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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편과 사는 한국 여자의 잼있게 사는 이야기 5

 


제목 : 프랑스 남편과 사는 얘기 5


저희 결혼식 얘깁니다.

저의 프랑스 입국사유는 '결혼'입니다. 뭐 속되게도 들리지만 좌우지간 결혼이 맞습니다. 제 남편은 '마침' 미국에서 근무하던 저와 '마침'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프랑스인의 '마침' 캘리포니아로 휴가온 그의 남동생입니다. 이후 국제전화요금과 항공료가 감당이 안되서 차라리 결혼하자 했지요. 농담같지만 실제로 제가 받았던 AT&T의 전화요금청구서는 한달에 적게는 400불에서 많게는 1500불까지(

갔었으니까요. 남편이 France Telecom에 낸 돈은 말할 것도 없구요.

부모님께는 결혼결심이 들고서야 말을 꺼냈으니 말 그대로 부모님의 뒤통수를 친건데요. 제 별명은 똥고집입니다. 남편이 저를 부르는 애칭(?)은 'Tete de Mule'입니다. 처음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불어표현이라 번역이 안된다고 하더군요. 뭐 영어로 Darling이나 Honny정도 되나부다 했지요. 번역하면 황소머리니까 우리말로는 똥고집이 맞습니다.

한참 부모님과 힘들때 매일 울며 지내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저를 보고 친구들이 '너 그럴줄 알았다' 하더군요. 원래 연애경험없는 사람들이 한번 미치면(?) 완전히 간다나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전 정말 저희 부모님이 받아들이실 거라고 생각치 않았습니다. 저희 아빠가 저희를 얼마나 엄하게 키웠는지 어린 시절 동네에센 그집아이들은 애들같지 않다고도 했었고 특히 저는 '일몰후 외출이면 일초후 즉사'라 해서 저녁 7시이후엔 나갈 수 없었구요 대학시절엔 흔한 엠티도 못 가봤구요 다 커서도 외출시는 뭐 홍수가 나든 전철이 침수되든 이유를 불문하고 10시전엔 귀가했어야 했답니다.

어쨌든 부모님과의 모진 역경을 딛고(?) 일일히 기억도 나지않는 준비서류는 한국-미국-프랑스의 국제우편을 거쳤고 원본, 번역본에 한국대사관 공증까지 겹쳐 007가방 하나를 족히 채웠지요. 어렵게 잡은 결혼식 날짜가 한창 여름 휴가철이라 저희 가족 다섯사람-아빠, 엄마, 오빠와 새언니, 남동생-은 비수기의 두배 요금을 주고 도착공항은 스위스 Basel, 출국공항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체류기간 일주일로 겨우 표를 끊었답니다.

결혼식 이틀전에 도착할 우리 가족을 위해 르노 에스파스 7인승을 렌트해 두었습니다. 남편과 저까지 합해 7명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요. 차를 장식할 꽃집에도 예약을 해두었구요.

결혼식 일주일 전-

'얘, 너희 셋째 고모 따라가겠다고 난리다', 아빠 전화입니다.
'한사람이 늘게 되면 당장 렌트해 둔 차에 한 좌석이 부족하게 되는데요'
'어쩌냐, 마침 자리가 있어서 표 이미 끊었다, 차 좀 더 큰 걸로 바꿔라'
이왕 가족들이 프랑스까지 가는데 빠리 에펠탑에서 사진은 찍고 가야지 않겠냐는 말씀과 함께.

막판에 예약을 바꿔서 겨우 렌트한 차가 에어컨도 없고 좌석도 딱딱한 흰색의 미니버스. 꽃집에서 미니버스는 도저히 장식할 수 없다고 버티더군요. 보시면 압니다. 미니버스는 장식해도 폼 안난다는 거. 사각으로 각진게 얼마나 투박하게 생겼는지요. 흰색 미니버스로 식장에 도착하는 신랑, 신부 보셨습니까? 결국 가족들은 미니버스로, 신랑과 신부는 남편이 몰던 폭스바겐을 장식해서 따로 가기로 계획을 바꿨지요.

결혼식 이틀 전, 가족들이 도착하는 날입니다. 스위스 Basel공항은 프랑스 Mulhouse 공항이라고도 하는 유러피안 공항입니다. 출구가 두군데입니다. 하나는 스위스, 다른 하나는 프랑스로 나가게 되지요.

제 가족과 남편이 처음 만나는 날이라 둘이 바짝 긴장해서 도착할 가족들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가족들이 안 나옵니다. 우려한 바대로 맞은편 스위스로 출국하셨더군요. 스위스로 출국한 가족을 프랑스로 다시 입국시키려니 경찰이 막아섭니다. 6명의 한 가족이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귀국하려니 불법체류자로 보기 십상이지요. 마침 여권을 위조해 프랑스로 입국하는 중국 불법체류자가 급증한 때 였답니다. 빠리야 여권심사가 까다롭지만 지방 국내선의 경우 입국심사가 헐렁하거든요. 남편이 한사람 한사람 입국확인서를 써가면 경찰에 자초지종을 설명해서 겨우 공항 통과가 됐습니다. 왠 어마어마한 짐이냐구요? 그 날 저희 가족이 들고 온 짐 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강화도 화문석 대형, 나무 돗자리 대형, 미국에서 쓰던 가전제품들을 프랑스에서 쓰기 위한 트랜지스터 대형과 소형, 쌀 20KG, 국수 10KG, 라면 두상자, 각종 양념-이민 필수용품이라고도 불리지요-고추장, 된장, 간장, 고추가루, 깨가루, 쌈장, 미역, 다시마, 마른멸치, 김, 그 외 남편 넥타이 30개, 손수건, 양말, 수건, 각종 청소용 도구들, 일일히 나열할 수 없는 한국식 장신구들, 자잘한 결혼선물들...

공항에서 제 남편을 처음 보자마자 제 엄마, '너무 늙었잖아' 하며 우십니다. 이럴땐 못 알아듣느게 다행입니다. 아무리 말 안 통하는 사위라지만 첫 대면에 너무 늙었잖아 하며 장모가 울어 보십시요. 상처 받습니다. 제 남편이 저보다 8살위이긴 합니다만 당신 딸이 서른을 넘기는 건 생각치 않으신 거지요. 남편이 어머니 왜 우셔? 하고 묻습니다. 어엉, 그사이 내가 좀 말랐대...하고 말았지요.

결혼식 하루 전에야 양가 상견례를 했습니다. 시아버지에게는 한국 식구들 양 볼에 뽀뽀해서 놀래키지 마시라고 신신 당부해 놓았구요. 남자에겐 악수, 여자에겐 목인사, 한참 연습하셨지요. 시부모님댁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데 영어에 불어에 한국말이 다 섞여 정신없더군요. 통역에 통역을 거치니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했구요.

시청에선 불어를 못 알아듣는 저를 위해 저희를 만나게 한 주범인 남편의 형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구요, 결혼식 중간에 저희 가족들이 무반주로 불러 준 축가는 참석했던 사람들이 두고 두고 얘기할 만큼 감동적이었답니다.

결혼식 저녁 식사 테이블엔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저희 가족이 들고 온 젓가락 세트가 선물로 함께 놓였구요. 식사후엔 한 춤 추는 제 남동생을 따라 다들 테크노를 추었지요. 저희 아빤 다시 마이크를 잡고 아빠의 18번 '밤안개 휘날리는 항구, 목 메여 우는 쌍고동-'을 부르셨구요. 프랑스 시아버지와 부르스를 땡기고(?) 난 저희 엄만 잘난 딸 덕분에 별 걸 다 해본다 하시더군요.

결혼식을 치르고 온 가족이 빠리로 출발했습니다. 저희 시아버진 제 가족과 헤어질 때 식구들마다 기어이 양 볼에 뽀뽀하셨구요. 저희 집에선 스위스와 독일이 오히려 빠리보다 가깝습니다. 미니버스로 6시간 꼬박 걸리더군요(승용차로는 4시간이면 갑니다). 빠리에서의 이틀은 이 애물단지 미니버스의 높이가 일반 주차장 높이보다 높은데다 악명높은 '빠리지엥' 사이로 운전하는 제 남편의 진땀을 쏙 뺏답니다. 빠리의 세느강, 개선문,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 루브르박물관을 "비 오는 날!", "미니버스로!", "단 하루에!" 다 도는 기적은 아마 저희 한국살람의 불굴의 의지-사진을 찍어야 한다는-가 아니었다면 못 이뤘을 겁니다.

빠리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시 우리의 흰색 미니버스로 출발공항인 독일로 향합니다. 꼬박 여덟시간이 걸리데요. 그렇게 도착한 프랑크푸르트는 주차 공간도 찾기 수월했고 마침 그 곳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빠리에 비해 더 편안하더군요. 그 독일 친구가 안내해 준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사과주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푹 삶은 족발, 슈크르트로 거나한 저녁도 먹고 다음날 천천히 시내관광을 할 여유도 있었구요.

가족을 다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텅 빈 미니버스를 보니 얼마나 허탈하던지요. 지금도 흰색 미니버스를 보면 좌충우돌 결혼식 얘기를 하게 되지요.

저희에겐 너무나 맛있는 갓 구워낸 프랑스 정통 바게트를 맛 본 저희 엄마는 '좀 부드러운 빵 좀 먹자' 하셨구요, 프랑스에서 먹었던 고추장이 너무 맛있어서 똑같은 걸 샀더니 그 맛이 안 나더라고도 하더군요. 남동생과 오빠가 싸우면서 먹었던 마른 멸치와 간장은 똑같이 상에 냈더니 손도 안 대더라나요. 저 준다고 무겁게 들고 와서는 다 먹고 가셨답니다.

지금은 저희 부모님 제 남편 많이 아끼시지요. 참 착하게 생겼거든요. 제가 반한 것도 남편의 선한 눈이었구요. 일전에 한국갔을땐 제 아빠가 결혼식 식순에 표창장 증정 시간이 있었어야 했는데 하시더군요. 성질 더러운(?) 딸 데리고 살아주는게 고마워서 상을 줘야 한다나요? 그러는 아빠나 거기에 맞장구치는 남편이나..거 참.

그럼 또.


** 잼있어 하시면 계속올릴계획입니다....그럼^^

Etranger
2003-01-11 06:23:23
2022 번 읽음
  총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여운관 '03.1.11 10:35 AM 신고
    계속... &^^ ↓댓글에댓글
  2. 2. 김도성 '03.1.11 11:01 AM 신고
    저두 한표 ↓댓글에댓글
  3. 3. 김형숙 '03.1.15 12:26 AM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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