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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그 아름다운 유혹.

 


자살, 그 아름다운 유혹.

살아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학교 다닐적에 공부하기 싫어 죽고싶다.
군대가기 싫어 죽고싶다.
회사에서 일하기 싫어 죽고싶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평소 살아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두번씩은 했을 것 이다.
나도 인생을 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회사에서 일하기 싫어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적은 없다.
그때는 정말 일이 죽을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난 제일 행복했다.)

하지만, 삶을 버릴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자살이란 단어는 무관한 단어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 1998년 2월에 나에게는 자살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살하기 며칠전 우리집에 초대해 내 방에서 같이 잤을 만큼 친한 친구였다.(남자 친구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친구가 자살했다는 전화통화를 받았다. 그 순간, 내 인생에 있어 그런 비통한 날은 처음이었다.

그 친구는 사람들과 논쟁중에 환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리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한강으로 떨어진게 아니라 고수부지 시멘트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지면서, 안면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렇게 사망했기에 그 친구의 얼굴도 보지도 못했다. 그 친구는 화장했다.
그날의 기억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또렸하다.

당시 그 친구의 죽음은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다.
마지막 만난날 조금은 이상했던 그 친구의 말과 행동에서도 이상기운을 감지하지 못한 내 자신이 미웠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돈 5천원 빌려 달라는 그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도 후회스러웠다.

당시 사건은 나에게 인생이란것에 대해 종교라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 내가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바탕이 된 이유중에 하나일 정도로 친구의 자살은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직도, 가끔 그 친구와 오갔던 곳을 지나가게 되면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그 후.. 나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시도한것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친구의 자살이라는 충격속에서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본래 가지고 있었다.
(그 친구의 자살은 인터넷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가지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꿈과
내 개인 홈페이지에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과 관심을 지지(?)라고 착각하면서
(착각이 아니라는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터넷을 이용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비씨파크라는 당시에는 개인홈페이지를 기반으로 (지금도 혼자 운영하니 별반 다를바 없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으로부터 7년전 2002년 초에 사업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달고 시작했다.

두리뭉실한 꿈만 가지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완전 무개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하면서 당면하게 되는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부딛히면서,
사업의 본래 목적보다는 이 사이트의 존재가치는 잊어버리고,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당시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어려운 사업보다는 돈 벌기에 가장 쉬워 보이는 소프트웨어 유료화를 선택했다.
지나고보면 단순 무식한 생각이었기도 하지만, 가장 간단히 실행할 수 있는 상태였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것도 여러가지 꿈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시도한 것 같다.

당시 무료로 배포하던 소프트웨어의 유료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꺼내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점점 이상해져 갔다.
(지나고보니 비난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 강도가 큰 것 같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난생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당했고(전치 3주),
(지나고보니 교통사고의 스트레스 증후군도 괭장히 심각했던 것 같다.)

게시판에서 어떤사건이 발생해 검찰조사와 법원재판을 받게 되었다.
(3년이나 긴 시간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한동안 반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있었다.

검찰청이나 경찰서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어떠한 심각한 사건이나 사고가 자신에게 발생하거나,
혹은 어떠한 사건이 발생해서 검찰청이나 경찰서에 가면 인생은 그때부터 멈춰진 느낌이 든다.
그 만큼 고통이 심각한 것 같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을텐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클 것이다.
처음 격는 사람은 잘못했는지 잘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일 것이고,
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모르는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는 정말 암흑속에 있는 느낌일 것이다.

두번째는 조사과정에 있다.
나이가 어릴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꾸중을 들어도 괭장히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꾸중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을만큼, 자존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상당히 강렬한 것 같다.
어릴쩍에도 누군가에게 꾸지람을 들으면 마음에 상당한 상처를 입는데,
어른이 되어서 이런 경우를 당하는것은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나의 경우 상대 조사관이나 검사가 나이가 많은 분이었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조사관이나 검사가 조서를 꾸미겠다고, 범죄자로 대하면 더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나의 경우 검사가 나에게 처음 한 말은 “전과자처럼 생겼다.”였다.
처음보는 상대방에게 이런말을 하면 과연 상대방은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일까?

그날은 정말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날이었다.
당시에 인터넷에서는 꽤나 유명하고 인정받고 살던 나였는데,
그런 이야기 듣고도 머리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던 그 상황속에 있는 내가 정말 미웠고,
날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게 비참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치욕을 받으니 떨어져 죽고 싶었다.

바로 구속시키고 싶지만, 당신이 인터넷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말이 세상은 힘이 있어야 사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정한 권력은 그 어떤 언행을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루종일 컴퓨터만 바라보며 살던 사람이 바라본 세상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당시에 나를 욕하는 수많은 악플러가 있었는데,
세상에 그 어떤 악플러도 얼굴 앞에서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검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에겐 난생 처음으로 세상에 가장 죽일만큼 싫은 사람이 생겼다.
지금은 좋게 생각해서 한편으로는 또 이런 경험으로 날 성숙시키는데
도움이 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이런걸 용서라고 하나?)
당시에 나에겐 충격과 치욕 그 자체였다.

지나고 보면 내 착각이었지만,
처음 검찰청 갈때는, 검찰청에서는 내 말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믿고 찾아갔다.
당시 내가 수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었기에,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가지고 갔다.
우리집안에도 검사장까지 한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런 인품 있는 사람인줄 알았다.
나에게 검사란 검사를 만나기 이전에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검사라는 직업특성상
모든 사건의 피의자를 범죄자로 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가 되지만,
당시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도 사람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이런 경험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든 일을 세상의 모든것이 원래 그런것이다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 2003년 여름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무일푼으로 사업시작하면서 언제나 재정상태는 좋지 않았다.
돈 엄청 벌어보긴 했으나, 이상하게도 직원들의 월급은 언제나 밀렸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내 마음은 항상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온라인에서 나라는 존재는 나의 글쓰기는 그래도 인기가 있었다.
(지나고 보면 착각이었던것 같지만) 어쨋든 그것은 나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어느날 나는 무료로 배포하던 소프트웨어를 유료로 팔겠다는 한마디에 바로 비난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말 한마디 참 무섭다. 바로 그 글에 수만개의 악성리플이 달렸다. 수천명 수만명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매일마다 사이트에 올라오는 나를 비난하는 악성리플과 비난성 게시물을 지웠다.
그런 글들을 볼때마다 내 마음은 찟어지는 것 같았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내내 몇년간 그랬다.
그것도 모잘라 어떤 사람들은 안티사이트를 만들고 나를 공격했다.
나중에 보니 안티사이트에 가입한 사람들이 7000명이나 되었다.
가끔은 부모욕도 하는 사람도 생겼다.

직원들이 바깥에서 나를 욕하는 소리듣고 왔다면서,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점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떠나갔다. 욕먹는 사람과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세상엔 날 욕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처음엔 사람이 좋아서 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무서웠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처음 사업 시작할 때의 사이트에서의 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관심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욕을 먹는 나는 어느덧 이 세상에 사라져야 할 사람이 되었다.
나도 내 자신이 정말 필요없는 놈 같았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 생명 같은 이 사이트에서 날 대신 할 사람도 없었다.
가끔은 날 대신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려움을 이용하는 사람들처럼 보여서 믿기 어려웠다.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매일마다 새벽에도 전화를 해대는 스토커까지 있었다.
스토커가 전화를 계속 할때에는 정말 미칠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검찰조사가 시작되면서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이 세상 어디에 예비 전과자와 사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소됐다는 소식에 가족들도 날 범죄자로 취급하기 시작하고 연락을 끊었다.
정말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다. 아니 외톨이었다.

그때부터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정수리 부근에 그때 난 흰머리가 가득하다.
한동안 추위도 더위로 잘 못 느꼈다. 스트레스 받으면 감각기관들도 이상해지는 것 같다.
어쨌든 그만큼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당시에 부모님께서는 세상 다 살은 것 같이 말하냐는둥 스님 같은 말을 하냐고 하기도 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새벽까지 스토커의 전화에 시달렸다.

일 하다가 바깥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끝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욕하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도 싶었다.
사무실 창문을 열었다. 떨어지기 위해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데.. 또다시 전화가 왔다.
아. XXX는 내가 죽는 순간까지 전화를 걸고 지랄하는구나.
그래. 내 인생 마지막인데 전화 한번 받아주고 죽자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보니, 어떤 회원이 로그인이 안된다는 문의전화였다.
세상에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그 후..
나는 정신차리고 나의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먼저 책부터 많이 읽었다.
누명을 벗기 위해서, 내 스스로 변론하면서 무죄판결도 받고,
그렇게 배운 법적인 지식으로 법을 통해서 내 문제들도 하나하나 해결해갔다.
열심히 글을 쓰다보니 개인정보보호나, 인터넷 종량제 글도 자연스럽게 쓰게 되면서,
학교 다닐적에 세미나 같은거 한번도 해본적도 없는 내가
국회가서 세미나도 해보고 토론회에도 참석하고, 열심히 하다보니 표창장도 받았다.
지나고보면 그런 고통을 해쳐나가기 위해서 발악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지나고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을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나 죽을때까지 욕 할거 같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욕하는 사람은 없는거 같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 한 거 같아 보이기도 하다.

시간은 오래 흘렀으나 아직도 난 그 고통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온거 같지 않다.
이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는 다른일을 해야 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요즘은 다른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10년정도 했으니 다른일 할때도 된거 같다.)

지나고보니,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사는 이유/목적이란게 있어야 하는거 같다.
특히 고통스러울 때는 그 고통을 이겨낼 만한 이유는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돈이나 명예나, 인기같은것 보다는 사람인거 같다.
내가 죽으려고 했을 그때 누군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자살,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 아름다운 유혹처럼 충동속에서 생겨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화장하면 작은 항아리에 들어가면 끝이다. 죽고나면 명예도 돈도 고통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비석에 이름 석자 남길려고 이 세상 오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종종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자기자신만 생각한 것은 아닐까? 혹시 가족들이 위한것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가족중에 누가 사고나 자살같은걸로 죽으면 그날부터는 인생이 인생이 아니다.

요즘 하루에 자살 33명씩 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나고 후회할 선택은 안하길 바란다. 지나고 보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에게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게 없다.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인기에 목메어 사는 사람들도 인기라는게 언젠가는 사라지고, 사라지고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언제 다시 자살을 시도할지, 끝끝내 자살을 할지 모르겠다.
이제 존엄사도 합법화 되고, 존엄사도 자살이라고 볼 수 있으니..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삶을 마감할 것 같다.

나도 늙어서 더 이상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를 못찾겠으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 만큼은 이제는 내가 책임 져야 할 가족들이 있고,
한번 격어봤기에 상황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는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살, 자신이 선택하는것 같지만, 상황이 만들어 준 것에 놀아나서 행동하는게 아닐까?
내 이야기가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09-05-24 07:44:49
4385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하드피스톨 '09.5.25 12:33 AM 신고
    자살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오랜기간 심사숙고 끝에 계획하고 죽는 다는군요. 죽기 몇칠전 부터 심리적인 암시를 나타내는 행동이 나온다는군요.
    이중 제일 어려고,무서워 상당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것중 목을매어 선택하는것과 높은곳에서 떨어지것 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손목을 택하는 방법은 절대로 왠만해서는 죽지않는다고 하더군요.. 방법이 따로 있는데 이것은 중요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내가 힘드니 신경써달라는 표시의 일종이라고 그럽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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