는데 넘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옆에 있던 훈영 오빠가 한 팔로 내 오른팔을 꽉 잡았습니다.
"야.....너 괜찮냐?"
나이트에서 자기 이름 말했던 것말고 그 오빠가 첨 한 말입니다.
"괜찮아요."
난 좀 짜증스럽게 훈영 오빠의 팔을 뿌리쳤습니다.
"집이 어디야?"
훈영오빠가 묻습니다.
이 남자... 술도 안 취하는 모양입니다. 혼자서 거의 네 병을 마셨는데 말입니다....)
"XX동.... 자취방이 거기 있어요."
난 너무 잠이 와서 어디 막 눕고 싶어졌습니다.
자꾸만 휘청거리는게 아무래도 너무무리했나 봅니다.
훈영오빠는 내 팔을 억지로 잡고 어딘가로 갑니다.
난 집에 가야 되는데....
이 생각만 하고.. 생각뿐이지 자꾸만 훈영오빠에게 끌려가는 나를 느꼈습니다.
도로로 나와서 훈영오빠는 택시를 하나 간신히 잡았습니다.
그리고 뒷문을 열고 나를 태우더니 자기는 타지 않고 문을 닫았습니다.
택시 앞문을 열더니 택시 기사에게 만원짜리 한장을 던져주며....
훈영오빠는 말했습니다.
"아저씨...XX동이요... 잘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택시는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훈영 오빠와 멀어져갔습니다...
3편
어떻게 자취방엘 들어왔는지.......
잠에서 깨니 담날 오후 두시 쯤이었습니다.
난 현주랑 혜원이한테 삐삐를 쳤습니다.
(96년 당시는 거의 모든 대딩들이 삐삐를 가지고 있었져
지금은 모두 핸드폰이지만)
잠시 후 현주에게 먼저 전화가 오더군요.
"너 거기 어디야?"
현주는 꽤나 신나하는 목소리로 묻습니다.
"나? 내 자취방"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아직도 소주냄새가 입 속에 맴돕니다.
"뭐? 너 미쳤어? 그럼 그 오빠랑 같이 니 자취방엘 갔단 말야?"
현주는 흥분해서 펄쩍 뛰었습니다.
"야.... 너 뭐라는 거야... 나 혼자있어....
너 미쳤니? 내가 그 오빠를 내 방에 왜 데리고 와....."
내가 오히려 놀라 현주를 탓합니다.
현주는 뭐가 잼있는지 깔깔 거리고 웃기 시작합니다.
"너 어제 그 오빠랑 잼있었어?"
한참웃던 현주가 내게 은밀하게 물어봅니다.
"잼있긴 소주방에서 나와 바로 헤어졌는데...."
어제 일이 뜨문뜨문 기억이 납니다. 택시에 태워줬던 사람이......?
"뭐? 정말야? 야~ 그 오빠 웃긴다.....?
말도 잘 안하더니.... 역시 잼없는 사람이었구나?
그나저나 혜원이는 잘 놀았는지 모르겠네?"
현주는 계속 신나하는 목소립니다.
"넌 잼있었어?"
내가 시무룩하게 묻습니다.
"그럼~ 무진장 잼있었지...
야... 성혁 오빠 장난 아니더라.... 몸매도 죽이던데?"
"뭐? 니가 그 오빠 몸매를 어떻게 알어?"
내가 놀라서 다시 묻습니다. 현주는 깔깔 웃습니다.
"야야... 너 왜 모른 척 해... 기집애.. 내숭은...
암튼 나 그 오빠랑 계속 만나기로 했다....? 좋겠지?
돈도 좀 있는 것 같구... 암튼 좋아좋아.... 지금까지 같이 있다가
방금 전에 헤어졌어. 아... 피곤해 죽겠어.... 집에 가서 잠이나 좀 자야지...
그나저나 오늘 수업 다 날리고... 어쩌지?"
난 도무지 현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지껏 같이 있었다니...
하지만 자꾸 이상한 예감이 몰려옵니다.
갑자기 혜원이가 너무 걱정이 됩니다.
현주랑 서둘러 전화를 끊고 계속 혜원이 삐삐를 쳤습니다.
나는 자취방에 전화가 있었지만 혜원이 방에는 전화가 없습니다.
난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초조해하다가 옷을 줘 입고 혜원이 자취방으로 마구 달려갔습니다.
혜원이 방은 내 방에서 1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문 밖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은 거 보니 혜원이가 분명 안에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혜원아.... 혜원아...."
자꾸 불렀지만 안에선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더욱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문을 마구 두드렸습니다. 한참 있으니까.... 안에서 기척이 들리고....
눈이 퉁퉁 부은 혜원이가 부스스한 몰골로 문을 열어줍니다. 어딘가 아파보입니다........
"너..... 어디 아파?"
내가 걱정스럽게 물어봅니다. 혜원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내게 안겨옵니다.
"수연아...(내 이름이 수연입니다. 첨에 한번 말했져?) 수연아..... 나 어떡해....."
혜원이는 어떡해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꾸 울고만 있습니다......
4편...
자꾸 울고만 있는 혜원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것처럼....
혜원이는 그 날밤....
그 기집애같이 매끄럼하게 생긴 태원인가 하는 자식한테 성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현주는.... 자기가 좋아서...
그 성혁인가 하는 사람하고.. 그렇게 하룻밤을 같이 잤다지만...
고딩 때 공부밖에 몰랐던 혜원이는... 싫다고 거부했지만...
여관에 끌려가서 그렇게 당했다고 합니다.....
태원이 그 자식이 혜원이에게 그랬다고 합니다.
너희가 좋아서, 이런 거 다 생각하고 우리랑 같이 논 거 아니었냐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바보야..... 좀 강하게 저항해보지 그랬어....."
난 혜원이를 탓하며 마구 화를 내고 같이 울었습니다....
"몰라.... 몰라... 술을 마셔서... 힘이 하나도 없었어...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밀어내고 싶은데도 도무지 팔만 버둥거려지고....
힘이 하나도 없었어....
수연아... 나 이제 진짜 어떡해... 어떡해....."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일은 이미 벌어지고 말았던 것....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혜원이는 그렇게 울었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근데 그 상황에서.......
난 내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것만 다행스러워 몰래 안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참 나쁘져.....?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훈영이란 사람이 재미는 없었지만, 그렇게 날 아무 말 없이 보내줬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울고 있는 혜원이 앞에서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혜원이는 학교에 결석을 밥먹듯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우린 현주랑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현주가 성혁 오빠랑 계속 연락을 하니까.....
그 오빠를 통해 태원이란 사람을 한번 만나서 따귀라도 때려주고 싶었지만..
현주는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야..... 니들..... 구차하게 뭐하는 짓들이야.....
그럴려면 아예 그 오빠들이랑 합석을 하지 말았어야지.... 촌스럽게 뭐하는 짓이니?"
그렇습니다. 현주가 죽도록 미웠습니다.
혜원이는 그렇게 학교도 못 나오고 아파하고 있는데,
한 여자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는데 친구라는 게 그런 말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현주랑은 멀어져 갔습니다.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시간만 죽이고 있을 때쯤.....
5월이 거의 절반쯤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혜원이는 학교에 나오는 걸 많이 꺼려했습니다.
맨날 자취방에서 그렇게 숨어만 지내고 싶어했습니다.
나는 수업에 재미를 붙이고...
이른바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랑 친해지면서 과에 재미를 붙여갔습니다.
그리고 몰래 짝사랑하는 선배도 생겼습니다.
그 선배는 우리과 93학번 선배였습니다.
이름은..... 김.건.희. 건희 선배....
비가 촉촉하게 내렸던 어느 날, 학과 사무실에 들렀을 때...
창가에 서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혼자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건희 선배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습니다.
175센티의 키에 청바지에 니트를 즐겨 입었던 사람.....
그 건희 선배를 생각하니까 또 너무나 괴로워지는군요.....
가슴이 많이 아파옵니다.......
5편...
건희 선배를 많이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건희 선배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남자 혼자 자취하면... 어떤지 다 아시져?)
자취방에 찾아가서 반찬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건희선배는 꽤나 술도 좋아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카리스마가 꽤 있는 편이었습니다.
우리과 여자애들이 거의 모두 건희 선배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건희 선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훈영이란 이름도..
그리고 혜원이를 아프게 했던 그 태원이란 사람도 차츰차츰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건희선배랑 꽤나 친해졌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주말이면 매일 자취방이 아닌, 부모님이 계시는 집엘 가곤 했는데 ....
건희 선배네 집이 아주 멀어서 명절이나 방학 때 말고는 거의 자취방에 있다는 걸 알고는
나도 집에 자주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5월말의 어느 토요일 아침... 삐삐가 막 울렸습니다.
음성메시지...
건희 선배였습니다.
"수연아.... 나 건희다....
지금 시내에 있는 "매직"인데 빨리 나와라. 내가 점심 사 줄께"
전 너무나 기뻤죠.
내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건희 선배가 먼저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으니까요....
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진하게는 안했지만 그래도 정성들여 화장도 조금하고
머리도 풀어서 드라이로 이쁘게 빗어내렸고......
(이때 저의 헤어스타일이 어깨 약간 밑으로 내려오는 긴 생머리였습니다)
또 치마도 입었습니다.
어떻게든 이쁘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매직"은 우리학교 학생들이 자주 가는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었습니다.
헤즐넛커피가 아주 맛있는.......
자취방에서 한 25분쯤 걸리는 거립니다.
택시를 타고 급하게 도착한 그곳...
떨리는 맘을 진정시키면서 조심스레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니까
한쪽에서 건희 선배가 반갑게 손을 듭니다.
나도 생긋 웃으면서 그쪽으로 갈려는데.......
갑자기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건희 선배 옆에 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얼마전 나이트에서 부킹을 해서 만났던..... 조. 훈. 영.....
말없이 술취한 날 택시에 태워 보내줬던 사람...... 이런 우연이란 게 또 있을까요.....
하지만.... 그렇습니다.
전 솔직히 훈영이란 사람을 거기서 다시 만난 것보다도.....
건희선배 옆에 있는 여자한테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서는.....어쩔 수 없이 훈영이란 사람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빨리왔네? 인사해... 여긴 내 여자친구 미진이야....."
건희 선배가 옆에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여자친구..... 여. 자. 친. 구......
자꾸 그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미진이라는 여자를 바라보니까 아마도 건희 선배랑 동갑내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분위기 있는 여자였습니다.......
" 이쪽은..... 내 친구 조훈영....... XX전문대학교 휴학중이야.
다음 학기에 복학할 거고..... 군에서 제대한 지 좀 됐어."
난 훈영이란 사람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그 사람도 날 분명 알텐데 아는 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난 그냥 예의상 고개만 가볍게 꾸벅 했습니다.
자꾸만 미진이라는 여자한테 신경이 쓰입니다....
그렇구나..... 날 여기로 왜 불렀냐면.... 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건희선배가 훈영이란 사람한테 날 소개시켜 줄려고 날 불렀다는 것을.....
근데 그때 훈영이란 사람이 갑자기 일어섭니다.
"어? 야.... 너 왜 일어서? 화장실 가냐?"
건희 선배가 놀라서 묻습니다.
"임마..... 이런 자리인 줄 몰랐잖아..... 짜식아... 난 또 술 한 잔하자길래......나왔더니...."
훈영이란 사람의 목소리... 꽤나 저음인 듯 하면서 굵직합니다.
"야야 뭐 어떠냐? 분위기 좋지 않냐? 짝도 딱 맞고....
난 너 좋으라고 우리 귀여운 후배 불렀더니... 짜식아... 분위기 깨지 말고 앉아...
좀 있다 나가서 점심 먹고.... 영화나 보러가자....."
'귀여운 후배..... '
건희 선배의 말이 제 가슴을 찢어놓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날 것 같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선배.... 저.... 그냥... 갈께요...."
간신히 내가 한 말입니다.
"어? 왜? 오늘 선배가 점심 사줄께.... 그리고 놀다가....
훈영이 저 놈... 괜찮은 놈이야.... (나한테 살짝 눈웃음을 치면서) 내가 소개시켜 줄께....."
그러는 건희선배의 모습을 보며 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아니 그냥....."
변명거리가 없습니다.
"거봐 자식아..... 니가 간다니까 수연이까지 갈려고 하잖아....."
건희 선배는 훈영이란 사람을 탓합니다. 훈영이란 사람이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잠자코 있던 미진이란 여자가 한마디 거듭니다.
"그래요.... 훈영씨랑 수연... 씨라고 했나? 우리랑 같이 놀아요...
나중에 저녁 때 술도 한잔 하구요....."
목소리까지 이쁜 여자입니다.
역시.... 건희 선배가 좋아할 만하구나...싶습니다.....
건희 선배 눈에는 내가 그저 어린 후배로밖에 안보였겠구나 생각하니...
더 눈물이 쏟아 질 것 같습니다..........
6편...
그 날 어색하게도.....
나는 건희 선배와 그 여자친구 미진. 그리고 훈영이란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저녁 때 술까지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훈영이란 그 사람은......
그 날(부킹사건)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습니다.
기억이 안나는 건지.. 어찌 된 건지....
난 혜원이를 덮쳤던 그 나쁜 놈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꺼낼 수 없어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우린 한 소주방에 들어갔습니다.
술잔들이 오고가고.... 그러니까 자연스레 연인들끼리 더 다정해 졌습니다.
둘이 눈으로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주고받는지
마주보고 아무런 말없이 그렇게 웃고만 있고 그랬습니다.
건희 선배... 그 날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난 또 어색하게 훈영이란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술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습니다.
부킹한 그 날 밤처럼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훈영이란 사람은 그 날처럼 혼자서 술도 진짜 잘 마십니다.
(소주를 두 병째 연거푸 혼자서 부어 마셨쪄) 나도 질세라 아무 말없이 마셔댔습니다.
내 잔을 채워서 내가 마실려고 할 때,
그 때 갑자기 내 오른손에 들린 소주잔을 말없이 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훈영 오빠였습니다.
"임마.... 너 또 인사불성 될려고 그러지......?"
아주 간단하게 그 사람이 한 말입니다.
난 무슨 소리냐는 듯 그 사람을 그냥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여자가 술 취한 모습 보기 안 좋아."
또다시 아주 간단히 그 사람이 한 말입니다.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남이야 술을 마시든 말든 자기가 무슨 상관이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킹)일을 다 알고 있으면서 이제껏 모른 척 한 그 사람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뺏어간 술잔을 다시 뺏으려 했으나
그 사람은 잔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우리 모습을 건희 선배와 미진이라는 여자가 계속 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야~ 니들 둘...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친해지네?
그래그래... 좋은 현상이야 임 마.. 잘해봐 키득키득...."
건희 선배의 그 말에 다시 슬픔이 밀려옵니다.
어쩜 저리도 내 맘을 몰라줄까 싶었습니다.
건희 선배와 미진이라는 여자는 다시 우리에게서 관심을 접었습니다.
다시 그 사람과 술을 마시는 신경전(?)을 벌이게 되었을 때 내가 낮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 잘 있어요?"
나의 물음에 훈영이란 사람이 나를 바라봅니다.
"그 눈썹 진한 사람이랑.... 이쁘게 생겼던 사람...."
"아아~ 그 자식들?"
아아~라니? 뭐 이런 사람이 다있담?
더 불쾌해졌습니다.
"그때 니 친구들은 잘 있냐?"
동문서답하듯 훈영이란 사람이 물었습니다.
"네에~ 아주 잘 있죠.
하나는 아예 학교도 안나와~ 또 하나는 아예 친구의 연을 끊어~~"
난 좀 술이 됐던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훈영이란 사람의 표정이 곧 어두워졌습니다.
"그날 일..... 미안했다.... 내가 대신 사과한다고....
그 누구였지.....? 얌전했던 애 있잖아...... 걔한테 꼭 좀 전해줘.... 진짜 미안했다고....."
미안하다고?
그게 미안하다고 될 일이야? 정말 화가 났습니다.
술을 한잔 벌컥 들이켰습니다.
"그 사람 지금 어딨어요? 태원이란 사람?"
난 되도록 차분하게 물었습니다.
"나도... 잘 몰라....."
"잘 모르다니.....? 친구라면서 그것도 몰라요......?"
내가 따지듯 묻자 훈영이란 사람은 말없이 자기 잔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 잔을 채우면서 그러더군요.
"그 자식들.... 그날 첨 본 녀석들이야......"
7편
참 어이가 없었죠...
버젓이 같이 술 마시다 우리한테 부킹까지 신청했으면서
그 날 첨 본 사람들이라니....
난 그 사람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그날 자기한테 안좋은 일(나중에 차근히 말할께여)이 있어서..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는데
포장마차에 있던 어떤 남자 둘(성혁, 태원)이가
깡패 비스무리한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더라는 겁니다.
기분도 안 좋은데 하도 시끄럽게 해대서 인상을 쓰고 바라봤는데
성혁과 태원이 일방적으로 당할 기세더랍니다.
그래서 그 두명을 도와 싸웠다는 겁니다.
(훈영오빠 쌈 무지 잘 함다... 고딩때 무슨 폭력써클 짱도 했다더군여)
우연찮게 동갑내기였던 그들(성혁과 태원)은 자기들을 구해준 대가(?)로
한턱 크게 낸다고 데리고 간 그곳이 바로 우리를 만났던 나이트클럽.
사건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죠. (남자들은 첨 본 사람들이랑 나이트 갈 수 있나요?)
그때 훈영 오빠는 만사가 귀찮았다고 합니다.
그 안좋은 일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렇게 혼자 술만 마셨던 거구요...
부킹해서 내 친구들이 그 놈들한테 끌려 갈 때
솔직히 평상시 같았으면 말렸을 텐데 그땐 아무 의욕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담날 곧 후회했다고......
자신의 무관심에 혹시 어린 여자 애들이 상처받진 않았나 후회했다고 하더군요.
훈영 오빠의 말이 이해될 듯 하면서도 그래도 야속했습니다.
오빠가 그때 좀 뜯어 말려줬더라면 혜원이는 그렇게 상처입지 않았을 텐데...
소주방에서 나왔을 땐... 밤이 꽤 늦었습니다.
건희선배가 이젠 찢어지자 합니다.
그리고 훈영오빠에게 날 집에까지 잘 바래다 주라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놓고 사라집니다.
둘의 뒷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여 그만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너두 집에 가야지.... 그때 XX동이랬지?"
(으~ 기억력 함 좋더군여. 동네 이름도 안까먹다니....)
아마도 바로 집에 가자는 말인 것 같습니다.
순간... 나도 오기가 생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백히 이건 소개팅 자리인데....
여자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속으로 발끈하는 화가 치솟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요?
"저랑.... 술 한잔 더하시죠?"
내가 이렇게 말해버린 것입니다.
훈영 오빠는 말없이 내 얼굴만 빤히 보고 있습니다. 순
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더 마시겠다구? 그래라.... 그럼.... 따라와....."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그렇게 다시 훈영 오빠 뒤를 따라 갔습니다......
8편
포장마차입니다.
소주 한 병에 닭똥집이란 걸 시킵니다. 오뎅 국물은 서비스인가 봅니다.
난 닭똥집같은 거 한번도 안먹어봤습니다.
내가 먹을만한 안주가 없나 슬쩍 둘러보니 떡볶이가 있습니다.
"나 저거 먹을래요."
염치불구하고 내가 말합니다.
훈영오빠가 슥~ 한번 쳐다보더니 아줌마한테 달라고 합니다.
소주와 떡볶이? 앙상블이 어째 영~ 이상합니다.
소주 뚜껑을 따고 훈영 오빠가 내 잔을 채워줍니다.
소주잔의 반만 채웁니다.(후훗~ 매너있습니다. 여자라고 반만 채우더군여)
그리고 자기 손으로 잔을 채우려 하는데 내가 소주병을 뺏으려 했습니다.
(대학가서 배운 거라곤 주도밖에 없습니다.
주도 아시져? 자기 손으로 술 따라 마시면 앞에 앉은 사람 3년동안 재수 없다는 야그)
근데 훈영 오빠가 한마디 합니다.
"나한테 술 따르지 마라. 여자가 함부로 술 따르는 거 아니다."
윽!! 충격먹었습니다.
나는 저 생각해줘서 술 따라 줄려 했는데 근엄한 목소리로 여자가 술 따르는 거 아니라니...
좀 민망해졌습니다.
화나서 마구 마셨죠.
한 병을 다 마시고 훈영 오빠가 또 한 병 시키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실 더 못마실 것 같았어여. 속이 울렁울렁)
질 수 없다 생각했죠.
그가 마시는 한 끝까지 마실 거라고 알아주지도 않는 깡을 부렸습니다. 후훗.......
그렇게 그와 소주 4병을 마셨습니다. 거의 2병씩 마신 셈이죠.
(죽을 뻔 했져. 하지만 그는 말짱~. 아시져? 그의 주량....
혼자 4병을 다 마셔도 그는 끄떡 없어여)
그는 내 얼굴을 한번씩 힐끗힐끗 쳐다보면서도 내 잔이 비면 곧 채워주곤 했습니다.
떡볶이와 마시는 소주.... 다들 한번 해보시죠...
아마도 죽음일 겁니다....
꼭 4병을 다 채우더니 그는 이랬습니다.
"그만 마시고 가자..... 늦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갈려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이 흐릿했습니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일어날려고 하다가 주저앉고 또 주저 앉고.....
몸이 내 맘대로 되질 않더군요.. 솔직히 창피했죠.. 내가 먼저 마시자고 해놓구선...
훈영오빠가 말없이 다가왔습니다......
9편
훈영 오빠는 말없이 다가와 그때처럼(부킹사건)...
내 오른팔을 강하게 잡았습니다.
그리고 부축해줬죠. 후훗...
거의 안기다 시피해서 걸어갔습니다.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그가 도로에 나가 간신히 택시를 잡고 나를 뒷자석에 밀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앞문을 열고....
(다들 아시져? 만원짜리 한장과... 잘 부탁합니다 하는....)
하지만 뭔가 각본이 달랐습니다.
그는 도저히 안되겠던지 다시 뒷문을 열고 내 옆에 탔습니다.
정신이 없고 눈앞이 흐릿했지만 그건 똑똑히 봤습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습니다.
그 뒤는 기억이 안납니다. 필름이 끊겼죠.....
다만 아침에 깨어보니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내 모습.....
그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가 나랑 같이 택시를 탄 것만 기억이 나고 하나도 기억이 없습니다.
뭐가 뭔지....도저히 모르겠더군요....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말하는대로 내 자취방을 찾느라 꽤나 힘들었다 합니다.
간신히 찾아서 나를 방에 누이고....
그리고 아무말없이 집에 갔다고 그러더군요... 후후...
(시시하져? 뭔 남자가 이럴까 싶으시져?
하지만 훈영 오빤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담부터 학교에서 건희 선배를 보면 자꾸만 마음이 시렸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접히지 않았구요....
그날 밤 일도 있고 해서 훈영 오빠의 소식을 물어도 보고 싶었지만...
건희 선배도 더 이상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다시 훈영 오빠를 볼 일이 생겼습니다......
10편...
1학기 기말고사가 시작된 첫날....
동기들이랑 자취방에 몰려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기중에 어떤 남자애가 건희선배네 집에 가서
라면으로 저녁 때우자고 우릴 꼬드겼습니다.
그리고 소주도 한잔 하자고....
(대딩들, ,아시져? 시험기간이 어딨떠엽...
그저 자나깨나 술이쥐....^^)
나를 포함한 여자 세명이랑 남자 두명이랑 건희선배네 집에 갔어여....
하지만... 건희선배네 자취방엔 건희선배와... 훈영...
그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건희야.. 나 그만 갈란다.... 공부나 해라.. 후배들이랑...."
우리가 들어서니까 훈영오빠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가더군요....
난 왠지 그사람(훈영오빠)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포장마차 사건도 있고 해서 인사나 하자 싶어서 재빨리 따라 나갔습니다.
"저기요~"
내가 부르니까 훈영오빠가 돌아봅니다.
"저기.... 그때 고마웠어요....."
수줍게 웃으며 내가 말합니다. 솔직히 아주 창피했습니다.
"너 낼 시험있냐?"
그 사람은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에?"
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 놀라서 다시 묻습니다.
"낼 시험 없으면 나랑 어디가서 술 한잔 할래?"
이거 놀랄 일입니다.
훈영오빠가 나더러 먼저 술을 마시자니....
나... 낼 시험있습니다... 그것도 3학점 짜리 전공입니다.
마음속으로 갈등을 일으킵니다.
아마도 건희선배가 그랬다면... 미련없이 따라갔을 겁니다.
하지만 훈영오빠... 아직은 아무 느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 표정이 하도 서글퍼 보이는 것 같아서...따라가기로 결정합니다...
"낼.... 셤 있는데... 공부 다 했어요...."
으흑... 어디서 이런 거짓말이 나오는 것일까요... 내가 말해놓고도 놀랍니다.
그 사람 갑자기 피식~ 웃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도 내가 한 말이 웃긴가 봅니다.
"그래.... 그럼 가자... 따라와...."
11편...
또 포장마찹니다.
어흑.... 이 사람 또 닭똥집 시킵니다....
그럼 나는.....? (다들 아시겠져?) 떡볶이에 소주입니다.
그때 뒷끝이 얼마나 안좋았는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핑 돌더군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내가 한잔가지고 홀짝 거리고 있는 동안
그 사람 한병을 말없이 다 비워버립니다. 담배도 많이 피워댑니다.
(내가 담배 연기에 민감하거든여.
그는 그런 세심한 배려를 해서인지 나에게서 멀리 해서 담배를 쥐고 폈어엽~)
서로 오고가는 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친구들이 삐삐 쳐대고 난리도 아닙니다.
놀랐을 겁니다. 뒤에 따라오던 애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2분마다 한번씩 느껴지는 삐삐 진동에 온몸이 찌릿찌릿 합니다.
"오늘은 화장 안했네......?"
으헉? 깜짝 놀랐습니다.
말없이 술만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에~그렇습니다. 그때 내 차림이란?
(대딩들~ 아시져. 시험기간 때 자취생들의 몰골을.....
그나마 다행인게 난 츄리닝에 슬리퍼는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물빠진 청바지에 그냥 티셔츠 차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동화....
머리는 한개로 질끈 동여묶고.... 완전 맨얼굴이었습니다.
(흑.... 그때도 화장 진하게 안했는뎁....
그냥 파우더만 살짝 바른 거였는뎀....)
"화장 안하는게 더 이쁘네....."
으헉으헉?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이쁘다니....? 내 귀가 잘못된 거 아니죠?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 분명히 나더러 저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한병 마시고 취했남? 그럴리는 없을텐데.....-_-;;)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졌습니다. 식은땀이 났죠.
6월의 밤공기... 시원합니다.
하지만 그때 왜 그렇게 땀이 나고 더웠던지요.....
갑자기 그때 훈영오빠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군요...
오빠가 너무나 보고싶고..... 그리고.... 목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없이 술만 마셨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말이 필요치 않았던 걸까요...
진짜 별 말 없이.... 그냥 한번씩.... 훈영오빠가 나더러...
"조금씩 마셔라" 이런 말을 했고
내가 그 오빠한테 "좀 천천히 마시세요...."
이런 말을 했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하늘이 내려 준 운명이라고들 하나 봅니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줄은 그땐 정말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12편...
그날은 술 별루 안마셨습니다.
나는 고작 다섯잔 정도 마셨을 겁니다.
그 사람 혼자서 세병을 마셨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디루 갈거냐고 그 사람이 물어보길래 그냥 내 자취방에 갈 거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없이 앞장서서 걸어갑니다.
역시 매너 하나는 죽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없이 나를 자취방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내내 죽 아무 말이 없습니다.
나도 말이 없고 그도 말이 없고....
단지 기억나는 거라곤 밤공기가 너무도 상쾌했다는 것과 바람결에 그에게서,
남자들이 면도한 후에 사용하는 애프터셰이브 로션냄새가 간간이 묻어났다는 거.....
그뿐입니다.
내 자취방 앞입니다.
"들어가라."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에...."
어색하게 나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가 돌아서서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갑니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내 방에 들어갈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뚜벅뚜벅 납니다.
돌아보니 그가 다시 내 앞에 서 있습니다.
"너 이름이 뭐냐?"
으흑.... 이럴수가....
여지껏 우리가 몇번이나 만났는데.... 아직도 내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거냐?
하도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이수연"
다른곳을 보면서 내가 말했습니다.
갑자기 그가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서 긁적입니다.
메모지와 볼펜입니다. 다 쓰더니 나에게 건네줍니다.
"이거 내 삐삐 번혼데..... 술 마시고 싶으면 연락해라."
이렇게 말하고 다시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얼떨떨한 것이....
그가 내게 왜 연락처를 줬을까요...
그냥 단순히 술친구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아무래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됐습니다.
이젠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가야 합니다. 하지만 난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건희선배가 자취방에 남아서 자격증 공부를 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나 있잖아...계절학기 들을거야... 돈 부쳐줘..."
그렇습니다... 저... 정말 나쁜 딸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받은 돈으로 건희선배 반찬 만들어 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앞 호프집에 아르바이트 자리도 잡았습니다.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한창 바쁜 시간이었던 어느날.....
호프집 문이 열리고 반가운 사람이 들어서는 게 보였습니다.
건희선배와... 친구인 듯한 남자들 네명과....
그리고..... 훈영오빠도 말입니다........
13편...
건희선배가 날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 합니다.
물론 제 가슴도 뛰었죠....
그러고 보니 모두들 날 쳐다보고 있습니다. 다들 누구냐는 눈빛입니다.
건희선배가 날 그들에게 소개시킵니다.
역시.... 우리 후배란 말을 빼먹지 않습니다.
그놈의 후배란 말.... 그 말 좀 안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슬프게 생각합니다.
(선배를 짝사랑 해봤던 여자분들.... 아마 제 맘 잘 아실걸요.....)
"너 집이 여기냐?"
아무말 없던 훈영오빠가 낮은 음성으로 묻습니다.
"아뇨...그냥... 안갔어요... 공부 좀 할려고....."
으허헉? 거짓말이 느나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 내가 스스로 대견스러워 으쓱 웃었습니다. 그도 따라 피식~ 웃습니다.
그들이 술마시는 동안 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그래서 건희선배 얼굴도 한번 제대로 훔쳐 볼 시간이 없었죠... 슬프게시리.....
그들.... 꽤나 술을 많이 시킵니다. 3000CC피쳐를 8개나 마셨습니다.
(배도 크져? 나같음 배터져서라도 못마시겠네엽)
역시... 유유상종입니다. 술꾼들끼리 모였나 봅니다.
근데 갑자기 건희선배가 날 불러서 몇시에 끝나냐고 묻습니다.
건희선배는 지금 2차를 갈 건데 나도 데리고 가고 싶다 했습니다.
너무 좋아서 전 당장 주인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좀 빨리 마쳐 달라고 졸랐죠....
그리고 따라 나섰던 그들의 2차....
아마 단란주점엘 갔을 겁니다.
술을 꽤나 마시고....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건희선배의 18번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였습니다.
선배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떨렸던지....
생전 노래라곤 부르지도 않을 것 같던 훈영이란 사람도 노래를 부릅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그때 뭘 불렀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엔 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단지 노래를 부르는 훈영오빠의 눈빛이 굉장히 애잔해 보였다는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건희선배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저사람을 좋아했을수도 있겠다고 나 혼자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훈영오빠와는 참으로 우연히 자주 만났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길게 이야기 한적은 없었고 여러 사람들과 섞여서 같이 술을 마시거나
그런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다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드디어 그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했던 일.....
이 일을 빨리 떠올리기 싫어서 전 지금까지 일부러 시간을 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그일......
14편...
개강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 당시 건희선배랑 부쩍 친해졌떠엽... 건희선배 자취방에도 자주 놀러가구엽)
저녁에 내 자취방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삐삐가 울렸습니다.
음성메시지.. 건희선배였죠. 무슨 일이 있는건지 목소리가 안좋았습니다.
"수연아... 나 건희다... 여기 시내 BB소주방인데 지금 좀 나올래?
나 혼자 술 마시고 있거든..... 기다릴게."
내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시죠? 너무 기뻤습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달려나갔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건희선배 혼자 앉아서 소주 한병 반을 비웠더군요. 어색했습니다.
내가 다가가니까 선배가 웃었지만 어딘지 허전한 웃음이었습니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선배는 대답이 없습니다.
난 그냥 말없이 옆에 앉아만 있어주기로 합니다.
선배가 4잔 마실 때 난 반잔, 선배가 한병 비울 때 난 한잔... 이정도로 마시면서 말입니다.
오고갔던 대화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느낌으로 난 알 수 있었죠.
선배가 그 미진이란 여자와 잘 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딘지 모르게 선배가 실연당한 느낌..... 그런게 느껴졌었죠......
선배가 술이 많이 취했습니다. 자기 몸을 못 가눌정도로 취했습니다.
소주방에서 나왔지만 막막했습니다.
(술 취한 남자... 디따 무겁더군요. 부축하기도 힘들었떠엽...)
선배네 자취방에 어떻게든 데려다 눕혀야겠다 생각하고 어렵게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들도 술취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잘 세워주지도 않더군요...
어떻게 해서 도착한 선배네 자취방...
선배의 호주머니를 뒤져서 열쇠를 간신히 찾아내고 힘들여 선배를 자취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남자 혼자 사는 방....(정말 기막힐 정도로 엉망진창임다...
이불을 안개키고 고대로 펼쳐져 있쪄, 또 홀애비 냄새도 납니다...-_-;;)
이불 위에 눕히긴 했는데 선배가 엄청 괴로워합니다. 속이 많이 뒤집히나 봅니다.
물병을 갖다 머리맡에 놓아두고 이불을 덮어줬습니다.
그리고 갈려고 일어서는데 선배가 움칫거리더니 갑자기 부릅니다.
"수연아"
혀가 풀린 목소립니다.
"네....에...."
"가지마라......"
그렇습니다. 분명히 선배가 한 말은 가지마라 였습니다.
가지말라니......?
순간 머릿속이 막 복잡해지더군요..... 다시 선배 옆에 얌전히 앉았습니다.
선배가 무슨 할 말이 있나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연아..."
다시 선배가 부릅니다. 선배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내 팔을 잡아당깁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요...
순식간에 난 선배 가슴 위로 확 넘어졌습니다.
선배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선배에게서 술냄새가 확 끼쳐왔습니다. 너무 놀라서 다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선배가 자기 입술을 가져다 내 입술에 갖다 댔습니다.
놀라서 버둥거리는데 선배가 두팔로 내 두팔을 꽉 잡았습니다.
물컹물컹한 것이 입안으로 쑥 들어옵니다.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게 내 첫키스의 기억입니다.
(절대..절대 난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겪은 일 그대로를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는 뜻에서.....)
간신히 선배에게서 빠져나와서 선배로부터 저만치 물러나 있습니다.
막 눈물이 납니다. 뛰쳐 나갈려 하는데 선배가 내 허리를 꽉 안았습니다.
"수연아.... 가지마..... 가지마... 제발....."
건희선배가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선배가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 전 그렇게 어리석었는지도 모릅니다.
선배에게로 조심스레 다가가 선배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선배가 울고 있습니다.
난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갑자기 선배가 다시 입을 맞춥니다.
이젠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선배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숨결도......
선배의 손이 올라와 내 가슴을 더듬습니다. 싫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네.... 전 건희선배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누웠습니다. 선배가 내 위로 누웠습니다.
나는 얇은 흰색 쫄티 한장만을 입고 있었습니다.
땀이 너무 났습니다. 8월 말이었으니까요..... 후덥지근하게 더웠습니다.
선배는 내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날 밤에 선배랑 하룻밤을 같이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집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요... 왜........
15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광경이란....
옆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건희선배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그렇게 누워있는 내 모습.
이불을 끌어다가 목까지 덮었습니다. 누워서 잠시 생각을 했죠.
지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건가 하구요..... 암담했습니다.
그리고 곧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습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옷을 입으려구 선배가 잠에서 깨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나는데
갑자기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이럴수가 있을까요.....
이건 분명 하늘이 날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조훈영.....
그 사람이 들어오려다 말고 놀라서, 나를, 그리고 건희선배를 차례로 훑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난 깜짝 놀라 이불을 확 잡아 당겨서 가슴에 끌어안았죠.
"미.....미안하다....."
그 사람이 당황해서 허둥지둥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처럼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옷을 껴입고 내 무릎을 껴안고 앉아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건희선배는 아직도 기세좋게 자고 있습니다.
선배도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았습니다.
선배가 일어나기 전에 쪽지라도 써놓고 가버릴까?
아님 선배가 깨어날 때까지 여기 앉아서 기다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선배가 일어나서 얼굴을 마주치면 굉장히 민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대로 가자......
결정했습니다. 선배의 앉은뱅이 책상을 뒤져서 메모지와 볼펜을 꺼냈습니다.
'선배..... 연락주세요....'
이렇게 간단한 메모를 남겼습니다.
다른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취방을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습니다.
전 혹시나 훈영이란 사람이 자취방 주변에 서 있을까봐 겁이 나서 안절부절하며
주위를 살펴가며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자취방에서 죽은 듯 잠이 들었습니다.
그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고 또 잤습니다.
아마 깨어나기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후, 일주일동안 건희선배에게서 연락이 없었습니다.
내가 먼저 건희선배네 자취방에 찾아가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속이 바짝바짝 탔습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그리고 2학기 개강을 맞이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혹시나 건희선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과 사무실에도 가봤지만 선배는 없었습니다.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개강을 한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점심무렵...
전공수업엘 들어가려는데 강의실 앞 복도에서 드디어 건희선배와 마주쳤습니다.
어쩜 그리도 어색하고 민망한지..... 선배도 내 눈을 피하는 눈치입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잘.... 지냈니?"
선배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나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간 좀 있니? 너랑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전공수업이고 뭐고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선배를 따라 무작정 갔습니다.
학교 앞 커피숍입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주위를 살핍니다.
둘다 말이없이 커피잔만 만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더군요.
갑자기 선배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그때일......"
그때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열이 확 나는 것 같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나온 선배의 말 한마디에
내 가슴은 무너져내렸습니다.
"미안했다..... 내 실수였어.... 술을....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암튼 미안하다."
미.안.하.다..... 실...수....?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눈물이 허락도 없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물었는데도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앞에 앉은 건희선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미진이랑 좀 다투고... 기분이 많이 안좋았었어...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던 거고....
너한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진짜 미안하다.... 그놈의 술이 죄야.
진짜 미안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건희선배에게 찬물이라도 한컵 뒤집어 씌우지 못했을까요..
지금 같았다면 정말 따귀라도 한 대 때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땐....정말 그땐...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그냥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겨우 스무살 어린 여자 였으니까요....
그리고 내 잘못도 절반은 있는 거니까....
그 뒤에 건희선배가 뭐라고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건희선배는 이미 가고 없고 나 혼자서 그 커피숍에 앉아 울고 있더군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렇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한번의 실수로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해갈지...
겁이나고 두려웠습니다. 갑자기 혜원이(누군지 아시져? 부킹사건....)가 보고팠습니다.
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혜원이라면 마음놓고 펑펑 울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16편...
어디를 그렇게 걸어다녔을까요.....
그 커피숍에서 나와 정처없이 걸어다녔습니다.
그리고 밤이 늦어서야 내 자취방에 힘없이 들어갔습니다.
내 손에는 소주 4병이 들려있었습니다.
(평소 내 주량이 소주 한 병 정도거든여)
가게에서 소주만 4병을 샀습니다.
어디든 의지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소주뚜껑을 열고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병째...
그렇게 마셔댔습니다.....
꿀꺽꿀꺽... 무슨 맛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 병째 뚜껑을 열고 또 마시기 시작합니다.
두 병을 연거푸 그렇게 다 마시니까 더 이상 못 마실 것 같았습니다.
소리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혼자 쭈그려 앉아 눈물만 흘립니다.
그리고 간간이 소주병을 기울여 마십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눈앞이 흐릿해져 갑니다.
숨을 쉴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술 냄새가 훅하니 끼쳐오릅니다.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속이 울렁이기 시작합니다. 바깥으로 기어나갔습니다.
마구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토하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난 혜원이와 같은 처지가 됐습니다.
학교도 잘 가지 않았고 내내 자취방에 누워만 지냈습니다.
친구들도 처음엔 자취방에 찾아오고 하더니..... 점차 발길이 뜸해지고....
연락을 않더군요....
그렇습니다. 말로만 듣던 폐인이 되어 갔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너무나 보고파졌습니다. 집에 전화를 했죠.
언제나 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
눈물이 울컥 나서 몇 마디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때부터 건희 선배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파하는데 저는 떡하니 학교만 잘 다니고 있다 합니다.
그 선량한 얼굴을 하고서.....
복수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미진이란 여자한테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 말해 버릴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한다면 나는 뭐가 될까 싶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어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0월이 다가왔습니다.
무덥던 날씨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그 날도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어딘가를 싸돌아 다니다가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내 자취방은 학교 근처이기 때문에 포장마차들이 꽤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포장마차를 보니까 그때 훈영이란 사람과 술을 마시던 생각이 났습니다.
떡볶이와 소주....그 미묘한 앙상블이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술 마시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전해줬던 삐삐번호...
하지만 차마 연락할 수 없더군요.
건희선배의 자취방에서 그 아침에....
그런 내 모습을 봤던 사람이니까요.....
어쨌든 술이 마시고 싶다 생각하면서 포장마차에 들어갔습니다.
여자 혼자 포장마차에 가니까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뭘 시킬까 생각하다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먹지도 못하는 닭똥집을 시켰습니다.
소주 한 병과...... 말없이 소주 두 잔을 마셨습니다.
젓가락으로 닭똥집을 뒤적거리다가 한번 먹어봤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맛있더군요.-_- )
그러다가 가방을 뒤적거려서 다이어리를 찾아냈고, 또 다이어리를 뒤져서
꾜깃꼬깃해진 그 사람(훈영 오빠)의 삐삐 번호가 적힌 쪽지를 찾아냈습니다.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어쨌든 술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훈영이란 사람은 건희 선배랑 꽤 친한 것 같으니까
뭔가 그 일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에게 잠시 말하고 밖으로 나와서 공중전화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습니다.
"저.... 저.... 기억나세요? 이수연 인데요........
술친구가 필요해요......
여기 내 자취방 앞에 있는 포장마찬데요.....
저....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술한잔해요.....
오실 수 있으면 와 주시겠어요......?
도로에서 세 번째 포장마차에요......."
그렇게 남겼습니다. 차라리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한시간 후에 그 사람이 왔습니다.
표정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더군요....
오더니 말없이 내 옆에 앉았습니다.
그때 난 이미 혼자서 한 병 반 정도를 마셨기 때문에 좀 취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치심같은 게 있을 리 없었죠.
그 사람을 보고 한번 히죽 웃었던 것 같습니다.
"얼굴이 엉망이네......"
그 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갑자기 다시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런 따뜻한 한 마디의 말...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그리고 갑자기 터져나온 울음.....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그 사람 앞에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일까요......
"건희랑... 잘 안되냐?"
그 사람이 한 말은 참 의외였습니다. 잘 안되냐니.....?
우리가 뭐 시작이라도 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7편...
훈영오빠는 아마도 건희선배랑 내가 사귀는 줄 아는 것 같았습니다.
(둘이 친구 맞나엽? -_-;;)
나는 대답없이 술만 계속 마셨습니다.
그리고 주책스럽게도 눈물은 자꾸만 흘렀습니다.
"임마.... 남자랑 잘 안된다고 그렇게 울면 세상에 울 일 진짜 없겠다."
훈영오빠는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펑펑 더 납니다.
그렇게 울면서 술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말없이 옆에 앉아 술 마셔주는 데는 이력이 났나 봅니다.
내가 아무말도 안하는데 훈영오빠도 아무 말없이 옆에서 그냥 술만 마셔줬습니다.
그래서 더욱 훈영 오빠한테 연락이 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릅니다.
포장마차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마구 흔들렸습니다.
훈영 오빠가 행여나 잡아줄려고 팔을 내밀면 뿌리치고,
넘어진 걸 일으켜 세울려면 또 뿌리치고 했습니다.
(사실 그때 필름이 끊겨서 잘 생각나지 않아서...
후에 훈영 오빠가 말해줬던 대로 씁니다.)
그리고 또 울고..... 아예 소리도 지르더라는군요.....
그때 내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냐 하면....
"야.... 김건희..... 그래... 야이 나쁜놈아.....
그래..... 잘났다....
니 잘못은 하나도 없지? 그래... 다 술이 잘못이겠지 뭐....
에잇 나쁜놈아... 죽어버렷"
이랬답니다. 그리고 또 엉엉 울고.....
훈영 오빠는 당황해서 죽을 뻔했다더군요....
더구나 훈영 오빠를 붙들고 이런 말도 했답니다.
"글쎄.... 내 말 좀 들어볼래요?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더라구요......
아 글쎄..... 김건희란 나쁜 놈이 있는데요....
이 놈 진짜 나쁜 놈이에요.....
맞죠? 그죠? 대답해봐요.... 이 놈 나쁜 놈이죠....?"
그렇게 훈영 오빨 붙들고 강요를 하더라는 겁니다....
후훗....아마도 한이 많이 맺혔나 보죠......
내 행동을 보고 훈영 오빠는 감을 잡았다고 합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걸.... 느낌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하긴....저렇게 말하는데 모를 사람이 어딨겠어요....
바보라도 다 알겠네.....
씁쓸하군요...
훈영오빠에게 난 언제나 부족한 존재이기만 했다는 사실이......
지금 또 새삼스레 내 가슴을 짓누르는군요.....
오빠에게 언제나 나는 부족하기만 한 존재였다는 게.....
내 자취방 앞에 도착해서 내가 집에 안 들어 갈려고 했다 합니다.
자취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젠 소리 없이 울더랍니다.
소리 지르는데 지쳤는지 이젠 소리도 안 지르고
그냥 울고만 있더랍니다.
그리고 간간이 흐느끼면서 이러더랍니다.
"저기요..... 나 이제 어떻게 살죠......?
진짜 어떻게 살죠.....?
울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진짜 미안해서 어떡해요....
이제까지 잘 키워 주셨는데.... 흑흑흑....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그때 쪼그려 앉은 내 어깨가 너무 작고 애처로워 보여서
훈영 오빠는 마음이 시렸다고...........
훗날에 나에게 살짝 얘기해 줬었습니다.
당시엔 그런 걸 꿈에도 몰랐죠.
어쨌든 그렇게 울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긴 했어요....
그리고........
18편...
다음날 눈을 뜨니 내 자취방이었고... 아침이었고...
머리맡엔 물병이랑 컵이 놓여있었죠.
물을 한잔 마시고 머리가 깨어질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를 되짚어 보려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
필름 끊겼을 때 기분.... 아세요?
엄청 두려운 그 기분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실수를 했는지 하나도 모르는 그 두려운 기분.....
주위를 둘러보니까 책상 위에 작은 메모가 있었습니다.
어딘지 낯익은 글씨....
휘갈겨 쓴 그 글씨는 훈영 오빠의 글씨체였습니다.
'일어나서 몸이 안 좋으면 약 하나 사먹어라.
어제 너 너무 무리했어 임마.....
그리고 니 다이어리 뒤져서 명함 하나 가져간다.
말도 없이 뒤져서 미안하다.
그럼 담에 또 보자..... 훈영'
그때 컴퓨터 사진 찍어서 명함 만드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나두 그런 걸 몇 장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걸 하나 가져갔나 봅니다.
웬일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물론 그 날도 학교 안갔져...)
삐삐가 울렸습니다.
"나 훈영이다. 지금 니 방 앞에 와 있는데 잠깐만 나와라."
그 말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놀라서 옷을 아무렇게나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가니까
바로 앞에 훈영 오빠가 담배를 피우면서 서 있었습니다.
내가 다가가니까 발 밑으로 담배를 버리고 발로 비벼 끄더군요.
"어제.... 죄송했어요.... 좀 불쾌하셨죠....?"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훈영 오빠는 표정이 별루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민망해서 어디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관계는 아니잖아요......
"건희 만났다....."
훈영 오빠가 한 말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건희라는 이름을 들으니까 피가 거꾸로 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땅바닥만 발로 문질러 대고 있었습니다.
"너 요즘 학교 안나간다며.......?"
훈영 오빠는 내가 찔릴 말들만 골라서 하는 사람 같습니다.
더 민망해져 고개를 못듭니다.
"임마.... 그러면 너만 손해야.... 학교 다녀.
그리고 악착같이 공부해.
보란듯이 잘 살면 되는 거야..... 바보같이......"
훈영 오빠는 혀를 끌끌 찹니다.
또 소리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울지도 마. 무슨 죄지었어?
언제까지 그렇게 울면서 살꺼야?
내 친구가 저지른 일이고 또 내가 널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해서.....
걱정되서 하는 말이야..... 알아 들어 임마?"
훈영 오빠가 말끝마다 뱉는 '임마'라는 말.....
오빠는 진짜 그 말을 자주 했었죠.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무조건 임마였어요.....
그 '임마'라는 말까지 정겨운 사람이었었죠....
다음날... 전 학교를 갔어요...
아마도 훈영오빠의 그 말이 내겐 큰 힘이 되었었나 봅니다.
용기내서 학과 사무실엘 들렀더니.... 이런....
건희 선배가 보이더군요.....
근데 어디서 싸웠는지 얼굴이 쥐어 터져설랑은.....
멍이 푸릇푸릇 들어 있고 입술 주위가 터져있더군요.
무슨 말인지 다들 아시겠죠?
어젯밤.... 훈영 오빠가 건희 선배를 때린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더러운 짓(?)이나 하고 다니는 친구가 보기 싫어서...
죽도록 패줬는지도 모를 일이죠......
선배가 내 눈을 피합니다. 나도 선배를 피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편안해졌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19편...
그 후에 학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훈영오빠와는 간간이 삐삐로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됐구요.
그냥 서로의 안부만 주고 받는 그런 사이가 되었죠.
훈영오빠도 학교에 복학을 한 터라 바빴지요. 그리고 가끔 우린 술친구도 했어요.
포장마차에서.... 닭똥집과 함께......^^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가끔 훈영오빠를 만나다 보니.....
어느새 훈영오빠에게 정이 들어버렸나 봅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나 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할 자격(?)이 없다고 나 자신을 추스리면서도
자꾸만 그런 현실 때문에 가슴이 아파오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오빠를 마음 속에 많이 허락해 버린 것 같았습니다.
겨울방학이 되었는데 집에는 못갔습니다.(주말에 몇 번 간 것 빼구여)
겨울 방학 땐 진짜 계절학기를 들었거든요.....
구멍 난 학점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학때도 자취방에 있다보니까 훈영오빠를 만날 기회가 더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정이 들어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 당시 훈영오빠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만큼 커져만 가는 좋아한다는 그 감정 때문에
혼자서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오빠에게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게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고,
더구나 자기 친구랑 그런 짓까지 한 나인데.....
오빠가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접을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커져만 간다는 사실을.......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부모님을 뵈러 집에나 갈까 생각했지만 뭔가 허전하고 아쉬웠습니다.
훈영오빠에게 삐삐를 쳤습니다. 내 방 전화번호를 남겼죠.
십분 쯤 후인가 연락이 왔습니다.
"너 어디냐?"
훈영오빠는 내가 '여보세요?' 하자마자 대뜸 이랬습니다.
"자취방" (이땐 좀 많이 친해져서 내가 말을 놓게 됐죠)
"이브날에 그런 데 쳐박혀서 뭐해 임마.... 나와.... 술이나 마시자...."
난 내심 기뻤는지도 모릅니다.
"오빠 어딘데?"
"OOOO알지? 거기로 나와. 이쁘게 하구 나와 임마."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훈영오빠의 장난 섞인 말... 이쁘게 하구 나와 임마.....
이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느낌....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습니다.
훈영오빠가 오라고 했던데로 갔더니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단 둘이 있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죠 ^^)
근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모두 짝이 맞았는데......
단 한사람.... 훈영오빠만 솔로더군요....
내심 기뻤죠..... 훈영오빠의 전문대 친구들이라 했습니다.
내가 가니까 다들 난리도 아니더군요.....
"야~ 훈영이 이 자식 숨겨둔 애인이 있었구나?"
"그러게 말이다... 그래... 어쩐지 미팅도 안하고 여자한테 관심도 없다 했더니..."
다들 이렇게 한마디씩 합니다. 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야 임마.... 이렇게 이쁜 아가씨 숨겨두고 우리한테 인사도 안시켰냐?
이놈 나쁜 놈일세..."
훈영오빠의 친구 중 한 사람이 오빠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합니다.
나는 말없이 빙긋웃습니다.
근데..... 훈영오빠의 한마디가 내 가슴을 시리게 만듭니다.
"애인 아냐.... 그냥..... 잘 아는 동생이야....."
어쩜..... 그렇게도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히는지....
그래.... 역시 그랬던 거야....
오빠는 날 그렇게 밖에 생각 안하는거야.... 그래.....
감히 오빠를 좋아한 내가 바보였지.....
잘못이겠지......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20편...
그 날,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전... 재미가 없었습니다.
훈영오빠가 계속 신경이 쓰였으니까요....
하지만 나도 재미있는 척, 그렇게 분위기를 맞춰주려 노력했습니다.
훈영오빠가 알게 모르게 날 많이 챙겨줬습니다.
행여나 술을 좀 많이 마신다 싶으면 그만 마시라고 눈짓을 보낸다거나,
오빠 친구가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워대면 (내가 담배연기에 기침을 좀 많이 하거든여)
저리루 가라고 친구를 막 닥달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빠가 자꾸만 그러면 내가 오빠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될테니까....
오빠를 더 좋아하면 내가 많이 힘들어 지니까.......
늦은밤입니다.
오빠 친구들이랑 다 헤어졌습니다. 올나이트 하자고 다른 친구들이 그랬는데
오빠는 나더러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합니다.
좀 섭섭했지만 오빠가 시키니깐 그러기로 합니다.
오빠가 날 자취방까지 데려다 주려고 일어섰습니다.
오빠랑 둘이 걸어오면서... 좀 추웠습니다. 내가 어깨를 움츠리니까...
오빠가 겉에 입고 있던 무스탕을 벗어주려 합니다.
내가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도 오빠는 끝내 벗어서 내 어깨에 걸쳐 줍니다.
오빠의 온기.... 따뜻합니다.
오빠가 추워보여서 내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서 오빠에게 매줬습니다.
오빠가 웃습니다. 너무 행복하면서도 가슴이 무지 쓰립니다.
집 앞에 다 왔습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잘 자고.... 임마, 너... 오빠가 집에 가자고 해서 삐진 거 아니지?"
오빠는 내가 말없이 시무룩한 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내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듭니다.
오빠가 다시 목도리를 풀어서 내 목에 따뜻하게 매줍니다.
오빠의 손길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갑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오빠 있잖아......"
오빠가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오빠를 불렀던 걸까요.....
"그래.... 뭐......?"
"오빠..... 낼..... 뭐할거야?"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옵니다.
오빠가 내 머리를 툭 건드립니다. 웃으면서......
"너랑 놀아달라구...? 짜식이..... 오빠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알어 임마?"
오빠의 말이 야속하게만 들립니다.
"싫음 관둬라 뭐.... 나두 친구들 만날거야.... 치......"
내가 삐진 척 합니다.
"아냐..... 낼.... 만나자....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께.
그리고....크리스마슨데 동생한테 선물도 사줘야지......"
오빠가 웃습니다.
아.... 너무나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동생이라는 말....... 역시 그렇습니다...
훈영오빠는 날 친한 동생으로밖에 생각지 않습니다.
"오빠.... 재밌게 놀아....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어......."
오빠의 무스탕을 벗어 건넸습니다.
오빠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섰습니다. 넓은 어깨가 듬직해 보입니다.
예전 내 실수만 아니라면(건희선배 사건) 저 넓은 어깨에 기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다시 머리를 세차게 흔듭니다.
내가 훈영오빠의 어깨에 기댈 자격이나 있는지......
마음이 시리기만 합니다........
21편...
크리스마스 날 오후에...
훈영오빠를 만나 밤늦게까지 계속 같이 붙어다녔습니다.
영화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를 같이 어깨 부딪치며 걸어다녔습니다.
(아마, 누군가를 사귀어 본 사람들은 다 아시겠져....
특별한 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손 꼬옥 붙잡고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오빠랑 같이 보내는 시간 동안에도 전 내내 우울했습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아니, 욕심부리면 안되는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게 199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때까지 훈영오빠에게 전 그저 그냥 친한 동생이었습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
전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건희선배를 좋아했을 때보다 더 심한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할 때에도, 무슨 일을 하든간에
훈영오빠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으니까요......
그때 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땐 막 신나고 들뜬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 끝도 없이.....
그렇게 한없이 가슴만 시리고 아파진다는 사실을.........
훈영오빠는..... 내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떠올리면 눈물나고 아련해지는 존재........
너무나 힘들어서 더 견딜 수 없었던 어느날......
전 드디어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 내 맘을 오빠에게 다 말해버리기로......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술에 의지해서라도 다 말해버리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오빠에게 연락했죠.
"오빠.... 난데..... 나 오늘 술이 너무 마시고 싶거든? 나 술 좀 사줄래?
우리 자주 가던 그 소주방 알지? 거기로 나와...... 나 기다리고 있을께.....
꼭 나와........"
그렇게 삐삐에 음성을 남겼습니다.
저녁에 소주방에서 오빠를 만났습니다.
"임마....... 너 왜 그래?"
오빠도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놀라서 묻습니다.
"그냥..... 갑자기 술이 너무 마시고 싶더라?"
내가 웃으면서 대수롭잖게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너 얼굴이 꽤 상했다.......?"
오빠가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그래......? 아마도 술이 너무 마시고 싶어서 그런가 보지 뭐......."
또 내가 흘려 말합니다.
오빠가 내 머리를 툭 쥐어 박습니다.
"쪼그만게.....짜식이 어디 오빠 앞에서 술타령이야......
그래..... 오늘 얼마나 많이 마시나 함 보자......."
오빠가 웃습니다. 너무나 해맑은 웃음.......
"오빠 나 장난 아니야...... 진짜 오늘 죽을 때까지 마실거야.....
그러니까 나 업고 갈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야 해.... 알았지?"
내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합니다. 오빠가 또 웃습니다.
진짜 술이 나왔을 때 전 숨 쉴 틈도 없이 마셔댔습니다.
빨리 취하고 싶었습니다. 술에서 우러나는 용기를 얻고 싶었습니다.
오빤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비워진 내 술잔 채워주기에 바쁩니다.
너무 급하게 마신 탓인지.......아님 긴장을 했던 탓인지.......
내 주량인 한병을 다 채우기도 전에 전 이미 취해있었습니다...
술이 막 오르려 할 때의 그 기분..... 느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막 뭔가 속에서 자꾸만 슬픈 감정이 꾸역꾸역 솟아오르면서.......
세상에서 내가 젤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 말입니다.......
그런 기분이 막 들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오빠........"
22편...
훈영 오빠가 말없이 나를 쳐다봅니다.
오빠의 눈빛...... 그 눈빛을 보니까 또 마음이 흔들립니다.
"왜 불러 임마....... 불렀으면 빨랑 말해....
왜.... 안주가 부실하냐? 술이 모자라?"
오빠는 심각한 분위기를 애써 깨려는 듯 장난을 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목까지 올렸다가 다시 꿀꺽 삼켰습니다.
오빠에게 말했냐구요?
그 자리에서 전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바보같이..... 그리고 술집을 나왔죠.
술집을 나왔을 때.... 저.....또 장난이 아니게 취했습니다.
진짜 오빠가 업어야 할 정도로 취했습니다.
오빠가 택시를 잡겠다고 막 뛰어갈려는데 내가 오빠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상황이 떠오르니까 또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군요.........
"오빠......."
"그래.... 왜...... 속 불편해? 좀 토해 볼래? 등 두드려 줄까?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마셨어 임마........
너 까불 때 내가 알아봤다......"
오빠는 속상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빠......나......."
내 목소리가 귓가에서 막 울렸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내 혀가 많이 풀린 걸 느끼겠더라구요.......
"그래... 뭐..... 목 마르니? 물 사다 줘?"
"오빠...... 나 힘들어......"
"그래...... 아무래도 좀 토하는 게 낫겠다......."
바보같이....... 오빠는 자꾸만 엉뚱한 소리만 합니다.
"나 오빠 때문에 힘들어!"
내가 소리지르듯 말해버렸습니다.
순간 정적이 감돕니다. 오빠가 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내친 김에 다 말해버리자 싶습니다.
역시 술의 힘은 대단하단 걸 느낍니다.
"오빠 생각이 자꾸 나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잘 때도 생각나고 자꾸 머릿속에 오빠 얼굴이 맴돌아.....
끊임없이 맴돌아..... 그리고....
여기가 자꾸 아퍼...(내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죠)
오빠 생각만 하면......여기가 자꾸만 아퍼.....
나 ....오빠 많이 좋아하나봐..... 그래서..... 너무너무 힘들어서......."
목이 메어서 눈물이 방울져 흐릅니다.
오빤 말없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습니다. 꽤나 당황한 듯 합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니까..... 괜히 말했나 후회가 되더군요......
"하지만 오빠..... 신경 쓰지마......
(이말 할 때 억지로 웃으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 얼굴이 막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 그냥....... 오빠 좋아한다는 것만 말하고 싶었어.....근데.....
좋은 오빠로만 생각할께...... 오빠 좋아한다는 말만이라도 하고 싶었다구....
그러니까 신경 쓰지마..... 부담스러워 하지 말라구.......
내가 뭐..... 오빠 좋아할 자격이나 있나 뭐.....
좀만 더 힘들면 오빠 잊을 수 있을테니까......
진짜 친오빠처럼 대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그러니까......."
오빠에게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 진짜 눈물이 펑펑 났죠........
시야가 가려질 만큼........
내가 살아오면서 그만큼 많은 눈물을 흘려본 게 처음인 것 같았죠..........
훈영오빠는 그래도 말이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오빠 고마워...... 고마워......
나 같은 애도 동생이랍시고.... 항상 챙겨주고.....
그렇게 해준 거... 너무 고마워.......
그렇게까지 해주는 오빠한테 내가 오늘 못할 소리 했다....
맞지? 미안해...... 내 맘 편하자고 오빠 불편하게 만들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또 웁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눈물이 많은 걸까요.......
울지 않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눈물은 자꾸만 납니다.
그렇게 오빠를 좋아한다는 고백과 동시에 오빠를 잊을거란 말을 했습니다.
오빠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많이 부담스럽나 봅니다.
왜 그렇지 않겠어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다 아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남자분들은 훈영오빠의 맘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나같은 여잘...... 사랑할 수 있겠어요.........?
23편...
오빠는 내 자취방에 다 왔을 때까지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방에 들어갈 때 잘 자란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밤새 뒤척여야 했습니다.
다음날 오후쯤에 오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참 민망하더군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잤어? 속은 괜찮아......?"
오빠가 예전과 같이 다정스레 말합니다. 또 울먹울먹해지는 걸 느낍니다.
"으......응..... 괜찮아......"
그리고 또 침묵.........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오빠입니다.
"수연아.........."
"응 오빠......"
"어제 일 말이다........ 니가 했던 말......."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니가 나한테 했던 그 말들...... 다..... 진심이니........?"
오빠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묻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뭘 알고 싶은건지.......
"오빠..... 그 말..... 이제 하지 말자......
그냥..... 못들은 걸루 해줘........"
내가 괴롭게 말했습니다.
"니말..... 정말로....... 정말로 진심이었니.......? 응.....?
정말 니 마음속에 내가 있는거야.......?"
오빠는 뭔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급하게 물어봤습니다.
그런 오빠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만하자 오빠...... 그냥 못들은 걸루 해달라니까......"
"아니.....꼭 확인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