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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사회] 주민등록번호 사절합니다

 


[사회]"주민등록번호 사절합니다"



 
 2000년 군대에서 제대한 뒤 본격적인 인터넷 생활을 시작한 김모씨(29)는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이지스(www.egis.co.kr)에 접속, 지금까지 자신이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다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사용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어느 게임사이트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사용한 지 4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김씨였다. 그는 비밀번호를 알아내 회원탈퇴를 했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둠 속의 누군가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가지고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불안했다.


 


전국에는 수많은 '김씨'가 있다. 문제는 '김씨'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00년 2,035건에 불과했던 개인정보 침해상담신고 접수건수는 2001년 1만1천164건, 2002년 1만7천956건, 2003년 2만1천585건으로 치솟았고, 올해에는 7월 현재 1만4천18건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 사이트 이비에스아이 등 가세


 


이런 상황에 자발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기로 정책을 변경한 사이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을 특정하고,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를 모아 가공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되지 않으면 그만큼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이 줄어들게 된다.


 


국내 대부분의 사이트는 회원가입할 때 실명인증을 받거나, 혹은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게 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과 '엠에스엔' 등 몇개 사이트만 주민등록번호를 적지 않고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이 대열에 인터넷 수능시험 강의사이트 '이비에스아이(www.ebsi.co.kr)' 등이 가세했다.


 


이비에스아이 측이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은 역설적으로 개인정보 사고 때문이었다. 지난 7월 가입회원 260명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전자우편과 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대량유출되어 안병영 교육부총리 등이 고발당하는 등 큰 논란이 됐다. 이에 대책으로 나온 것이 주민등록번호를 아예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은 지 한 달 남짓 지난 지금, 사이트 관계자는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최근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 인터넷 커뮤니티 비시파크(www. bcpark.net)도 마찬가지다. 이 사이트의 박병철 대표는 "2년 전 사이트 문을 열었을 때는 다른 곳에서 다 받고 있었고, 당시에는 실명회원의 수가 많아야 사이트가 인정받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사이트를 사고 파는데 실명회원의 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박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실제로 해보니까 실명 가입자 수보다는 실제 사용자의 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정보가 아니라 메일주소와 아이디, 패스워드 뿐이었다"고 말했다. 필요한 경우라면 성인인증을 하면 돼 주민등록번호가 사이트 운영에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사이트 운영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왜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것일까. 많은 인터넷 업계가 주장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게시판에서 명예훼손성 글을 줄이고,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떠도는 타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이용해 회원가입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이들 사이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 사이트 관계자들은 "어려움은 있지만 이는 기술적인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 관계자의 말은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 관계자는 "나이와 성별, 출신지역 등 많은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는 사이트의 계량화된 데이터에 정확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을 특정하기 때문에 사이트가 가진 데이터에 신뢰성을 가져오고, 이를 바탕으로 대상을 정해 효과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비에스아이 관계자도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따진다면 이번 조치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치명적"이라면서도 "공익 차원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등록번호 삭제 결정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 공익을 앞세우게 됐다는 얘기다.


 


정부 올해 8월부터 정책적 뒷받침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는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에 암암리에 거래되기도 한다. 최근 경찰에 붙잡힌 일당은 6백만명이 넘는 개인의 신상정보를 거래해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에서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장본인은 이동통신사 판매대행업체의 버젓한 직원이었지만, 이런 사정은 인터넷 업계 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중소규모 인터넷 사이트 관계자는 "얼마 전 아는 사람을 통해서 회원의 실명정보 등 개인정보를 팔라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회원수를 감안해 제시받은 가격대가 억대였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에게 제안했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름을 말하면 금방 알 만한 큰 회사와도 이런 거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만약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면 넘어갈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주민등록번호는 그 자체로도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한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 군데로 모으는 역할도 한다. 이런 까닭에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인터넷 사이트의 움직임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정부도 가세할 전망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지난 3월 '민간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적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만들어 이르면 올해 8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며 "청소년 보호와 명예훼손, 사이버상 범죄 등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보완하여 이르면 11월 중에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작용을 막을 대책이 복잡해서 늦어진 것"이라며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정보통신부의 기본방침"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주민등록번호 노출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음씨는 "일단 인터넷 사이트를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목적과 삭제할 의향을 물은 뒤 결과에 따라 반환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이외에 인터넷 상에서 떠돌고 있는 개인정보를 찾아 본인에게 돌려준다거나 실명과 주민번호를 악용하는 사례를 찾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운동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 측과 이용자, 정부 등 삼박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면 전국의 수많은 '김씨'가 주민등록번호 악용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것도 그리 먼 일은 아닐 것이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



 
뉴스메이커 598호 




2004-11-18 12:21:28
2005 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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