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험생의 자살을 보고 (노하우 게시판에서 옮김)
조카가 수능을 보기 때문에 수능에 대한 보도를 관심있게 보다가, 수능에 대한 선정적 보도를 일삼은 언론의 보도를 믿은 어느 수험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언론의 막가파식 보도 때문도 아니었고, 자살을 택한 그 학생의 행동도 아니었다. 그 학생이 했다던 말이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인생의 낙오자’가 될까봐 무섭다는 말을 이제 20살이 해야 할 말인지. 이 놈의 사회가 어찌된건지 모를 일이다.
아직 사회에 진출도 안한 20대가 벌써 이 사회의 ‘어두운 구조’를 확실히 파악했고, 또 믿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학벌 혹은 좋은 직업이 있어야만 ‘인간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말이다. ‘인생의 낙오자’란 딱지가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사회.
하긴 고등학교를 나오면 사법고시를 패스해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라는 폭언을 듣는 사회이니 그럴만도 하다. 아무리 개인적인 노력이 더해진다고 해도, 여전히 그 간판과 직업이 사람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누가 그 어린 학생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질타하겠는가 말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4년 연속 수능을 보는 조카들을 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당당하게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다고 ‘너가 나쁜 학교(?) 나오면 대통령 후보가 되어도 고생한다’고 말하기는 너무나 서글프지 않은가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란 원래 믿을게 못된다는 기본적인 교육을 고등학교 때 시킬 수 있었다면 이번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대학 간판이나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면 또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범학생’인 세상에서, 전인교육보다 평균점수가 떨어졌다고 당당하게 한탄하는 신문이 일등이라고 떠드는 사회에서 이런 비극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을 뽑는 자리에서 토론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 본질을 떠나 간판으로 ‘무식하다, 유식하다’는 평가를 내려버리는 사회 아닌가 말이다.
이 수험생의 자살과 지방대생의 현실은 전혀 무관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취직을 위해 이력서를 들고 다니는 많은 지방대생의 마음도 그 만큼 무거울 것이다. 그 학력에 대한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간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오늘 조심스럽게 국내에 전화를 돌려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능이 끝나고 또 수많은 ‘인생의 낙오자’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 ‘낙오자’가 당당하게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번의 시험으로 ‘낙오자’만 양산해 가는 사회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언제나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면 된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될는지. 노무현의 당선은 그런 사회로 가는 하나의 관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낙오자’가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긴 인생의 막바지에서나 비로소 결정될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면 말이다. 화려한 간판보다는 묵묵히 걸어온 그 실천이 인정받는 사회를.....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상식이 넘치는 사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