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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하운의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해설] 김재홍(평론가.경희대 교수)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자유의 올바른 구현이며 정의로운 평등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자유와 표리 내지 상보관계를 지니고 있는 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이 땅에서 무엇보다도 심각한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는게 사실입니다. 자유로운 부의 축적과 정의로운 분배, 즉 정당한 평등의 실천이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모순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관건이 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평등이란 자유와 함께 인류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속성이자 모든 인간의 생명적 권리에 해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평등이란 실천상에 있어서 몇가지 측면을 지닌다고 할겁니다. 개인과 개인,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간의 평등의 문제가 그 하나입니다. 또한 신분상의 평등, 즉 사회적 평등과 정치·경제적 평등을 논할 수 있으며 아울러 지역과 지역간의 평등, 性에 있어서의 평등문제를 꼽을 수도 있겠지요. 그와 함께 신체상의 평등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구요.
문학에 있어서 평등의 문제는 그 내용이나 주체 면에서 생각할 수도 있고 창작 주체(작가)면에서도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예로 일제하 카프시인인 유환희의 시「女職工」(「개벽」68호 1926.4)을 들어 보기로 하지요.

봄은 되얏다면서도 아즉도 겨울과작별을 짓지 못한채
- 낡은 민족의 잠들어있는 저자우에
새벽을 알리는 工場의 첫고동소리가
그래도 세차게 검푸른한울을 치바드며
三千萬 백성의 귓겻에 울어나기 시작할때

목도메다치여죽은 남편의 상식상을
밋처치도못하고 그대로 달녀온
애젊은 안악네의 갓분숨소리야말로······
악미의 굴 속같은 作業物안에서
열두시간이란 그동안을 보내는것만하야도
- 오히려 진저리가 나거든
징글징글한감독놈의 음침한눈짓이라니······
그래도 그놈의 뜻을바더야한다는 이놈의 世上-

오오 조상이여! 나의 남편이여!
왜 당신은 이놈의세상을 그대로 두고 가셨습닛가?
- 안해를 말리고 자식을 애태우는······.

이 시의 핵심은 일제 강점기에 있어서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기인한 각종의 불평등문제에 놓여진다고 하겠습니다. "낡은 민족의 잠들어있는저자 / 삼천만 백성의" 등과 같은 구절은 이 시가 원천적으로 일본과 그 강점하에 놓여져 있는 당대 조선 사이의 민족적 불평등문제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또한 "목도메다치여죽은 남편의 상식상 / 악마의 굴속같은 작업물안에서 / 무릎을 굽힌채 고개 한번돌리지 못하고 / 열두시간이란 그동안을 보내는 것" 이라는 구절에는 민중의 소외 또는 노동의 소외 등 사회적 불평등문제가 제기돼 있다고도 할거구요. 이와함께 "징글징글한감독놈의 음침한 눈짓이라니···/ 그래도 그놈의 뜻을 바더야한다는 이놈의 世上" 같은 구절에선 성적 폭력, 즉 남녀불평등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져 있다고도 할 겁니다(자세한 것은 김재홍「카프시인비평」(서울대출판부, 1990) 참조). 말하자면 1920년대 일제강점하 이땅의 정치·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와 남녀불평등의 문제를 접합시키면서 민족적·계급적 울분을 분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하운의 시「파랑새」는 이러한 여러 소외문제 중에서 특히 신체적 평등과 자유문제를 제기합니다. 주지하다시피 한하운은 1919년 함남 함주출생, 북경대 농학원에서 수학한 시인이지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天刑처럼 나병에 걸려 평생을 비통과 저주, 자학과 절망속에서 신음하며 시집 「한하운 시초」(1949), 「보리피리」(1955) 등을 남긴 분입니다. 그분의 대표작으로는 바로 이「파랑새」를 비롯해서 「전라도 길」, 「보리피리」등이 유명하지요. 시 「파랑새」는 기·승·전·결 네 행으로 짜여진 시인데 그만큼 간결하면서도 음악성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3음보가 그대로 한 연을 이루면서 시전체가 4·3·3·4행 4연의 시각적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구조적 심미감과 함께 안정감을 던져줍니다. 시의 짜임새는 매우 단순하다고 하겠지요. 첫연에서는 시의 화자가 죽어 저 세상에 가서 파랑새가 되겠다는 소망과 의지의 표현, 둘째 셋째 연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자유로이 우짖고 싶다는 애절한 희망과 염원의 피력이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 연은 첫 연을 반복하면서 시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기·승·전·결의 시구성은 사실 음악에서 교향악의 4악장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봄·여름·가을·겨울이라든지 생·노·병·사의 순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안정적인 형식이라고 하겠지요.
내용면에서 첫 연은 바로 죽음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심각성을 일깨워줍니다. 사실 죽음얘기만큼 강렬하게 주목을 환기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죽어서 파랑새가 되겠다는 사연의 숨은 뜻은 무엇인가요. 그만큼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비장하게 산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파랑새가 상징하듯이 죽어서라도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 것이지요. 말하자면 마치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던 윤동주의 비장한 심정처럼, 죽음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애절한 염원을 드러낸 것입니다. 왜 그리도 시적 화자의 심정이 애절하고 비장한 것인가요? 아무래도 그것은 시적 화자가 시인 자신과 등가를 이루고 있는 데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흔히 天刑이라고 불리우는 나병환자로서 실제의 한하운이 바로 시 속의 화자인 '나'인 것이지요. 나병환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쓰라린 육신의 고통과 질곡,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정신적 절망감과 자학이 늘상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얼마나 그러한 고통과 절망이 컸기에 시인은 늘상 죽음과 그 이후를 생각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습니까? 죽어서도 파랑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란 그만큼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절망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되겠지요.
바로 여기에서 또 자유의 문제가 제기되지요. 자유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자유란 우리가 '∼로부터의 자유' 또는 '∼할 자유'처럼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의 자발적인 생각,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자유는 대략 세가지의 범주를 지닌다고 하겠지요. 첫째는 자연성의 개념입니다. 새가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나무나 풀 또한 자유로이 숨쉬면서 즐기며 잎을 뻗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자유의 한 모습이지요. 둘째는 사회성의 개념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억압이나 수탈, 구속을 받지 않음은 물론 굶주림이나 질병,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러한 의미의 자유라고 할 겁니다. 세번째는 철학적 자유의 개념입니다. 인간은 특히 육신의 질곡이 뜻하는 지상 위의 온갖 인간조건과 함께 내면에 정신의 감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요. 이러한 육신의 무게와 정신의 감옥을 벗어나서 정신의 가벼움과 그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게 바로 이러한 철학적 자유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한하운의 시 「파랑새」는 이러한 여러가지 자유의 총합으로서 육신의 자유는 물론 정신의 자유까지도 갈망하는 애절한 뜻을 담고있다고 할 겁니다. 나병환자로서 받는 정신적 학대와 고통을 하루빨리 벗어나서 그 죽음의 저 너머 세계에서라도 자유로운 삶, 삶의 해방을 누려보고 싶다는 처절한 염원이 '파랑새 / 푸른 하늘 / 푸른 들 / 푸른 울음 / 푸른 노래'로 형상화됐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시「파랑새」는 나병환자로서 외부로부터 받는 멸시와 천대, 그리고 스스로 내면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자학과 절망을 뛰어 넘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자유에의 염원과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지요. '파랑새'상징을 통해 나병환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신체적인 불평등의 문제를 근원적인 자유의 문제와 결합하여 형상화한데서 이 시의 의미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상 위의 어디선가에서는 신체적인 불구와 육신의 병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분들이 어찌 한 두분이시겠는가요? 우리 모두 한 때의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진정한 인간사랑의 마음으로 그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마음을 길러가야만 할 겁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병들어 몸 아프고 불구로 인해 불편한 것처럼 지상 위에서 고통스럽고 애처로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11.114.58.161 이종익 (sigun21c@hanmail.net) 07/26[14:35]
평론가야 말로 시인보다 더 능력있는 창작가인 것을 여기서 느낄 수 있군요. 단 몇줄의 시를 해설하면서 엄청난 예시와 심오한 논리가 술술 나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평론가만의 특권이겠지요. 그냥 몹쓸병에 걸린 한 사람의 푸념이고 넋두리일 수도 있는 시를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엄청난 창조력! 정말 놀랍습니다.

written by ()
2001-07-19 16: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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