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것이 있다면 털어버리면 되는 거고, 힘든 일이 있다면 해결하면 되는 거지.
대체 니 그 얼굴은 뭐냐?
세상 고민은 꼭 지 혼자 짊어진 양, 그렇게 음침한 얼굴 할 필요 없어.
너도 결국엔 나랑 똑같은 인간이야. 알아?"
"그래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잔뜩 억눌린 그녀의 목소리다.
화가 날 때면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을 더 창백하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던 그녀..
작은 주먹을 꼭 쥐고 그 주먹으로 나를 한 대 치기라도 할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래서라니?"
이미 나의 말투에서는 힘이 빠져 있다.
그녀의 저 분노가 무엇으로 변할지 잘 알고 있음이다.
이제 너는 곧 자리를 털고 일어서겠지.
내게 단 한 줄기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냥 가버리겠지.
"잘난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랑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말야."
그녀를 만난것은....어쩌고로 시작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적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영혼을 바쳐 사랑했고, 나의 그영혼을 마음껏 희롱하다가 사라져버린
한 작고 여린, 그러나 지독히도 잔인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자니 결국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한 작고 어두운 카페에서였다.
멍하니 카페 밖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한 개피 입에 물고 무언가를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녀의 옆모습은
예쁠 것도, 특별히 눈에 띌것도 없었고,
사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쭉 뻗어있는 그녀의 다리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야, 뭘 그렇게 넋을 잃고 보냐?"
함께 일하는 형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 바람에 나는 그녀의 한쪽 다리가 사뿐히 들려 반대편 다리 위로 얹히는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에이, 참..."
"뭐야 임마. 뭔데 그래?"
"저기, 쟤 말야."
"누구, 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형은 들고 있던 메뉴판으로 내 머리를 퍽 소리가 나게 쳤다.
"어이구, 병신....꼴값하고 있네."
"뭐어?"
안 그래도 메뉴판에 맞은 머리 때문에 화가 나려는 찰나에 얻어들은 욕의 위력이란.
다른 때라면 꼼짝도 못했을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형은 나를 끌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너 쟤가 누군지 알아?"
"알게 뭐야. 뭐 이뻐서 이러는 줄 알아? 난 그냥..."
"쟤가 바로 그 유명한 한희우다 임마."
".....한...희우?"
한희우...
한 때 내가 일하는 이 카페를 드나드는 고객들의 절반 이상이 다니는
한인대의 뭇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전설이 되어버린 여자.
축제 때 자기 친구에게 찝적이던 타학교 남학생을 돌려차기로 넉다운 시키고,
다음날 그 녀석이 다니는 학교를 알아내 거기까지 찾아갔었다던가.
BMW Z3를 몰고 다니고,
교수 앞에서도 담배를 꼬나물고 히히덕거린다는 여자.
무엇보다도, 3학년인 지금까지 한 번도 과 수석을 놓쳐본적이 없다는....괴물..
"쟤,쟤가 여긴 왜 온거야?"
"아마조네스도 커피는 마시나보지. 너 괜히 쟤한테 껄떡대지 마라. 다친다."
그러나 그 때 이미,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정복욕에 사로잡힌 수컷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