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인터넷 500만 돌파.. 실속없는 성장 반성과 대안 (4);장비수급 문제점
안길섭 seobi@dt.co.kr 2001/04/19
국내 초고속 인터넷 장비시장에서 외산제품이 판치는데는 기술개발의 지연 등에 일차적 원인이 있지만 통신사업자들의 ‘국산 장비 역차별’도 한몫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통신을 비롯한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등 대부분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들은 국산 보다 외산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한통을 제외한 하나로통신, 드림라인, 두루넷 등은 투자자금의 부족으로 외국 대형 장비업체들로부터 벤더파이낸싱을 통해 장비를 조달하고 있어 국산제품이 끼어들 여지가 봉쇄돼 있다.
한 대형 장비업체 관계자는 “한국통신 등에서 국산장비 개발을 종용하고 나서 정작 제품을 개발하면 여러 이유를 들어 제품을 선정하지 않거나 도입을 하더라도 지원조건을 과다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외산 장비의 일부 기능이 지원되지 않더라도 사후 보강을 조건으로 납품을 받지만 국내업체에게는 이같은 융통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역차별을 받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그는 밝혔다.
물론 통신사업자들은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망 특성상 이미 구축된 장비와의 호환성 때문에 부득이하게 외산 장비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국산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소장비업체 관계자들은 “국산 장비가 미처 개발 되기도 전에 하나로통신과 한국통신이 ADSL 판매경쟁을 벌이면서 먼저 개발된 외산 제품을 대량 구매했다”며 “이제와서 기존 구축 장비와 호환성을 운운하는 것은 장비업체에 대한 책임 전가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일본의 최대 통신사업자인 NTT가 아직도 ISDN(종합통신망)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초기 투자비를 회수한다는 명분과 함께 자국산 장비가 개발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서비스를 늦춘 것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ADSL이 초고속인터넷의 대중화를 가져온 공로도 크지만 한편으로 국부유출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데는 한국통신이나 하나로통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하나로통신은 제2시내전화 사업자로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ADSL을 시작했고, 이에 뒤질세라 한국통신도 이 사업에 뛰어들어 양사업자가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초고속인터넷은 초고속으로 확산됐지만 국산장비업체들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뿐만아니라 통신사업자들이 초고속인터넷 장비를 한꺼번에 대량 구매하는 것도 문제다. 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한국통신 196만회선, 하나로통신 73만회선, 두루넷, 드림라인 10만회선 등 총 280만 회선규모의ADSL이 구축된 상태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이 유일하게 입찰을 통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한국통신의 경우 지난해말 132만 회선과 지난 13일 60만 회선 등 올 한해동안 보급할 200만회선에 가까운 장비를 한꺼번에 대량 발주했다. 중소장비업체 입장에서는 60여만 회선의 물량을 따더라도 이를 공급할 생산능력이 없다. 세계적인 장비업체인 알카텔, 시스코시스템즈, 루슨트테크놀로지스조차 ADSL장비 생산능력이 월 5만회선 수준이기 때문에 이 같은 대량물량 발주는 수급상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년에 두번 밖에 없는 입찰에서 떨어지게 되면 생산장비의 판로조차 막히게 된다. 이에 따라 한통이 다소 번거롭더라도 발주물량을 줄여 여러번 입찰을 실시, 중소장비업체들의 공급기회를 확대해주는 배려가 아쉽다고 한 장비업체 사장이 말했다. 특히 특정 서비스를 처음 도입할 경우에는 소량을 구매해 다양한 시험을 실시한 뒤 기술적 평가와 함께 국산장비 개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본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