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구조개편 작업이 물밑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뚜렷한 원칙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정부의 내심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겉으로는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일”이라며 개입의사가 없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기회있을 때마다 주문사항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제3통신사업자 문제이다. 양승택 정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지배적 통신사업자에 대한 비대칭 규제(차별적 규제) 방침을 밝히면서 “동기식 IMT-2000 사업자 선정 문제는 제3사업자의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되, 구체적인 것은 사업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6일 한 조찬간담회에선 예를 드는 형식을 빌어 “시내망을 갖고 있는 하나로통신과 장거리망이 있는 파워콤이 연합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18일 대전에선 사견을 전제로 “동기식 사업자는 외국기업이 대주주가 되는 지주회사 방식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구상하는 제3사업자는 외국기업과 엘지, 하나로 등을 포함한 대규모 연합체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3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개념 또한 6개월여만에 `신규 사업자 지정'에서 `기존 사업자에 대한 주파수 배정'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정통부는 지난해까지 3세대 이동통신을 현재의 이동통신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규정했으나, 최근에는 “2.5세대 이동통신 업체에 주파수만 추가로 배정하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동기식 사업자 선정은 곧 엘지텔레콤에 추가로 주파수를 배정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엘지를 동기식 사업자로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말바꾸기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통신 경쟁체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 또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효한 경쟁을 위해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강화를 강조하면서, 경쟁의 가시적인 혜택인 요금인하에 대해선 “업체들의 투자 여력이 없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일관된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며 “진정으로 경쟁체제를 갖출 것인지, 아니면 독과점 상태를 인정하되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할지를 선택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통신산업 경쟁체제를 제대로 갖추려면 한국통신과 에스케이텔레콤의 독점적인 통신망 지배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IMT-2000 서비스부터라도 통신망 공동구축 방안을 적극 추진해 업체들이 서비스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라고 지적한다. 이럴 경우 통신망 과잉중복투자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10여년에 걸친 경쟁체제 도입 시도가 실패한 점을 감안해, 부실 후발사업자의 인위적 육성보다는 독과점 사업자의 횡포 방지와 통신요금의 인하 촉진에 정책의 초점을 두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기섭 기자marishin@hani.co.kr
출처 : 한겨례신문