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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군 쿠테타 박정희 리더십은 친일파 정신에서 나왔다.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켜 나라를 먹어삼킨뒤로 경제살리기라는 그시절의 배고픔 아픔을 이용 수십년 대통령 해처먹었으며, 그기간에 군인이 힘없는 국민을 총칼로 죽여서가며 누굴위해 경제를 이르켯다는 말인가요.

또한, 박정희가 악질적인 친일파인것을 긍정하는 이유는 박정희가 쿠테타하여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국민과 나라를 생각했다면 과감하게 친일파를 처단했어야 하고. 수십년 해처먹은 기간동안 진정 민주주의를 바랬다면 독재의 인사들이 부를 획득하는 과정을 뻔이 보는상황에서 과감하게 그들을 처단했어야 했조.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

박정희가 비록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기초자금또한 국민이 일제시대의 피해보상금을 가로체고 일제시대의 국가적인 일본의 반성요구또한 가로채므로써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했다는점.

박정희가 이룩한건 친일과 독재자들의 부를 획득한것일뿐 진정 이룩한게 무엇인가....

고속도로? 경제? 이런건 다른나라는 몰라도 대한민국 아니 단군 후손들은 끈기와 인내 그리고 자손을 위한 노력을 다른나라보다 휠신 우월하기 때문에 오히려 박정희가 아니였다면 더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 장담 하조.

이와같이 쿠테타를 2번격은 나라인 대한민국은 그들이 수십년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가며 쌓은 거품이 김영삼 대통령시절 비로써 터지게 되었다는 것을 과연 국민들이 모를리가요.

이런 독재와 이기적인 군사반란 쿠테타를 저질러 친일,독재인사들에 의해 나라를 점령한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큰 골치거리에 불가하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면 당연 국민의 생명을 제일 첫번재로 여겨야하는것은 기본이라는 사실을...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국민의 생명을 소훨이 하는 것은 대통령에 자질에 큰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요세 친일,독재의 부를 만끽한 사람들이 요세 박정희를 옹오하는것은 당연하다 여겨지며 적어도 대한민국의 설량한 국민은 친일,독제등 특히 박정희는 좋아할사람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겁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그들의 거품세력인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아직도 반성은 커녕 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라를 위해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 반성한다면 과거의 잘못에대한 처벌은 감해질것이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런글썻다가 노무현 대통령 물러나고 위의 그들세력에 당이 다시 나라를 휘어잡는다면 이런글 쓰는 사람들은 쥐도세도 모르게 없어질게 분명한데...심히 걱정되는군요.

그래도 나라를 위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처벌해야되고 나라를 위해 대화와 타협은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너무나만은 애국자들과 순수한마음으로 나라를 위한 사람들이 저들에 의해 희생됬으며 이들을 모두 나라에서는 그만한 대우를 당연히 해줘야하고 이런짓을 저지른 나쁜놈들을 1명도 빼놓지말고 다 잡아 처벌해야 할것입니다.

또한, 나를 비롯한 설량한 대한민국 국민들께선 이런일들을 잊어버릴게 아니라 대대손손 전하여 다시는 이런 나쁜 인물들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 못하도록 해야할것입니다.

2006-02-23 10:20:28
1624 번 읽음
  총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청솔 '06.2.23 11:36 AM 신고
    하하,,글은 잘쓰셨는데, 내용은 틀린곳이 많아요!
    윗부분에 한가지만, "그기간에 4.19등 으로 군인이 힘없는 국민을 총칼로
    죽여서가며 누굴위해 경제를 이르켯다는 말인가요."이게 무슨소린가?

    4.19는 자유당의 독재를위한 부정선거 규탄등 학생이 앞장선 혁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글을 쓸때는 역사는 정확히 알고 써야합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으함™ '06.2.23 1:19 PM 신고
      감사합니다. 해당부분 수정했습니다. ^^
  2. 2. mupa '06.2.23 12:51 PM 신고
    ㅎ
    친일파도 싫고 친북주사파도 싫소 ↓댓글에댓글
  3. 3. 브랜단 '06.2.23 2:18 PM 신고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하죠.
    평화를 위해 무사태평하다면
    지금과 같은 시기가 될 겁니다.
    사회곳곳 여기저기 간첩들이 민주인사로 둔갑해서
    들쑤시는 일 말이죠. ↓댓글에댓글
  4. 4. 가람뫼 '06.2.23 2:44 PM 신고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누구나 자기주관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세상에 타진해 본다는건
    지금처럼 빛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할 나위없는 참 행복한 일이겠지요
    글 쓰신분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 글이 일기가 아닌이상 세상에 보여지고 남들이 이글을 보고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지신다면 글을 써놓고
    한번쯤 정리해 보시는 여유도 좀 좋지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이름부터 어느 채팅방에 나오는 대화명 같기도하고 오타인지 일부러 그렇게 쓰셨는지 채팅용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맞춤법 틀리고
    문장을 이어나가는게 매끄럽지 못해 무슨 말씀이신지도 잘 모르겠고......
    후우!!!!!!!!!!!
    글을 가지고 태클을 거는게 아니옵니다 글들은 전부 맞는말을 쓰신것 같아요
    하지만 이 글이
    세상사람들이 보고있다는
    그래서 좀더 정리하고 한자 한자 신경쓰실줄아시는 분이셨으면 하는
    아쉬운 바램으로 적었습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으함™ '06.2.23 6:40 PM 신고
      늘듣던 말씀 감사드립니다. ^^
      언젠간 좋아지겠조 ^^
  5. 5. 김서방 '06.2.24 2:11 PM 신고
    하하하...글은 잘쓰셨는데여..
    하하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댓글에댓글
    • ㄴ 1. 으함™ '06.2.25 3:31 AM 신고
      글 잘쓰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글내용을 자신에 입맛에 맞으면 좋은글이 되는것이고 자신에 입맛에 맞지않으면 말씀하시는것처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겁니다.

      그만큼 답답한 과거의 좋지않은 인물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시기 당에대해 답답한 글을 올린것이지요.

      어짜피 논문처럼 잘써진 이들에 만행에 대한 글들은 너무나 많고 제글이 그글들과 나란이 하기엔 어렵기 때문에 제 견해만 이야기 한것이지요.
    • ㄴ 2. 김서방 '06.2.25 9:44 PM 신고
      으함씨`^^ 글은 잘정리하고 쓰는게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고 책도 많이 읽었다면 기본적으로
      글을 잘쓰는데는 무리가 없습니다..국어의 받침법이나 가나라다는 무작위 나열돼는것이 아닙니다..글로써 전달하는 내용이 엉망이라면 무엇을 기대 하겠습니까? 각설 하고여..

      답답한 과거의 좋지 않은 인물이 누구인가여?
      왜 안좋은가여? 무엇이 문제인가여? 현정권의 색깔론을 본격적으로
      논해볼참인가여? 논리적으로 대응할 자신있으신가여?

      님..무작정 어케하든 독재로 몰아갈려고 4.19조차 헷갈리시는 분이
      무엇을 논하시겟다는 겁니까?

      얼마든지 캐보세여.. 과거는 캘수록 그분은 빛납니다..
      님 1회 라고 적으셨는데..본인은 응수대로 수십회까지 대응해드리죠.
      이상입니다..ㅎㅎ
  6. 6. 참잘했어요 '06.2.26 12:27 AM 신고
    독재나 기타 나쁜 점은 다 빼고 반민족적인 한일국교정상화 하나만으로도
    박정희가 싫어여. 쪽발덜이 북한넘덜을 무서워하고 중국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뭔지 아시나여? 글고 중국넘덜이 쪽발덜에게 당당한 이유는 멀까여? 한국이 쪽발덜에게 아무리 외쳐봐야 넘덜은 우습게 알고 웬 멍멍이가 짖냐는 듯이 들은 척도 안하지여. 왜 그럴까여? 바로 박정희가 쪽발덜에게 받아먹은 무상 2억$ 때문이라네여. 경제개발에 썼든 머에 썼든 받은 건 받은 거에여. 강도질한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고 해서 강도죄가 없어지나여? 정통성 없는 불법정권의 약점 때문에 미국의 압력을 받아서 민족이 겪은 40여년의 고통과 분노를 단돈2억$에 팔아먹었지여. 그것도 주기 싫어하는 넘덜에게 억지로 달라고 떼를 써서 받아내고 나라꼴을 우습게 만들었다네여 ↓댓글에댓글
  7. 7. 김서방 '06.2.26 1:34 AM 신고
    참잘햇어여님..일부글입니다만..
    잘지내시죠? 참잘했어여님? 퍼온글이지만 너무길어서 핵심만 일부글로
    올려 드립니다..한일문서가 공개돼고 내역이 나와서 평가가 이제 새로워지는 시기입니다..그전에는 문서공개가 안돼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한 배상 자금은 얼마였나?

    한·일회담 14년, 이승만·장면 정권에서 9년간 협상했고, 박정희 정권 5년 만에 타결을 보았다. 타결액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 상업차관 3억 달러, 총 8억 달러였다. 정부 부문 청구액 5억 달러는 66년부터 75년까지 10년에 걸쳐 나눠 받되, 매년 무상 3천만 달러, 유상 2천만 달러 총 5천만 달러 한도 내에서 양국 정부의 협의에 의해 받기로 했다.
    유상 2억 달러에 대해서는 산업시설과 기계류 등 공공차관의 형태로 7년 거치 13년 분할 상환하되 금리는 연 3.5%가 적용됐다. 이에 대해서는 마치 선진국들의 은행이 기업 프로젝트에 자금을 빌려준 후부터 자금 사용 과정을 감시하듯이 일본 역시 빌려주는 돈을 받지 못할까 봐 사용과정을 감시했다.

    박정희는 이 돈을 어디에 썼나?

    1976년 당시 경제기획원 발간 '청구권 자금 백서'에 따르면 전체 청구권 자금의 55.6%가 포항제철 건설 등 광공업 투자에 쓰였다. 유상 2억 달러는 대부분 포항제철 등 기간산업과 경부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확충에 사용됐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도 전체 자금의 18%를 투입했다.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2천1백61만 달러), 경부고속도로 건설(6백89만 달러), 상수도 확장(4백9만 달러), 한강철교 복구(89만 달러), 영동화력발전소 건설(1백78만 달러), 철도시설 개선(2천27만 달러) 등이 이때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농어민에게 돌아간 자금은 많지 않았다. 농림업에 7.8%, 수산업에 5.4% 등 농림어업에 총 13.2%를 배정했다.

    이중 포항종합제철 건설에만 무상자금 3천80만 달러와 유상자금 8천8백68만 달러 등 총 1억1천9백48만 달러를 몰아줬다. 전체 청구권 자금의 23.9%에 이른다. 광공업용으로 도입된 원자재 1억3천2백82만 달러도 대부분 포철을 짓고 공장을 돌리는 데 썼다. 원자재까지 합치면 전체 청구권 자금의 절반 이상을 포철에 투자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썼나?

    일본 정부로부터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은 나라는 아시아 5개국.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이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00년에 펴낸 ‘대일 청구권 자금의 활용사례 연구’에서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는 이들 5개국 중에서 한국이 청구자금을 최고로 잘 사용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상자금은 필리핀이 5억5천만 달러로 제일 많았고, 한국이 3억 달러, 인도네시아 2억2천3백8만 달러, 미얀마 2억 달러, 베트남 3천9백만 달러 순이었다. 일본이 차관 형태로 지원하는 유상자금과 민간이 자금을 지원하는 상업차관을 합칠 경우 한국과 필리핀이 각각 8억 달러로 제일 많았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의 개인별장이 있는 곳에 호텔을 짓고, 부유층을 위한 백화점을 지었다. 청구권 자금의 효율성이 가장 낮은 국가였다.
    필리핀은 항만 및 도로건설 등에 사용했지만 당초 댐 건설 및 철도 연장 계획이 계획대로 실시되지 못했다. 대지주와 대자본가 등이 필리핀 정치를 주도하면서 일본의 배상금이 이들의 이권을 채우는 데 활용됐다.

    미얀마는 파괴됐던 철도 및 도로 복구 등에 주력하면서도 당시 총리의 ‘복지국가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사회복지 부문에도 상당액의 자금을 투입했다. 베트남은 전체 자금의 50% 이상을 발전소 및 송전시설에 투입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자금 유출에 대해 엄청난 단속을 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는 군의 공병대 장교들이 대거 파견되어 날림공사와 자재 유출을 감시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청렴한 집단은 그래도 군인들이었다. 포항제철 공사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았다면 자금의 수십%가 유출됐고, 중국의 등소평까지도 그토록 부러워했던 오늘날의 포항제철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특별한 마패를 만들어 주었다. 세도가들이 찾아와 여러 가지 압력을 넣거나 회유를 할 때마다 보여주면서 이권과 청탁을 물리치라는 것이었다. 박태준은 그 마패를 보여주면서 모든 이권과 청탁을 차단했다.

    일본의 소니사는 아키오 모리타가 이룩한 신화였고, 파나소닉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이룩한 신화였다. 박정희 집권 초기에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3배 더 잘 살았지만, 지금은 한국이 이들보다 10∼11배나 더 잘 산다. 이는 순전히 박정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 때문이었다. 이 통계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대한민국은 박정희가 이룩한 신화였다.

    아키오 모리타와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 국민의 신앙이지만 한국의 박정희는 세계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신화를 창조한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국내에서는 온갖 욕을 다 먹는다. 가론 유다 같은 이런 인간들에 대해서는 입에 들어가는 밥숟갈마저 빼내고 싶어진다. ↓댓글에댓글
  8. 8. 으함™ '06.2.27 8:35 AM 신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역사와 수만명의 생명은 희생되도 되는것인가.
    이승만이 9년간 일본과 타협에 성공못한것과 박정희가 5년만에 타협을 성공한것 이차이는 무엇일까요.

    박정희는 이승만 정부를 정상적으로 계승한 정부가 아니라는 점이고. 또한 박정희는 경제라는 명목보다 무엇이든 그대상황에는 미국의 밀가루 제공만으로 무엇이든 할수없었고 돈이 필요했다. 무조건 외상으로 할순없었기 때문이조.

    일본과 타협을 정상적으로 보았고 국가적인 희생보다 국민적 희생에대한 보상처리를 해야했어야 하는데. 박정희는 돈몇푼에 국가,국민의 희생된 돈을 가로체 희생자들에게 배포한것도 아니고 지들멋대로 경제살리는것에 투입되었다.

    그렇다고 이는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순 없는데. 차후에라도 경제가 "새마을운동"등으로 경제가 어느정도 회복되는 수준에서 이전에 배제했던 일제의 희생자들에게 국가적인 배상및 도움을 주었어야 하지만....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사실... 지금까지도 이것때문에 정신대,불벌 노동착취를 당한 사람들에게 너희들 언제죽냐는 식으로 아직도 뚜렷한 대책이없다는 사실...이는 이미 일본에게 푼돈으로 모든걸 박정희가 일본과 채결한 것 때문에 지금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는 것....

    어떻게 아직도 일부 국민이라고 말하는 작자들은 사람의 생명을 우선이 아니라 나라의 존재를 더 위하는 것인데...

    국민이 없다면 나라가 존재할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과거 옛사례를 보아도 이는 독재시대만 양상할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이승만 시절 친일파의 높은 지식만 믿고 정치및 모든 권력에 핵심으로 사용한 대가는 바로 잘아시는 북한이 처들어와도 지들 먼저 도망가려고 국민한테 이야기도 않하여 수만은 희생된 사례도 있고...또 이들은 전쟁끝나자 뭘잘했다고 버젓히 나타났다는 사실...또 그이후 친일파에서 애국자로 둔갑하려고 많은 일들을 해버렸고...그에 대한 진자 애국자들은 빨갱이의 가면을을 쓰고 법적 처형 당했다는 것.

    최근의 문제되는 친일파들이 국립묘지에서 묻혀있고 그 후손들의 제산 돌려받기 소송등...이들이 누굴 믿고 아직도 이러는것일가요.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과연 이런 지들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과연 나라의 중요요직에서 거품만 양산할뿐 진정한 올바른 나라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입증이 IMF로 되었는되도....

    아직도 잘못을 모르고 그들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는데.....

    더 이상 국민을 속이려는 행위는 국민들이 폭팔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 할겁니다.

    경제는 거품폭발로 이미 잘아시것이고 고속도로,포항제철 이게 무슨 큰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어 경제 안정이 되었다곤하지만 그당시 경상도사람이외에 특히 전라도 사람들은 완전 거지만드는 정책으로 실제로 어떤기업이든 이들을 기용하면 불이익이 있었다는 사실...

    정말 박정희가 잘했다고 주장하는 일들은 현대에서 거의 거품으로 바뀌고있고 못한일들만 속속 밝혀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박근혜를 포함한 족속들을 고인이된 애국자들의 목숨과 바꾸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고...

    하루빨리 우리나라가 친일파와 독재자를 청소를 해야만 앞으로 다가올 더큰실현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을 현재까지 용소했지만 거품만 쌓이고 나라엔 여태까지 바왔듯이 더욱 도움이 안되기에 하루발리 청소해야 합니다. ↓댓글에댓글
  9. 9. 으함™ '06.2.27 8:43 AM 신고
    그들은 아직도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데 급급하고 있고, 사회의 모순을 역이용하여 사회를 혼란을 틈타 또다른 사건을 만든다는데 아주 심각하조...

    저를 포함한 설량한 국민들은 현재는 힘든 경제 상황을 격고 있고 이때문에 경험이 없는 박정희 독제 시대를 비유를 무심히 하였지만 결코 국민은 박정희를 진정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역사왜곡 중국,일본만으로 족합니다. 제발 우리까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겠습니다. ↓댓글에댓글
  10. 10. 김서방 '06.2.27 12:03 PM 신고
    무슨말씀이신지여?
    그러니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여?
    그러니까 무조건 박정희대통령 탓이라 이거지여? 박정희대통령 서거하시고
    5번의 대통령을 거치고 있는데도 20여년이 지난는데도 다 박정희 탓이라 이거지여?무조건 박통님 탓이라 이거군여..그럼 모했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님은? 그리고 잘못된역사왜곡과 무슨상관입니까? 박정희업적이나그걸 왜곡한다는건가여? 역사왜곡은 공산주의전매특허아닌가여? 김일성장군의 신화는 진실이다 이거고 박정희는 왜곡이다 이건가여?

    그러니까 요지는 무조건 무조건 좌우장지지 간에 박정희 탓이다 이거군여..
    잘알겠습니다..자나깨나 무조건 박통탓이군여..ㅎㅎ

    리플수가 쩝니다..추천수가 쩝니다..
    아마도 제생각에는 진정영웅으로 생각하시는분들이 대다수일걸로 압니다.
    지금 정치는 누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댓글에댓글
    • ㄴ 1. 김서방 '06.2.27 12:07 PM 신고
      그리고 님주제글여 이거--->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역사와 수만명의 생명은 희생되도 되는것인가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역사와 수만명의 생명이 희생돼다뇨?
      무슨 말씀인가여? 역사와 수만명이 희생됐다니? 무슨 히틀러인가?
      나찌수용소 만들어 가스실밀어넣어 죽연나? 그럼 북한은? 우째 순서가 틀리신듯?....
      박정희역사왜곡과 수만명 죽었다는 데이터좀 ..어이구야..
      수만명이면..대체...억지도 이정도면 할말없습니다..ㅎㅎ
  11. 11. 으함™ '06.2.27 4:23 PM 신고
    과연수만명이 안될가요? 왠 김일성 사상까지 동원하는지...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실미도도 그렇고 이미 알고있는 애국자들의 죄없는 법적 처형, 거기에 죄없은 일제시대의 피해자들의 서러움을 일제시대 모든 잘못을 그까짓 푼돈으로 가로채 자신들 멋대로 사용하고 내버려두어 병이 악화되어 죽은 사람들 독재청산 외치는 민간인들 대모하다 죽은일등과 기타등등 이모든 이들을 합친다면 수만명이 과연! 안될까요...

    억지라고 하는것은 김서방님과 같이 어설픈 친일과 독재자들의 살기위한 말들을 옮겨 말하며 사실인듯 말하는 것이 억지라고 할수 있지요.

    이젠 김일성 사상까지 덥어씌우려는 말까지 서슴찬는 군요. 어처구니없다는...

    잘못된 역사왜곡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요! 친일파가 정확히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은 왜 나라를 버리고 일본에 시민을 자청한 자들이 왜 일본의 만행을 강하게 피난하는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도 1선에서 배터지게 먹고 정치,경제,...등 권력을 가추고 있는지...
    아직도 최근 친일파 후손이 일제시대 일본이 친일파에서 조선인들의 것을 갈취하여 땅을 자기선조의 땅이라 우기며 버젓히 법에 호소 하여 찾아간 일...땅찾자 마자 바로 팔아버리는...

    친일진상규명 법안 추진할때도 딴나라당에서 반대한일등....

    왜 최근까지 이모든일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일차천리로 청산을 못하는 이유를 진정 모르신다는 말인가요.

    반듯이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하조.

    데이타가 존재했으면 이미 희생자들 찾아서 나라에서 제사라도 지넸겠조. 죄없이 처형당한 애국자들도 국립묘지로 이장했겠조!....불과 수십년밖에안되었고 그동안 전쟁도 없었는데도 어디에도 데이타가 완전하게 남아있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조. ↓댓글에댓글
  12. 12. 으함™ '06.2.27 4:43 PM 신고
    박정희가 일본과 협약한 한일협정은 이미 공개되있고. 관련 신문사의 기사중 다음 내용이 되있조..

    그는 3만5000여 쪽에 이르는 한일협정 문서관련 동아일보 기사내용중 일부인 (한편 쿠데타로 집권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한일협상과 1963년 대선을 놓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어업전관수역 범위를 당초 40해리에서 일본 측 요구대로 12해리로 축소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뒤에도 대선에서 어민 표가 감소할 것을 우려해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았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에 전혀 도움되는 내용도 없다는 사실을 아시길 바라며 그들의 잘못된 것은 짧은 글로 말하는 식으로 하지만 예로 (1961년 11월 한일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이던 박정희는 한일협정을 통한 자금으로 어두운 경제를 살리는데 탄력을 받았다.) 이런식으로 하면 그가 한일협정을 뭘 했는지를 모르고, 나라에는 불이익이 없는지?, 피해자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체 경제? 이만큼이니 잘했네 이런식으로 생각을 하기때문이조.... ↓댓글에댓글
  13. 13. 으함™ '06.2.27 6:07 PM 신고
    박정희의 한일협정 진상-독도를 폭파하라~
    1965년 한일협정당시 독도를 김종필이 폭파하자는 소리는
    오히라에게 농담이었고 협정문서에는 제3국 조정안을 김종필이 주장하였다고 되어있으나 미국에 건너가서 김종필의 미국 국무부장관과의 대화를 보면 그가 직접 폭파주 장을 하면 쿠테타정권이 위태로우니 미국의 힘을빌려 일본에게 유리하게 협정을 약속한 증거가 나와있다

    당시 불법정권인 쿠테타세력 박정희 정권은 세력집권을 위하여 미국의 협조를 바랬으나 박정희의 공산당 군사부장이란 전력이 있어 미국에서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이에 일본장교전력의 박정희가 일본에게 미국의 신임을 요청하였고 그 반대급 부로 일본은 한국의 전후보상처리를 일본에게 유리하게 하는 조건으로 미국에게 박정희정권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였으며 그후 박정희는 미국과 일본의 순방길에서 일본의 기시 일본 전수상에게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한국지사가 된마음으로 한국을 다스리겠다고 경례하며 충성약속까지한 박정희의 진면목에 한일협정은 박정희의 일본충성심과 일본에서 받은 정치자금 뇌물[ 6600만불 받은것을 미국CIA 첩보문서에 기록되있고 그외에도 엄청난 뒷거래가 있었다]과 일본에게 그댓가로 이승만이 명시한 동해 국경라인을 무시하고 일본에 유리하게 협상대표인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하여 공해로 만들자하였고 오히려 오히라와 일본측에서 폭파까지 한다고 당황하였다

    일본신문에선 한국이 자기땅이 아니라서 독도를 폭파하자고 하였다고 대서특필 하였다

    당시 한국내에서 학생과 시민들의 굴욕적인 한일협정반대 데모가 거세지자
    김종필은 한일협정 문서에는 독도폭파를 기록하지말고 당시 한국에서 세력이 막강한 미국에게 독도문제를 미국이 처리해달라고 제3국조정안이란 술수를 부렸다 김종필이 미국에 가서는 미국무장관에게 독도는 갈매기만 사는 쓸모없는 섬이 라며 폭파를 건의하였고 박정희 역시 미국 순방길에 똑같은 독도 폭파제의 발언을 한것으로 기록돼있다

    미국도 일본측 의견도 듣고서 독도를 한국과 일본 미군 폭격장으로 없애려하였다 이에 국민들의 대대적인 항의 데모에 친일파정권인 박정희가 김종필을 미국으로 도피시키고 독도폭파를 보류해달라고 하며 민심을 진정시켜 집권연장에 안간힘을 쏟았다 당시 데모진압에 경찰병력으로 힘들어 군병력까지동원하였으니 엄청난 불안을 느꼈을것이다

    그런 친일매국노들이 근자에 와서는 김종필은 일본과 그당시 약속이행인지 아니면 일본에 약점이 있는건지 DJP연합정권이 승리하자 곧바로 일본 건너가서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새로 협정을 해야한다고 일본의 파기조건을 도왔으며 당시 김대중정부는 협정파기는 정부의 뜻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김종필의 도움으로 일본이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고 어쩔수없이 다
    시 신한일어업협정을 새로 만들어야했다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때도 국무총리로서 한일협정 책임자를 자임하며 자신도 국회에서 해양수산부로 옮기고 해수부장관도 정부와 국민의 반대에도 자민련출신 김선길과 정상천을 기용하여 해양어업선을 독도를 깃점으로 않삼고 울릉도를 깃점으로 삼아 한국에 막대한 피해를준 현재 존재하는 친일파 김종필을 우리는 직시하여야한다

    그외에도 불법쿠테타로 민주국가와 민주인사를 고문과 살인등으로 짖밟고
    불법쿠테타세력 집권 연장키위해 공화당창당자금과 추종세력확보로 떡값등 돈 살포위해서 일본서 사카린밀수와 증권조작등 4대부정부패의혹사건을 저지르고 다른나라 배상에 비해 싸구려로 받은 일본강제동원피해자 배상금유용과 근로자 저임금 탄압정책으로 기업에서 뇌물수뢰등 정경유착 착취와 반인권전력과 그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김영삼 공동정권당시 실세인 김종필의 동화은행구좌에서 한보그룹에서 100억원 뇌물수뢰[함승희검사가 조사중 발견] 댓가로 은행에 대출청탁압력을 넣었는지 한보그룹 부정대출로 이어져 10조원부도로 다른기업의 줄줄이 부도로이어져 엄청난 은행부채로 1997년 IMF 외채를불러 대우그룹 부도와 함께 국민에게 고통을주고

    자민련 공천뇌물비리와 삼성그룹15억원 뇌물사건의 주범으로 추악한 비리와 부정축재자이며 입으로는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자기손자는 병역기피위하여 외국국적으로 바꾼 정말 더러운 위정자들이다

    밑에는 이재봉교수께서 미국무부자료를 조사하여 집필한 것을 필요없는 부분
    은 삭제하였고 당시 집권세력의 매국 현장이 낱낱이 공개돼있고 평화통일을 위한 동북아시아 분쟁의 현명한 처리방식도 기술돼있다

    독도문제의 뿌리는 박정희와 김종필

    [논단] 일본과 미국에 먼저 폭파제안, 한미일 3각공조 붕괴효과는 긍정적
    bpm at chol.com>이재봉 bpm at chol.com>pbpm at chol.com

    아마 3월 한 달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란거리는 독도 문제였
    을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쪽 주장에 대해 거의 온 국민이 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던 듯하다.

    일본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시로 손가락을 자른 사람도 있었고 목숨까지 내던지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 (NSC)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외교 방침을 발표하고 대통령은 ′외교 전쟁′이란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 정부 차원의 ′조용한 외교′조차 떠들썩한 외교로 바뀐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염치없는 억지와 반성없는 망언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본이 저런 짓거리를 하는 데는 지난날 한국의 친일파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부추긴 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만 밝힌다.

    -독도 폭파는 한국이 일본에 제안, 미국도 고려-

    지난 1월 17일 1960년대 한일 협상과 관련된 외교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일본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2년 9월 일본의 협상 대표인 외무성의 한 국장이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상 대표인 외무부의 한 참사관은 두 달 뒤인 1962년 11월 "(한일간에)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 제 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종필 정보부장이 하게 된 것이며, 이는 김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이다"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6년 공개된 미국의 외교 문서에 따르면 5.16 쿠데타 이후 ′제 2인자′로 행세하며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의 오히라 외상에게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 김종필이 1962년 10월 일본에 건너가 한일 협정의 기초를 마련했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하고 바로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 문서′로 분류된 1962년 10월 29일의 김종필-러스크 대화록을 보면, 두 사람이 한일 협정에 관해 얘기하는 가운데 쟁점이 되고 있던 독도에 대해 러스크가 그 섬이 무슨 용도가 있느냐고 묻자, 김종필은 "갈매기가 들르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 해버리자고 제안했다고 말하자, 러스크는 자신도 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대꾸했다.

    나아가 오히라는 독도 문제에 관해 일본 사회당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며 김종필의 제안에 만족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Volume XXII, Northeast Asia, 610-612쪽). 독도 폭파를 한국측이 제안하고 일본측이 거절했던 셈인데,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내용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라디오 평론가는 한 아이를 둘러싼 두 어머니의 다툼을 해결했던 ′솔로몬의 지혜′를 소개하면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주장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다투는 과정에서,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지라는 솔로몬의 말에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포기한 반면 가짜 어머니는 그 제안에 찬성함으로써 진짜 어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듯이, 일본이 독도의 진짜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폭파를 제안했던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초 한국 최고 통치자의 대리인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이 독도 폭파를 제안한 데 대해 일본이나 미국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게다가 1965년엔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한일 협정을 위해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망언을 했다. 바로 이러한 친일파 위정자들의 망언 때문에, 설사 한일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은데 따른 푸념이었을지라도,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이 독도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거나 진짜 주인일지라도 영유권을 쉽게 포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게 되지 않았겠는가.

    참고로 1962년 김종필과 대화를 나누며 독도 폭파를 고려하고, 1965년 박정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독도에 등대를 세워 두 나라가 함께 이용하기를 제안했던 러스크 국무부장관은 1945년 8월 육군 대령으로 3.8선에 의한 한반도 분할을 소련에 제안했던 사람이었다. 한반도의 국토 분단을 이끌었던 그가 분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나중엔 독도를 폭파하자거나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했던 것은 친일파 정치인들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억지를 비난하고 그러한 일본 편을
    드는 듯한 미국의 자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다 미국
    에 굽실거렸던 한국의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어떠한 언행을 저질러왔는지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해방 직후 친일과 부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업보이지만, 60년이 지난 이제라도 과거사를 제대로 밝혀야 할 필요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독도 문제로 친미파의 반발과 친일파의 저항없이 깨지는 한미일 3각 공조-

    한편,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 점도 있
    는 것 같다. 동북아에서 새로운 냉전을 불러올 수 있는 한미일 3각 공조 체제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중국-북한의 북쪽 3각 공조에 맞서 미국-일본-남한이 남쪽 3각 공조를 이루는 게 당연했다. 당시엔 반공이 최고의 안보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에는 미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핑계삼아 일본과 남한을 끌어들여 찰떡같은 3각 공조를 추구해왔다.

    예를 들어, 미국은 냉전 종식 직후부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여온 가운데, 1996년 4월엔 ′미일 안보 공동 선언′을 채택했고, 1997년 9월엔 이를 바탕으로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방위 협력 지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1999년 4월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구실로 남한을 끌어들여 ′3각 정책 조정 그룹 (TCOG)′을 출범시켰으며, 1999년 11월엔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미사일 방어망 (MD) 체제를 세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팽창주의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며 군사 협력을 크게 강화하기로 하였고, 북한도 중국 및 러시아와의 우호 및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갔다. 1990년대 이전처럼 미국-일본-남한의 3각 공조와 중국-러시아-북한의 3각 공조가 다시 맞서는 "제 2차 세계 냉전 체제" 또는 "신냉전 체제"가 들어서려 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체제가 굳어진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멀어질 수밖에 없을텐데, 앞으로 남한과 일본 사이에 ′외교 전쟁′까지 벌어지게 되었으니, 독도 및 교과서 왜곡 문제가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동북아의 안정과평화를 위해서는 잘 터진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에 대
    해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배경은 지난날처럼 무턱대고 미국을 따르는 것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 있을 것이다. 이런 터에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미일 공조 대신 ′동북아 균형자론′이 친미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의 큰 저항이나 반발없이 힘을 얻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패거리 만들기에 휘둘리지 않고, 좁게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넓게는 미국-일본의 해양 세력과 중국-러시아의 대륙 세력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대외 정책을 지지한다.

    * 필자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입니다.

    *본문은 폴리티즌과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진보와 정론의 인터넷마당 대자
    보′(www.jabo.co.kr)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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