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협회(IPI)가 한국을 언론자유 탄압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 택한 데 대해 언론계와 정치권 등에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하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신문과 방송’ 10월호에 기고한 < “조중동은 대통령 괴롭히는데 쾌감 느끼나”/한국언론 왜 고뇌의 몸부림 없나-IPI 결의안 채택에 부쳐> 제하 기고를 통 해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에 불만을 품은 언론기업 사주들이 동업자들 모임에서 자기들의 일방적 주장을 채택하게 해놓고 이러한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국제적으로 국가적 망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정부의 언론탄압 주장과 관련하여 많은 시사를 주는 장행훈씨의 글을 요약해 싣는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이 서툰 점이 많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그러나 핵심은 이 정부가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과연 언론탄압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제 권력기관이 돼버린 대신문기업들의 특권을 제한하면 그것 이 곧 언론탄압이 되는 것인가? 그러면 한국 국민들은 자기들이 보는 신문에 대해서 정부의 탄압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 한 번 살펴보자.
최근 대한매일은 창간 2만호 기념 여론조사에서 언론자유가 얼마나 실현됐다고 보느 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국민의 49%가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며 부정적인 응답은 28.4 %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 국민 중에서 언론자유가 없다고 보는 사람은 전체 의 3분의 1도 안 된다. 간단히 말해서 대다수 국민은 언론탄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 보도의 정확성을 높이 평가하는 뉴욕타임스도 이 점에서는 의견이 다르지 않다. 이 신문의 하워드 프렌치 기자가 쓴 지난 5월 31 일자 기사의 요지를 보자. “최근 수주일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거의 가차없는 나쁜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과 언론 사이에는 밀월은 전혀 없었다.
이곳에는 대통령에 대해서 두려움 같 은 것은 전혀 없다. 국민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 프렌치 특파원이 자기 눈으로 보고 쓴 한국의 언론상황이다. 그렇다면 IPI는 어떤 근거로 한국정부가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는지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못한다면 IPI는 하나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한국내의 갈등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 가운데 어느 한쪽만의 주장을 듣고 신중하지 못하게 다른 한쪽에 큰 타격을 줄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IPI의 명예를 위해서도 중대한 실수 가 아닐 수 없다. 또 이러한 결의안을 채택하게 한 한국의 거대신문 대표들도 그 책 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대한매일 조사에서 국민의 78.9%가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도 신문에 대한 국민의 불신 및 불만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신문의 신뢰도면에서 보면 지 금 한국신문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이 느끼는 인상은 적어도 시장 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대신문들은 말 실수가 많고 아직 국정운영에 서툰 새 정 권, 감히 언론권력에 겁 없이 대드는 대통령을 괴롭히는 데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당면한 한국신문의 문제는 조·중·동의 노무현 새 대통령에 대한 증오 보도에 있다 고 본다.
그것이 세 신문의 독자층인 보수세력의 여론을 반영한 것이든 보수신문들 과 대기업의 상호간의 타산적 경·언(經言)유착에 원인이 있든 또는 특정 신문과 노 무현 대통령과의 원한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든 간에 적어도 이 정권 출범 이후의 세 신문의 보도태도에서는 증오의 냄새가 풍긴다. 꼬투리 잡기 보도 경향도 부인하기 어렵다.
신문이 특정 정치인을 미워하는 것은 바 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책임 있는 언론으로서 사실의 정확성과 공정성, 보도의 균 형을 갖춘 보도를 한다면 동기만을 가지고 언론을 비난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가 보 아도 기사에 감정이 섞여 있고 편파적일 때 그것은 언론의 정도를 일탈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접근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그가 시정해야 할 점도 많다. 그 러나 지금 국민의 관심은 노무현과 조·중·동 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있지 않다 . 언론의 자성은 노무현이 나오기 전에 있었어야 할 일이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 다. 신문들이 고질인 권력남용과 오만을 반성하고 일찍 자성의 기회를 가졌더라면 오늘의 노무현-보수언론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IPI 결의안에 들떠 자 성의 때를 놓치지 말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