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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대중 前대통령 분향소 다녀왔습니다.

 

어젯밤에 친구네집에 놀러갔다가 드라이브 나가서 서울시청 광장보고 생각나서 갔다왔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모습입니다. 경찰이 왔다갔다 하더군요.

 

제 모습입니다. 조문하러 갈 생각으로 나간게 아니라서 옷이 좀 그렇더군요.


 

제 친구모습입니다. 워낙 자주 만나서 주변에서는 남자끼리 사귀냐고 놀려댑니다. 사실 뭐 사귀는거 같긴 합니다. ㅎㅎㅎ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


 

분향실은 지하2층 특1호실이라고 안내판이 있네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처음가봤는데 인테리어 수준이 호텔급이더군요.


 

장례식장 앞에 제복입은 군인들이 서있더군요. 아무래도 이곳은 제가 갈만한 레벨은 아닌거 같아서 그냥 옆 계단으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조화들이 왔더군요.


 

조화 세워둔거 보면 어떤 사람들이 좋아했는지 어떤 사람들을 대우하는지 알겠더군요.


 

제가 보기엔 스타정치인인 노회찬씨가 보낸 조화가 구석에 있더군요.


 

입구 옆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온라인상의 민주화와 인권

故김대중 前대통령의 서거로 민주화와 인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회와 직접 부딛히기 전인 학생때는 민주화, 인권 이런 단어는 들어본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시 사회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단어는 사용할 수 없었던 단어였던것 같습니다. 현재 30대 중반인 제가 초중고등학교 다닐적에 학교에서 교사들의 체벌로 인한 인권침해는 언제나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졌지만, 당시에는 교사들의 체벌은 저나 주변사람들이나 당연한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짜피 맞아야 하는거 단지 약하게 때렸으면 하는 바램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네요.

여러 선생들이 생각나지만, 중학교 1학년때 담임은 그 반의 학생들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 거의 하루를 거르지 않고 전체를 다 대걸래로 팼던게 기억나는군요. 허벅지가 성할날이 하루도 없었죠. 그런데, 그런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는 그러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이야기로는 제가 어느날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해서, 또다시 그러면 그냥 가방싸고 집으로 오라고 했답니다. 그 다음날 선생님이 똑같이 머리를 때리자 정말 가방싸서 집으로 왔고, 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답니다.

사람은 차라리 정말 아무것도 모를때가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엔 교사들이 학생들 체벌은 커녕, 체벌하다간 큰일나고, 세상이 많이 변해서 교사들도 능력있어야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최근의 사회 분위기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민주화나 인권등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시 옛날로 회귀하는 분위기 같아 많은사람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회분위기를 이명박 정부 탓으로 돌리는데, 전 이런 문제가 원인을 다른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대학교 4학년때 당시 PC통신을 통해 온라인 사회를 접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때부터 PC통신을 사용했었지만, 게시판이라는 온라인 사회에 참여가 아닌 읽고 다운로드 받는 당시 이야기 하던 롬(ROM)족이었습니다. 자신의 욕구해결만을 위해 이용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은 그렇게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이용자를 운영업체(지배계층) 입장에서는 착한 회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당시 제가 프로그램 다운로드나 받으러 가는 자료실이 잘 되어있던 국내 최대의 동호회라고 자랑하던 동호회에 보궐선거를 하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호회의 행사나 업체협찬을 받으면서 각종 잇권을 챙겼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회원들이 시삽을 탄핵시키고 새로운 시삽을 선발하였습니다. 사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그것을 보고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다는 생각만 가지고 내가 나서봐야겠다고 마치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선거출마후 PC통신 시스템의 이상한 오류로 인해 게시물이 다른곳에 올려지게 되었고, 게시판 규칙이라는 이상한 규정을 들어서 징계를 하고, 선거중 탈락이라는 이상한 결과로 다른 사람이 선출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억울했습니다. 화가나서 정통부에 민원을 제기했는데, 그게 하이텔로 내려가서 다시 그 동호회에서 해결하라는등 그렇게 되더군요. 정말 몰라서 그렇지, 법원으로 들고가서 따져보면 제가 이길 수 있던 문제였는데, 철없던 저에게 사회의 벽은 너무 높더군요.

인생 새옹지마라고 그때 제가 당선되었다면, 컴퓨터 하드웨어 정보쪽을 다루는 쪽으로 어떻게 변신을 했을지 모르겠고, 지금보다 더 성공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 시삽으로 당선되었던 사람을 보건데, 제가 지금까지 한 수많은 일들은 분명 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쨋든 당시 PC통신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쇠태되었고, 이젠 그 동호회라는것은 이렇게 오랜 기억속의 단어로도 거의 생각나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저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제가 오늘날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여러가지 방법의 동기부여가 있는데, 억울하게 만드는것만큼 큰 동기부여가 되는건 없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동호회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신업체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었으나,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행동하다가 좋은기회를 한번 놓치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인생 새옹지마라고, 그 이유가 저를 초고속 인터넷 품질에 관련된 업무를 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비씨파크라는 사이트와 속도패치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과거를 좋게 생각하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산 것 같지만, 전 그동안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애초에 제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 이유는 제가 회원입장에서 온라인 사회를 경험하면서 격었던 민주적 절차와 인권을 무시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대로 운영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이익문제도 공정한 분배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인사업자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출발했었습니다.

지금 보면 당시 저는 정말 좋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업화라는 과정과 주변현실을 고려하면서 저와 회사라는 조직의 구성원들의 먹고사는 당면한 현실을 해결해야 하기 위해서, 회원님들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하고 운영하면서, 특히 당시에 가장 인기가 있었고, 반대가 심했던 속도패치 소프트웨어의 유료화 과정을 마치 쿠테타처럼 새벽에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운영하다보니 회원들의 불만은 급증하여 안티사이트도 생기면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계속 터져나오면서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상업적인 성공은 커녕 적자만 가득하게 되었고, 지금은 처음 제가 사업을 시작했을때처럼 몇년째 혼자서 운영하면서 현재있는 서비스만 겨우 유지만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실수는 제가 한 것이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너무 오래된 과거가 되었으나, 당시의 회원님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클릭이라는 행위로 글 삭제하거나 징계처리 하면서, 비 민주적으로 비 인권적으로 운영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비씨파크가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사이트이지만, 당시에 충성도와는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것은 망친것은 회원님들의 마음을 저버린 제 잘못입니다. 이런 과정에서도 그동안 적지 않은 분들께서 비씨파크 속도패치, 호스팅등 유료서비스와 공동구매등 각종 이벤트 행사에 참여해주셔서 지금까지 비씨파크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회원님들께 저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빚진것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 개인적으로는 안티사이트와 불만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법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자주 벌어지는 저작권 문제와 명예훼손에 대한 지식도 쌓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그동안 인터넷 종량제나 개인정보보호등에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회원님들께 더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생각하지 못한다고, 제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문제에 있어서 최근 제가 가입한 어떤 까페내에서 10년전 격었던 경우와 거의 흡사한 경우를 다시 격게 되면서, 온라인상에서의 민주적절차와 인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참 이기적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나 도구가 주어진다면, 누구나 마음대로 할 것입니다.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참 좋아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돌아가는 웹 사이트처럼 클릭 한번으로 쉽게 해결된다면, 만약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제거하는데 클릭한번으로 가능하다면? 그 클릭으로 상대방에게 피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가 확실하지 않는다더라도 얼굴도 모르는 일애의 아이디를 인정해준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 과정에서 클릭하는 사람의 귀차니즘도 한몫합니다.

오늘날 까페는 옛날 PC통신 시절의 동호회를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N모사 D모사가 있습니다. 원래 D모사가 먼저 시작했으나, N모사의 서비스 기술력과 시장 장악으로 인해 최근에는 N모사의 까페가 인기입니다. 다른 포털에는 클럽이라는 명칭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사실 큰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처음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까페를 만들때 당시 벤처 비지니스 붐이라는 사회적 환경과 특히 사회라는 경험이 부족한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만들어져서 그런지, 오늘날 까페는 PC통신 시절의 동호회보다 더 개인적이며, 마치 개인 홈페이지와 같이 까페를 개설한 매니저, 까페지기의 개인의 것으로 변했습니다. PC통신 초창기 시절의 시삽선거등 그나마 갖추어져 있던 민주적 절차는 사라진지 오래고, 현재는 비지니스 수단/도구로 변모했습니다.

이제는 누가 까페를 커뮤니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것 같습니다.

까페라는 시스템이 생겨난 원인은 3개의 이익집단 사이에 발생하는 짬짜미 현상과 비슷합니다. 서비스 업체와 회원들을 통솔할 수 있는 까페매니저가 회원들의 이익을 가져가는 형태입니다. 물론 더 크게 보면 서비스 업체가 까페 매니저에게 이익의 아주 일부분만을 줄 뿐이며, 대부분의 이익은 서비스 업체가 가져가는 형태입니다. 물론 이윤을 창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상업적인 인터넷 서비스 업체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으며, 상업적인 이익을 창출해야 하고 싶어하는 까페 매니저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모두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민주적 절차는 무시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행위로 인해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할 수 밖에 없는 계층이 격어야 할 권리침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되었으며, 이런것이 습관화 되면서, 실제 현실에서도 지난 10년간 인터넷이 발전해온만큼 민주주의가 후퇴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은 정보의 다양화와 홍수로 인해 민주화가 더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건은 잠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타인의 발전이 전파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이 발빠른 조치를 하면서 사회가 좋아진 것이며, 최근들어서는 예전 현실사회와 마찬가지로 전파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다며 무시하는 사례들도 많아졌습니다.

자신의 레벨에 부여된 권한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것은 마치 독재 공산주의와 같습니다. 이런것을 생각하면서, 자유와 독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여, 그것이 자유 혹은 독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들었습니다. 제가 이쪽 책은 읽어본적이 없는데..

 

 

 

 

 

 

 




2009-08-20 18: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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