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겠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거야.....
밀은 내겐 아무 소용도 없는 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거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하고 말했다.(중략)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말은 모든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거야."』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낼 수 있는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마르다 못해 뼈밖에 없다시피한-그래서 갸냘퍼 보이기까지 하는-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걷는 나의 어린 왕자의 발자국 소리에 나는 늘 작은 행복을 느낀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생활의 패턴을 바꾸고, 생활을 환히 밝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아무 쓸데도 없었던 것을 한 순간에 대단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빵을 먹지 않는 여우가 어린 왕자의 머리칼과 같은 빛깔인 밀밭과
심지어 그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좋아하는 색깔,
그 사람과 함께 듣던 음악,
그 사람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주변의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사랑에 빠진 이의 가슴에는 넘치도록 차올라 그것들로 하여금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짧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
'말은 오해의 근원'이라는 부분에 닿아,
당신은 아마도 나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긍정을 표했으리라.
이제, 어린 왕자를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여우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그 약속 시간을 애타게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가.
어떤 사람을 만나러 집을 나설 때, 흥분과 기대로 발걸음을 빨리했던 기억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어린 왕자와 첫 데이트(!)를 하기 전날, 나는 잠을 설쳤었다.
집을 나서며, 가족에게 최대한 평범해 보이려 애를 쓰는 내 가슴은 한껏 두근거렸고,
마침내 약속 시간이 닥쳐 나의 어린 왕자의 옆모습을 발견했을 때에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설레임, 그 기대감, 그 두근거림.. 사랑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너희들은 내 장미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들(수천 송이의 장미:註)에게 어린 왕자는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꼭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그러자 장미꽃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있어."
그가 계속 말했다.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 송이가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도 더 소중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바람막이로 보호해 준 것은 그 꽃이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기울여 들어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겠다. 어린 왕자의 저 말들 가운데에는 오류가 있다.
아는 사람, 손? 우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 바로 이 부분이다.
맞춘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므로(우웃, 당신, 맞췄나?천재다!!)
이유를 설명해야 할 듯 하다.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사람 '대신'죽는 것이 성립할 뿐.
어찌 보면 궤변처럼 느껴질지 모를 이 말은 그러나 나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다.
이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내게 해주던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 점에서,
부디 독자들이 비난을 참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더군다나 그가 나의 어린왕자가 되기를 그토록 소망했으나 끝내 그러지 못했으며
나 또한 그의 꽃이 되어주고 싶었으나 결국 그리 되지 못했음에랴!
어쨌든간에, 그리 흥미롭지 않은 나의 글을 계속하기로 하자.
어린 왕자는 장미들을 향해 자신의 꽃이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며
꽃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이 꽃에 가졌던 감정, 그것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대들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을 주고, 바람막이로 보호해주고, 벌레를 잡아준 어린 왕자처럼,
누군가에게 애정을 쏟고, 그 사람이 상처 받지 않도록 감싸안고,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했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달려가 당신의 그 사람에게 말하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