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프랑스 남편과 사는 얘기 6
아무리 비가 많다는 유럽이지만 요즘은 해 볼 날이 드물군요. 매일같이 비가 추적추적 오니 마음도 심난해 집니다. 남편은 늘 저에게 왜 여자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걱정하냐고 합니다. 게다가 저는 한술 더 떠서 유난히 생각이 많거든요. 뭐 예를 들자면,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한국 국적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아직 애기 없습니다), 남자면 18세인가 20세에서 국적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던데(애기가 있어도 20년 후의 일입니다), 한국갔다가 군대 끌려가는건 아닌가(그 사이 통일이 되서 병역의무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이중국적을 안 받아들일까(간단히 답하기 아주 까다로운 사항입니다), 어쨌든 포기할 국적을 처음부터 뭐하러 주나(뭐 내가 국적 주고 말고 합니까?) 등등...
듣고 있던 남편이 네가 뭐 호당이냐? 하더군요.
-누구?
-호르르당!
-그게 누구야?
-호당도 몰라? 몰라. 왜 있잖아, 생각하는 사람 동상 만든 사람!
-아! 로뎅!
-호당이라니까!
한글의 "ㄹ"과 "ㅎ" 발음과 영어와 불어의 "R"발음은 저희에겐 영원한 숙제입니다.
제 시부모님이 영원히 발음못할 제 오빠의 이름은 "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물으십니다. 오빠 이름이 뭐라고? -"현"이요. 이후엔 왠 말 울음소리가 합창으로 들립니다. 남편과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발음하는 "현"은 거의 "크르릉"에 가깝습니다.
늦게 본 막내 며느리 심기 건드리기가 새로운 취미인 저희 시아버지의 급습입니다.
-한국은 인구가 얼마나 되나?
허걱! 초등학교때 4천만이었으니까 그사이 좀 늘었겠지..순간 머리가 돌아 갑니다.
-5천만 정도 되요.
-그 쪼만한 나라에 그렇게나 많아?
자존심 상하는 순간입니다.
-나라는 작아도 컴퓨터나 첨단 기술에 종사하는 전문인력 인구가 많지요.
저희 시부모님 컴맹입니다. 컴퓨터 얘기나오면 일단 기가 죽습니다.
-그럼 (그 작은 나라에서! 그 많은 인구가
잘때 층층히 자나? 아님 켜켜히 자나?
옆에서 듣고 있던 시어머니와 제 남편, 뒤집어 집니다. 웃음을 채 거두지 못한 제 남편의 한마디에 저의 시어머니, 거의 기절하시더군요. "저 결혼식때 한국가족들 왔을때 봤어요! 켜켜히 자요!" 제 남편, 좌우지간 도움이 안됩니다.
-그럼 북한은 인구가?
헉! 두번째 기습! 도무지 감이 안 옵니다.
-글쎄요. 같은 한국이라도 북한은 워낙 폐쇄되어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럼 일본은?
워낙 숫자에 둔한 저입니다만 뭐든 일본보다 못할 건 없다는 생각에-
-글쎄요, 한국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시아버지, 눈 올라갑니다.
-아니지, 많아도 한참 많지.
양 옆의 남편과 시어머니 쳐다보시지만 역시 답을 모르는 두 사람, 딴청 부립니다.
이 인구수 질문은 다른 친구들 만날 때도 빠지지 않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을 뒤졌지요. 2002년 현재 남한은 4천 8백만, 북한은 2천 3백만입니다. 일본은 1억 3천만 정도로 중국, 인도, 미국과 함께 세계 10대 인구 대국에 들더군요.
비 탓인지 저녁엔 홍합이나 끓여 먹을까 싶어 수퍼엘 갔더니 석화(껍질굴)도 있더군요. 제 몫으로만 12개 샀습니다. 저희 아빠가 워낙 좋아시던 거라 아빠 생각도 나구요. 프랑스에선 6개 단위로 석화를 팝니다. 6개, 12개, 18개...대개 1인분은 6개에서 12개를 넘지 않지요. 제 아빠에게 12개 드시라고 드리면 아마 장난하냐고 하실 겁니다. 한국에서 저희 가족은 박스로 먹습니다.
처음 프랑스에서 석화를 사는데 얼마나 줄까 하길래 대충 20개 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더군요. 근사치인 18개 주데요. 늘 열린 석화만 봐 왔던지라 사면 그냥 열리는 건 줄 알았습니다. 열기 정말 힘들더군요. 이걸 깰 수도 없고 열리진 않고 비싼 돈 주고 사왔으니 먹긴 먹어야 겠고, 비상수단-친정 엄마에게 전화했지요. 한국시간 새벽 4시에 굴 못 열겠다고 프랑스에서 전화한 딸에게 저희 엄만 누가 한여름에 굴 먹는다더냐, 무슨 놈의 시장에서 굴도 안 열어주고 팔어, 등등 일장 훈계를 늘어 놓으신 후 '정 못 열겠으면 뜨거운 물 부어!' 하시더군요. 뜨거운 물 부으니 열리긴 열렸는데 미적지근해서 6개 더 못 먹고 다 버렸지요.
지금은 껍질굴 전용 칼을 써서 굴의 틈을 찾아 잘 엽니다만 그래도 힘들어서 12개 이상은 안 사게 됩니다. 희안하게도 그리운 한국음식중 하나가 일식집의 회초밥입니다. 뜨거운 밥에 잘게 채썬 야채와 싱싱한 회가 얹힌 회초밥을 초고추장에 싹싹 비벼 먹으면! 살살 도는 깻잎 향은 어떻구요!
활어를 싸게 살 수 있는 한국이 문득 문득 생각나네요. 그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