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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성장과 경쟁

 


1990년대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성장과 경쟁


이장우*


본 고에서는 1990년대 10년 동안의 정보통신정책 추진성과를 정보통신서비스의 시설 및 가입자 수, 시장규모 등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본 후, 정보통신사업에의 경쟁도입 과정과 그 결과를 점검해 보았다.


본 고는 인터넷 및 컨텐츠시장의 폭발로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정보통신사업이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문턱에서, 1990년대 10년간의 정보통신산업 발전성과를 정리해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I. 서 론


우리나라의 전기통신은 196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관용이나 군용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일반국민의 전화이용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일반국민의 전화이용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전화수요가 한꺼번에 증가하면서 전화적체가 사회문제로까지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에서는 1980년대부터 기본통신 수요의 완전충족과 통신시설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1987년에 가입전화시설이 1,000만 회선을 돌파하여 1가구 1전화시대가 실현되고 전국전화자동화가 완성되었다. 이어 1990년대에는 부가통신사업의 자유화를 필두로 통신사업에의 경쟁도입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하였으며, 무선통신산업 육성정책과 더불어 정보통신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을 이룩하기 시작하였다.


본 고에서는 지난 1990년대 10년간의 정보통신사업 경쟁도입 정책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성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 지난 10년간의 정보통신서비스의 시설 및 가입자 수 성장추세를 유선통신서비스와 무선통신서비스로 나누어 그 특징을 살펴본 후, 최근의 정보통신망 및 인터넷에 대한 발전추이를 살펴보았다. 이어 1990년대 10년간의 정보통신산업의 생산 및 내수시장 성장추이와 무역수지 흑자규모, 고용창출 효과 등에 대하여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보통신사업에의 경쟁도입 과정과 그 결과를 점검해 보았다.


이 자료는 인터넷 및 컨텐츠시장의 폭발로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정보통신산업이 새로운 변화와 발전를 지향하고 있는 문턱에서, 1990년대 10년간의 정보통신산업 발전성과를 정리해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II. 정보통신 시설 및 가입자 성장추세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보통신 수요의 급속한 팽창과 정부의 경쟁도입 정책, 전자교환기의 지속적인 보급 등에 힘입어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 동안 일반전화 981만 8,000회선이 새로이 공급되었다. 이에 따라 일반전화 시설 수는 1991년 말의 1,757만 2,000회선에서 1999년에는 2,739만 회선으로 증가하였다. 가입자 수 역시 1991년의 1,457만 2,000명에서 1999년에는 2,051만 1,00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100인당 가입자 수도 1991년의 33.7명에서 1999년에는 43.8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일반전화는 1980년대 말에 이미 기본통신 수요가 완전히 충족되었으나, 무선통신분야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여건상 전파의 이용이 제한됨으로써 유선통신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으며 관련기술 역시 외국으로부터의 도입에 의존해야 하는 등 낙후성을 면치 못하였다. 1990년도 당시의 이동전화 시설 수는 13만 5,000회선에 불과하였으며, 가입자 수는 차량전화 5만 3,799명, 휴대전화 2만 6,206명 등 8만 명 수준에 불과하여 서비스의 양적 및 질적인 고도화가 시급하였다. 그리고 이동통신 및 부가통신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하여 정보이용의 대중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전파관련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전파이용제도를 개선하는 등 전파이용 촉진시책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전파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에 힘입어 1999년 말에는 이동전화 시설수가 3,040만 회선에 달함으로써 1991년의 35만 2,000회선에서 무려 86배가 증가하였으며, 무선호출시설은 1991년의 199만 회선에서 2,308만 회선으로 약 12배 증가하였다. 가입자 수의 경우 1997년에 처음으로 무선통신 가입자수가 유선통신서비스의 그것을 넘어섰으며, 1999년 말에는 유선통신서비스 2,188만 명, 무선통신서비스 2,666만 명으로 무선부문이 유선부문을 큰 폭으로 추월하였다. 그리고 1999년에는 매출액도 같은 현상을 보여 무선통신이 유선통신을 앞지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동전화의 경우 1991년에 가입자 수가 16만 6,000명에 불과하였으나 1999년에 2,328만 3,000명으로 무려 140배가 증가함으로써 인구 2명당 1명이 이동전화를 보유하는 이동전화 대중화시대로 접어들었다. 반면, 무선호출은 1991년에 85만 1,000명에 불과하던 가입자 수가 1997년 말에 1,519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나, 1998년부터 CDMA 및 PCS 이동전화의 보급이 증가하면서 1999년 말에는 312만 9,000명으로 감소하였다.


이와 같은 국내 이동전화시장의 고도성장은 국민의 이동전화에 대한 높은 선호도 뿐만 아니라 두 차례에 걸친 이동전화시장에의 경쟁도입과 이로 인한 요금 및 단말기가격 인하,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 등에 힘입은 것이다. 국내 주요 통신서비스의 시설 및 가입자 수 증가추이는 <표 1>과 같다.



III. 정보통신망 및 인터넷의 발전추이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보화를 통해 창조적 지식기반국가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정보통신망의 고속화, 운영시스템의 국제표준화 등을 추진하여 지식정보를 빠르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즉 정보통신망의 고속화 및 고도화를 추진하여 1999년에 13개 통화권역에 대용량 광전송로를 추가 구축함으로써 전국 107개 지역까지 초고속기간전송망 구축을 완료하였다. 이에 따라 고속정보통신서비스 가입자 수는 1998년의 5만 2,300가구에서 1999년에는 59만 100가구로 약 11배가 증가하였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통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용회선, 무선데이터통신, ISDN(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 ADSL(Asymmtric Digital Subscriber Line) 등 데이터통신과 관련된 서비스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이용은 정액요금제 도입, 인터넷 PC 보급, 개인도메인 등록 허용, 우체국에의 위성인터넷플라자 설치 등에 힘입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국내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1998년의 310만 명 수준에서 1999년에는 1,080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인터넷 도메인 수도 1998년에 2만 6,100건 수준에 불과하던 것이 1999년에는 20만 7,000개로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리고 지난 10년동안 1995년 8월에 1호 위성, 1996년 1월에 2호 위성, 1999년 8월에 3호 위성 등 무궁화위성의 성공적인 발사를 통해 본격적인 위성통신ㆍ방송시대를 열었다.



IV. 정보통신시장 성장추세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산업은 그동안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첨단서비스의 급속한 보급과 정부의 경쟁도입 정책, 세계 최초의 CDMA 개발 상용화, 전전자교환기 및 DRAM 반도체 개발 등에 힘입어 타 산업의 밑거름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체로서도 중요한 국가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산업의 생산규모는 1991년의 18조 1,864억 원에서 1999년에는 107조 5,434억 원으로 5.9배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정보통신산업의 비중은 1991년의 7.2%에서 1999년에는 22.2%로 증가하였다. 이 중 정보통신서비스는 1991년의 5조 4,995억 원에서 1999년에는 21조 7,342억 원으로 4.0배 증가하였으며, 정보통신기기는 12조 4,318억 원에서 80조 5,996억 원으로 6.5배 증가하였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시스템통합사업의 급속한 확장에 힘입어 1991년의 2,551억 원에서 1999년에는 5조 2,096억 원으로 20.4배나 증가하였다. 또한 1999년 말 현재 정보통신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DRAM 반도체시장의 급속한 발전으로 정보통신부품이 44.8%를 차지하는데 힘입어 정보통신기기가 74.9%로 가장 높았으며, 정보통신서비스가 20.2%, 소프트웨어가 4.8%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한편, 정보통신산업 중 기간 별정 부가통신서비스와 유선 무선통신기기를 합한 순수 통신부문의 생산규모는 1991년의 6조 5,522억 원에서 1999년에는 35조 5,496억 원으로 8년간 5.4배 증가하였다. 또한 매출액 면에서 유선통신서비스가 7조 3,740억 원, 무선통신서비스가 9조 7,582억 원을 기록하여 1999년에 처음으로 유ㆍ무선통신서비스의 비중이 역전되었다. 그리고 1991년에 유ㆍ무선의 비중이 ‘76:24’의 분포를 보였던 정보통신기기는 1997년에 CDMA, PCS 등의 이동전화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비중이 처음으로 역전되기 시작하였으며, 1999년에는 유선통신기기 5조 2,811억 원, 무선통신기기 11조 5,267억 원으로서 ‘31:69’의 분포를 나타내었다.



 


정보통신산업의 내수시장은 1991년의 16조 5,273억 원에서 1999년에는 91조 5,530억원으로 5.5배 증가하였다. 이 중 정보통신서비스는 5조 4,995억 원에서 21조 7,342억 원으로 4배, 정보통신기기는 10조 7,613억 원에서 64조 2,796억 원으로 6배, 소프트웨어는 시스템통합사업의 확장에 힘입어 1991년의 2,665억 원에서 1999년에는 5조 5,392억 원으로 무려 20.8배가 증가하였다.


 



한편, 정보통신산업의 고용인력은 1991년의 21만 1,617명에서 1999년에는 52만 1,200명으로 증가하여 8년 동안 30만 9,583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그리고 정보통신기기 및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정보통신산업의 수출은 CDMA의 해외진출 확대와 PCㆍ교환기ㆍ무선가입자망(WLL: Wireless Local Loop)ㆍ인터넷접속장비 등 수출유망품목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지원을 통해 1991년의 108억 7,800만 달러에서 1999년에는 399억 5,000만 달러로 3.7배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산업의 무역수지 흑자는 1991년의 22억 6,200만 달러에서 1999년에는 134억 3,000만 달러로 5.9배 증가하였다. 특히, 우리나라가 1996년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CDMA 단말기 및 시스템은 호주, 미국 등 주요 국가에 1998년에 6억 5,974만 달러, 1999년에는 22억 6,176만 달러 규모를 수출하였다. 



V. 통신사업 경쟁도입과 발전성과


우리나라의 통신사업은 1902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독점형태의 시장구조를 유지하여 왔다. 1981년에는 정부의 전화사업을 분리하여 한국전기통신공사(KT: Korea Telecom, 한국통신)를 설립하고 전화사업을 독점하도록 하였으며, 1984년에는 한국통신의 이동통신 부문을 분리하여 한국이동통신(주)<현 SK텔레콤(주)>를 설립하고 이동통신사업을 독점 수행하도록 하였다. 이와 더불어 (주)데이콤(DACOM Corporation)과 한국항만전화(주)<현 (주)한국통신파워텔>를 설립하여 사업역무별로 전문경영을 도모하도록 하였으며, 각 사업자들은 지정된 사업역무에서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통신서비스의 질적인 향상과 통신요금 인하 등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갈 목적으로 통신사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이에 따른 통신사업에의 경쟁도입은 우선 부가통신사업이 1990년대 초부터 전면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하였으며, 기간통신사업의 경우 데이콤이 1991년에 국제전화사업, 1996년에 시외전화사업에 신규사업자로 참여하였고, 1997년에 온세통신이 국제전화사업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98년 1월에는 별정통신사업이 허용되면서 시외 및 국제전화시장은 경쟁체제가 본격화되었다. 이어 1999년 4월에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사업에 참여하고, 12월에 온세통신이 시외전화사업을 개시함으로써 국내의 통신사업은 시내전화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경쟁체제가 완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1999년에는 시내전화 부가서비스, 전용회선, 초고속무선인터넷, 위성데이터통신 등 7개 역무를 제공할 사업자로서 데이콤, 하나로통신 등의 13개 법인이 허가를 받음으로써 기간통신사업자의 수는 더욱 확대되었다. 


 



1991년 12월 국제전화사업에 진입한 이후 데이콤의 시장점유율은 1년만인 1992년 말에 20.7%를 기록함으로써 이후의 경쟁도입 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1997년 10월에 사업을 개시한 온세통신 역시 사업개시 3년만인 1999년 말에 시장점유율이 약 13%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9년 4월 시내전화서비스를 개시한 하나로통신은 ADSL, 광동축혼합케이블 등의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통해 2000년 2월 현재, 4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여 다수를 점유하였다. 이밖에 온세통신은 1999년 12월에 시외전화사업을 개시한지 1개월만에 32만 3,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5억 2,3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시외전화 제3사업자로서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시외 및 국제전화사업에의 신규사업자 진출은 요금인하 경쟁을 촉진하여 국민의 통신비용 부담을 경감시킴은 물론, 소비자물가 안정에도 기여하였다. 경쟁도입 후 국제전화 요금은 약 51%, 시외전화 요금은 약 36%가 인하됨으로써 시외 및 국제전화 요금은 선진국에 비해 각각 20% 및 50%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다양한 선택통화서비스 등장으로 이용자의 선택기회가 확대되었다.


또한 이동전화시장은 1994년 신세기통신의 진입으로 복점체제가 조성되었으나, 1997년에 3개의 PCS사업자가 추가 진입하여 5개사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가장 치열한 경쟁양상을 보여 왔다.


한편, 1990년대 정보통신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유선통신서비스의 정체와 무선통신서비스의 도약이다. 유선통신서비스는 1998년에 처음으로 가입자 수 및 매출액의 감소를 경험하였으며, 1999년에는 가입자 수가 소폭 증가하였으나 매출액은 여전히 감소하였다. 반면, 무선통신서비스는 시설확충에 따른 서비스지역의 확대, 사업자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등에 힘입어 1997년에 처음으로 유선통신서비스 가입자 수를 추월하였으며, 1999년에는 매출액에서도 유선통신서비스를 앞질렀다.


 



첫째, 1999년도 기간통신서비스의 매출액은 17조 1,322억 원으로 1998년에 비해 21.1% 증가하였는데, 이 중 유선통신서비스는 7조 3,740억 원으로 전년대비 2.6% 감소하였으나, 무선통신서비스는 9조 7,582억 원으로 전년대비 48.4% 증가하였다. 이는 셀룰러 및 PCS 이동전화 등 무선통신서비스시장의 확대와 이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의 확산에 따른 것이다.


둘째, 1999년 말 현재 유선통신서비스는 시설수가 2,905만 회선, 가입자 수가 2,188만 명으로서 1997년 이래의 정체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무선통신서비스는 발신전용휴대전화(CT-2) 서비스의 사업폐지와 무선호출서비스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셀룰러 이동전화 및 PCS 시장의 급속한 발전으로 1999년 말 현재 각 서비스를 합한 시설수가 5,353만 회선, 가입자 수가 2,66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셋째, 부가통신서비스는 매출액이 1998년에 1조 920억 원으로서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한 이후, 1999년에 전년대비 36.3%가 증가한  1조 4,887억 원에 달하는 등 매년 큰 폭의 증가율을 보여 왔다. 이는 최근 몇 년간 부상하고 있는 인터넷 및 정보기기의 보급확대와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이용자들의 인식이 높아진 데에 기인하고 있다.


넷째, 방송서비스는 1999년도 매출액이 2조 9,924억 원으로 전년대비 6.8% 증가하는데 그쳤는데, 이는 유선방송서비스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서비스가 1997년 이후 감소세를 보인 데에 따른 것이다.


VI. 결 론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1990년대 10년동안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첨단서비스의 급속한 보급과 정부의 경쟁도입 정책, 세계 최초의 CDMA 개발 상용화, 국산 TDX 전전자교환기 및 DRAM 반도체 개발 등에 힘입어 타 산업의 밑거름으로써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국가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소프트웨어 부문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생산이 22배 증가함으로써 가장 성장률이 높았으며, 다음으로 정보통신기기 5.3배, 정보통신서비스 3.1배의 순서를 보였다. 여기에서 경쟁도입이 활발했던 정보통신서비스 부문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것은 무선통신 및 부가통신서비스시장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이 가장 큰 전화서비스시장의 성장이 둔화된 데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경쟁도입 면에서 시외전화시장에의 경쟁도입은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1999년 4월에는 시내전화시장에 하나로통신이 참여하면서 인터넷시장을 중심으로 경쟁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동전화시장은 1994년 신세기통신의 시장진입으로 복점체제가 조성되었으나, 1997년에 3개의 PCS사업자가 추가 진입하여 5개사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과당경쟁과 적자확대 등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으나 1999년 말 현재 가입자 수가 시내전화 가입자 수를 압도하는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오늘날의 세계는 기존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서 정보와 지식이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지식정보사회로 전환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컴퓨터의 발전과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기존의 물리공간과 비교되는 전자공간(cyber space)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면서 인터넷과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에 기반을 둔 디지털경제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지난 20세기의 정보통신산업 발전패턴과 경쟁도입을 완성하고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의 촉진과 민간의 자율적인 경쟁을 통한 정보통신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된다. 


<참 고 문 헌>


[1]    관세청 한국관세연구소,『무역통계 연ㆍ월보』, 1991∼1999.


[2]    대한통계협회,『한국표준산업분류』, 통계청, 2000. 1.


[3]    이장우, “정보통신기기산업의 수출입경쟁력 분석”, 주간기술동향 99-19, 1999. 


[4]    이장우,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성장과 경쟁”, 주간기술동향, 1999.


[5]    전자신문ㆍ한국경제신문ㆍ매일경제신문ㆍ일본경제신문, 2000년 1월-6월.


[6]    전자신문사,『2000 정보통신연감』, 2000. 6.


[7]    정보통신부,『2000년도 전기통신에 관한 연차보고서』, 2000. 9.


[8]    정보통신부,『실ㆍ국별 주요 업무계획』, 2000. 3. 


[9]    정보통신부 홈페이지(//www.mic.go.kr)


[10]  한국전자통신연구원,『정보통신 산업동향 및 정책동향 분석』, 1998. 12.


[11]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통신통계 DB, 2000. 6.


[12]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정보통신산업 통계집』, 2000. 6.




2001-05-06 02: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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