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엉뚱한 사람의 이동전화로 연결됐다. 수백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의 컴퓨터가 고객 비밀번호 정보를 갱신하면서 일부를 누락시켰다. 사용하지도 않은 전화요금이 청구됐다.…
업체들은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으며, 이용자가 실수를 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도 “기술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대기업 김아무개 차장은 지난 6월19일 오후 3시22분 사무실(527-XXXX)에서 부인(011-9775-XXXX)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이 안돼 잠시 뒤 `재다이얼' 버튼을 눌러 통화했다.
같은 시간, 김 차장 부인은 발신자 전화번호를 통해 남편 사무실에서 온 전화임을 확인하고 받았으나 낮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남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부인은 “방금 전 당신 자리에서 전화 건 여자가 누구냐”고 따졌다.
김 차장이 해명했으나, 부인은 단말기에 남겨진 발신자 전화번호를 들어 계속 몰아부쳤다. 김 차장은 사무실 전화와 부인 이동전화의 통화 내역을 조회했으나 결과는, 김 차장 사무실 전화에서 부인의 이동전화로 2번 걸고, 부인의 이동전화 역시 남편 사무실 전화에서 2번 받은 것밖에 없는 것으로 나왔다.
같은 상황이 7월25일 저녁 8시4분 또 발생했다. 김 차장이 사무실에서 부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성아무개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김 차장 부인 역시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임을 확인하고 받았는데, 서아무개란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같은 시간 서씨는 사무실 전화(549-XXXX)로 동료 성씨 휴대폰(011-9756-XXXX)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다른 여성(김 차장 부인)이 나왔다. 성씨 역시 발신자 전화번호를 통해 사무실에 있는 서씨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알고 받았으나, 엉뚱한 사람(김 차장)이 “여보세요”라고 했다.
4명의 통화 내역을 모두 조회한 결과 또한 김 차장은 부인에게, 서씨는 성씨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것으로 나왔다.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4명이 함께 경험했다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것 같으나 원인을 찾기 위해 재현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아마도 한국통신에서 신호를 잘못 넘겨준 것 같다”고 책임을 한통쪽으로 떼밀었다. 반면 한통 관계자는 “에스케이텔레콤의 이동전화망 구간에서 신호가 뒤섞였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새롬기술의 인터넷 쪽지 서비스 `스마츠메신저' 이용자 김병인(38·서울 마포구 공덕동)씨는 최근 비밀번호를 맞게 입력해도 계속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메시지가 나와, 회사 일에 차질을 빚는 경험을 했다.
그는 새롬기술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실을 설명하자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을 거라'는 소리만 들었다. 사용자이름(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접속해보도록 한 뒤에야,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란다. 또 잠시 뒤 전화를 걸어와 “`서비스 비밀번호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면서 회원님 것만 빼먹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나로통신 초고속인터넷(ADSL) 가입자 유상해(37·서울 마포구 도화동)씨는 지난 6월1일 요금 할인 혜택이 큰 `장기 이용 계약'을 신청했다. 그러나 8월치 요금이 그대로 청구됐다. 전화로 문의하자 하나로쪽은 “신청을 안했을 것”이라고 하다가, 신청한 날짜까지 제시하자 “직원이 신청을 받아놓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을 깜빡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고객님 한 명 것만 누락됐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전화나 인터넷 이용자들은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쓰지도 않은 전화요금이 청구됐다는 주장도 많다. 이동전화 요금인하 운동 사이트(myhandphone.net)에는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이를 모두 이용자 실수로 돌리고 있다. “비밀번호 업데이트는 컴퓨터로 일괄 처리하는데 어떻게 한 명 것만 빼먹을 수 있느냐”, “컴퓨터로 계산하는데 사용하지도 않은 요금을 청구할 수 있겠느냐”고만 되풀이 한다. 그러다가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를 제시하면 관련된 다른 업체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보상을 약속하며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한다.
첨단을 자랑하던 미국 항공보안망이 뚫린 것에서도 보듯, 첨단기술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교환기와 컴퓨터 등도 운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류 함정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