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여중생 2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뒤늦게 사과를 표명했지만 사과 내용및 형식에 대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 난 2000년 7월 3일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발생한 주일미군의 여중생 성추행사건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취했던 일련의 사죄 행태와 비교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키나와 성추행 사건은 당시 오키나와주둔 미군 책임자및 총영 사,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에 이어 피의자였던 미군 해병에게 징 역 2년형 선고 및 급여 지급 보류, 2계급 강등의 중징계 조치로 마무리 됐다.
◈클린턴의 사과〓부시 대통령은 사건 발생 5개월이 훨씬 지난 2 7일에야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힌데 비해 클린턴 대통령은 사건이 일어난지 한달도 안된 시점에 일본 총리에게 직접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7월22일 선진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기회를 이용,모리 요시로(森喜郞) 당시 일 본총리와 단독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미군 병사의 범죄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을 드린다”며 “이런 사건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솔직히 사과했다.
특히 클린턴 대통령은 G8 회의 일정과는 별도로 바쁜 짬을 내가 며 오키나와의 격앙된 민심을 달래느라 시종 진땀을 뺐다. 클린 턴 대통령이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2차대전 희생 자의 추모비가 안치된 평화기념공원이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그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보내는 ‘화해의 연설’을 했다. 기지 축소를 약속했으며, 미군 주둔으로 주민들이 겪고 있는 부담을 언급하며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모리 총리에게 사과를 한 직후에도 클린턴은 미군기지로 달려가 미군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주민과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 그 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장병들의 의무 ”라며 경고성 ‘심야 훈시’를 했다.
◈오키나와 사례〓오키나와에서는 2차 대전 이후 미군에 의한 살 인·성폭행사건 등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특히 지난 95년 9월 오키나와 초등학교 여학생이 미군 3명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극렬한 미군기지 철수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미·일 양국은 오키나와 기지축소와 주일미군 지위협정 개 정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일 안보협의위원회(SACO)를 설치, 후 텐마(普天間)기지등 오키나와내 기지 7개소 반환 등의 결정을 내 렸다. 이런 와중에 후텐마 비행기지 소속의 미군 해병이 술에 취 한채 아파트에 침입, 잠자고 있던 여중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 생하자 오키나와 주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에 당황한 주일미군은 오키나와 미군 책임자인 얼 헤일스턴 지 역조정관(중장)과 로버트 루크 총영사가 이나미네 게이치(稻嶺惠一)지사를 방문, 공식 사과하는등 지역주민들의 감정을 달래기에 급급했으며 결국 클린턴 대통령의 직접 사과로 이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